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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전히
전쟁통에 학살 당한 사람들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시절 겪은 나이 많은 노인들 찾아
무당이 죽은자 불러 모으듯
귀동냥 댕기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죽는 겨
구십 앞둔 할머니가
별 뜻도 생각도 없이 툭 던졌다.

물어볼 것도 많고 갈 길도 급한데
구십 넘은 할아버지는
변소간에서 나오질 않고 있었다.

자식들이 세워 줬다는
똥통 앞 쇠 막대기 꼭 붙들고
온갖 힘 다 주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똥 오줌 멕혀 밥도 거르고
수술 한 지 몇 년 지났는 디
왜 이렇게 안 죽느냐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 빨리 죽으라는
원망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냥
밥은 먹은 겨?
묻듯이
오늘은 비가 올라나?
혼자 중얼거리듯
그냥 하는 소리였다.

좋은 약 땜에 오래 사시겠쥬?
했더니
맞유, 그놈의 약 때문인 거 같튜
예전엔 환갑 넘기믄 많이 산다구 했는디…
그땐 다들 고생고생하지 않고 돌아가셨쥬?
그류, 메칠 누워 있다가는 바루 갔쥬

오래 사는 게
오래 사는 게 아닌 듯했다.
아니, 그런 의미도 없어 보였다.
비 오다가
비 그치고
눈 오다가
눈 그치고
일 년을 오늘 하루처럼
다가올 일 년을
어제처럼 보내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내 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똥 오줌 나오지 않는
고통스런 신음소리 들어가며
점심 밥상 채려 놓고
볼일 보러 나간
할아버지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끝내 변소간에서 나오지 않는
할아버지 기다림에 지쳐
밥은 챙겨 먹고 돌아 댕기는 규?
할머니 고운 정 뒤로 하고
고스란히 번듯한 옛 대문짝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 그친 하늘이 푸르게 맑았다.
눈이 부셨다.
몽실몽실 구름이 더 맑았다.
아,
살고 싶다.
저 환장할 하늘 구름 때문에…
눈물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날
국가에서 부른다길래
별 일 없으려니 집 나가
무지막지하게 학살당한
또다른 보도연맹원,
다섯 원혼들을 만났다.

총 개머리판에 짓찍혀
학살지로 끌려가면서
그들은
하늘을 보았을까?

하늘은
맨머리 위에
솥뚜껑처럼 얹혀 있었다.

태그:#민간인학살, #한국전쟁, #보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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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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