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클릭! 시사기자단] 새 매체 구독하기로 바로가기

▲ '삼성 기사 삭제'로 촉발된 '<시사저널> 사태'를 지켜보며 그린 만평.
ⓒ 김경수

<시사저널> '해직 기자'라 해야 할지 '사직 기자'라 해야 할지 헷갈린다. 사직의 모양새를 띠긴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해직이나 다름없기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이 기자들을 현장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에 불이 붙었다. 후원금도 보내고, 정기구독도 예약하고, 아끼던 소장품들마저 흔쾌하게 내놓는단다. 매체와 십수년 동안 정을 쌓은 독자들이 1년이 넘도록 잡지를 보지 못하니(짝퉁이야 매주 꼬박꼬박 나오고 있지만) 무척 갑갑증이 나는 모양이다.

개중에는 이 잡지를 한 번도 구독하지 않았던 '미래의 독자'들도 끼어 있다. 거대한 자본 권력, 힘있는 언론 사주에 맞서 원칙과 열정을 견지한 기자들이 너무 대견해 보여서란다. '개념 상실'의 언론이 주류 언론 행세를 하는 세상에서 희망을 걸어볼 만한 매체에 선투자하고 싶어서란다.

나 역시 <시사저널>의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를 향한 기대감을 버무려서 그 기자들이 만들어낼 신매체를 기다린다. 근성과 전문성이 배어나는 기사도 아쉽거니와, 가장 보고 싶은 지면은 '김경수의 시사터치'! 잡지의 들머리를 장식했던 시사만평난이다.

드디어 만평 작가를 찾아냈다!

고백컨대 나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었다(<내일신문>과 <대구매일신문>에 오랫동안 그려온, 그 바닥에서는 꽤 알려진 시사만화가였지만). 그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순전히 만평에 대한 후배들의 관심과 욕구 때문이었다.

2001년 7월, 편집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나는 지면 개편에 관한 의견을 편집국 내에서 널리 구했다. 부도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오랜 정체기를 겪었던 터라 구성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아이디어와 감당 못할 개선안을 쏟아냈다.

그 중 가장 많은 의견이 외국 주간지처럼 만평난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문제는 작가였다.

진보적이되 균형잡힌, 비판적이되 사실보도에 충실한, 보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어정쩡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시사저널>과 궁합이 맞는 작가를 찾기란 녹녹한 일이 아니었다. 그 뿐인가. 고급 아트지를 쓰는 컬러잡지니만큼 섬세한 선과 색깔 감각까지 갖춘 작가여야만 했다.

몇몇 작가가 추천됐지만,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관점이 괜찮다 싶으면 선이 거칠고, 그림이 어지간하다 싶으면 시각이 보수적이었다.

고르다 고르다 지쳐갈 무렵, 이문재 시인(당시 취재1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엄청난 분량의 복사지 모음을 건넸다. 한 작가가 지난 1~2년 사이에 두 일간지에 그린 만평이었다.

죽 훑어보니 우리가 애타게 찾던 작가였다. 복사본을 편집국에 돌리고 찬반을 물었더니,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쏟아졌다.

'김경수표' 만평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결과는? 대박이었다. 창간 12년 만에 처음 선보인 시사만평은 단박에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9·11 테러', 패권국가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 반전을 거듭한 2002년 대통령선거….

김경수는 초대형 국내외 뉴스를 그답게 소화했다. 얽히고설킨 시사현안에 담긴 진실,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감춰진 이면을 단 한 컷의 만화로 갈무리해내는 그의 솜씨에 무릎을 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시간이 흐르면서 기사보다 만평이 더 기다려진다는 독자들도 생겨났다. 통렬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진보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며, 각을 세우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는 '김경수표' 만평은 독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파업 이후 '짝퉁 <시사저널>'이 나오면서 그의 만평은 <시사저널> 지면에서 홀연 사라졌다. 가타부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음은 김경수 화백 본인의 말이다.

"돌이켜보면 파업 1년여 전부터 이상한 기미가 있었다. 마감날 원고를 송고했는데 편집자가 지문 내용을 좀 고치면 안 되겠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제주에 내려가 있을 때라서 직접 고치기 힘든 상황이라서 지문을 그냥 빼버리자고 했다. 몇 년 동안 그런 일이 없었던 터여서 전화를 끊고 나서도 못내 찜찜했다. 그러던 차에 기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연락이 뚝 끊겼다. 무언의 메시지를 내게 보낸 것이다."

진보적이되 균형잡힌, 비판적이되 사실보도에 충실한

오랜만에 만난 김 화백에게 '<시사저널> 사태'를 놓고 당신이라면 어떤 만평을 그릴까 궁금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만큼 좋은 만평 소재가 어디 있겠느냐, 파업 이후 6개월 동안 여러 차례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그릴 지면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든 시민기자에게 열린 지면인 <오마이뉴스>가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정말 그렇단다. 그래서 보내온 것이 바로 위에 실린 만평이다.

시사저널의 기자 22명이 사표를 쓴 데 이어, 7명의 편집국 사원들이 사표를 썼다. 모두 스물 아홉 명. 서른 번째 구성원 김경수 화백도 <오마이뉴스> 만평을 통해 '굿바이 <시사저널>'을 선언하는 셈이다.

참언론실천기자단이 만들 신매체에서 그의 만평을 보고 싶다. 예전처럼 무릎을 탁 치면서 "야, 정말 김경수답다"고 감탄하게시리.

ⓒ 김경수
ⓒ 김경수
ⓒ 김경수

덧붙이는 글 | 서명숙 기자는 <시사저널> 전 편집장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