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희가 1년 동안 싸우면서 느낀 건, 영상의 힘이 참 강하다는 겁니다. 펜을 쥐고 살아온 취재 기자들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시사저널>에는 당연히 영상 취재 인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는 하룻밤 사이에 뚝딱 9분 짜리 영상물을 만들어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게 될 '저희는 시사기자단입니다'라는 이 동영상이 그 산물입니다.

이미 이 동영상은 호사스러운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지난 18일 '굿바이 시사저널' 전시회가 열린 날 밤이었습니다. 4개 시민 단체가 마련해준 '웃어라, 정의夜' 후원의 밤에서 이정현 기자는 옆 건물 벽을 스크린 삼아 작품을 틀었습니다. 상영 시설이 없었거든요.

▲ 미술 기자인 이정현 선배는 <시사저널> 1년의 투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카메라 감독으로 변신했다.
ⓒ 시사기자단

하지만 효과는 더 좋았습니다. 비록 벽면이 얼룩덜룩하고 음향은 열악했지만,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한 여름 밤 옥상 카페에서 벌어진 진풍경은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야외 상영회와 같은 아우라를 품어냈습니다. 헛, '자뻑'이 심하다고요?

아닙니다. 맨 앞자리에 서있던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 이사)는 9분 내내 흡사 못박힌 듯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화면이 잠시 끊기자 "어, 화면이 안 나오네요"라면서 발을 구릅니다. 다 본 뒤 그의 품평. "아, 이거는 못본 건데, 좋네요." 참여연대 회원, 희망제작소 분들, 아름다운 가게 분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주셨습니다. 뿌듯뿌듯. '초'를 좀 치자면 동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칸 영화제'에 작품이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부터 간략 제작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동영상은 그야말로 금세, 뚝딱 만들었습니다. 원고 작성 1시간, 녹음 1시간. 저, <시사저널>의 막내 기자 차형석은 나레이션을 맡았습니다. '거리의 사회자'(진품 시사저널 부활 거리문화제), '눈물의 왕자(?)에 이어 '축축한 나레이터'까지, 기자라는 본업을 잃은 저는 1년 동안 새로운 일을 참 많이 해봅니다.

저는 원고를 읽기만 했을 뿐, 숨은 주역은 따로 있습니다. 일등 공신은 이정현 선배입니다. 그는 18년 동안 지면 레이아웃을 해온 미술 기자입니다. 싸움의 기간 동안 그는 카메라 감독으로 변신했습니다. 그가 찍은 테입만 80개입니다. 무시무시하지요? (영상 자료 필요한 취재진은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그는 감독이자, 프로듀서이자, 빼어난 카피라이터입니다. 원고를 쓰던 취재 기자를 단 한마디로 제압한 통찰력의 소유자입니다. 작업을 하던 날 밤, 노순동 선배는 열심히 원고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그 뒤를 이정현 선배가 서성서성대더니, 심드렁하게 한마디 내뱉습니다.

"저기.. 1인칭 어때요?"(이)
"1인칭? 아, 그래요. 오우~케이. 누구 시점으로 할까?"(노)
"뭐, 막내."(이)
"오우~케이. 막내 누구?"(노)
"목소리가 좋은…."(이)
"오우~케이. 차형석 낙찰!"(노)


▲ 국민 사회자 최광기씨와 함께 '거리의 사회자'로 변신한 차형석 기자.
ⓒ 시사기자단

이렇게 해서 제가 난데없는 나래이터가 되었습니다. 노순동 선배는 곧바로 '유체 이탈'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1시간 만에 원고가 나왔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나보다 더 제 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금창태 사장이 고맙다"는 구절에 저항했습니다. 금 사장의 뻔뻔함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었지만, 너무 튄다 싶었습니다. 또 그가 자신의 행위로 인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기에 금 사장에 큰 유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고맙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반어적으로라도요. 하지만 작가는 "괜찮다"라며 원고 수정을 거부했고, 저는 작가의 편집권을 존중해 눈감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는 녹음. 당연히 별 시설이 없습니다. 옆 방 회의실로 갔습니다. 감정 잡고 녹음을 하는데 내가 쑥쓰러울까봐 밖에 나가있던 노순동 선배가 불안했던지 또각또각 신발 소리를 내며 서성입니다.

밤 10시 넘은 시간, 저는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자꾸 혀가 꼬입니다. 이정현 감독은 "괜찮다, 괜찮다"라며 같은 부분을 두 세 번씩 읽으라고 합니다. 땀이 삐질삐질.

다음날 아침, 저는 완성본을 보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정현 선배는 밤새 편집을 하고 음악을 깔았습니다. 음악이 깔리니 제 목소리가 제 목소리 같지가 않습니다. 꽤 근사합니다. 아, 이렇게 저는 자꾸 '자뻑 맨'이 됩니다.

여기에 담긴 내용은 슬플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재미나게 작업했습니다. 여러분도 재미나게 봐주세요.

태그:#시사기자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