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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을 사기 위해 흥정하고 있는 손님들.
ⓒ 이병기
독산동 축산물시장(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협진사거리 일대)에 들어서면 사람 냄새가 난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찾을 수 없는 서민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넓은 강당 크기의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 붉그스름한 조명과 좁은 통로와 확 다가오는 생고기의 비릿한 내음, 이곳저곳에서 왁자지껄하게 들려오는 흥정소리 등. 재래시장만의 낡고 오래된 풍경은 현대식 매장의 화려한 분위기에 젖어온 기자에게 푸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덤 없는 고기 장사가 어디 있어?"

@BRI@고기를 사러 온 한 할머니는 "항상 더 줘, 올 때마다. 그러니까 기분이 좋지"라고 이곳에 오는 이유를 말했다. 이곳에선 정찰제를 실시하지 않는다. 덤으로 주는 인정뿐만 아니라 흥정하는 재미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말 한 마디로 에누리 역시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다.

"일반 마트와 비교하면 한 20% 정도 저렴한 편이죠."

축산물 시장의 상인인 이명호(56·가명)씨는 싼 가격과 더불어 단골들에게 주는 덤이 재래시장이 아직도 사람들을 끄는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삼겹살 600g에 5000원 정도인데 반해 근처의 대형 할인점에서는 8700원-1만880원에 판매됐다. 독산동 축산물 시장은 인근에 식육관련 업소 등 150개 업소가 성업 중에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중년 여성과 노인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일반 매장에서는 구하기 힘든 부위를 사기위해 많이 온다. 시장에 고기를 배달하는 장재영씨(27·인천 관교동)는 "좋은 고기를 사기 위해선 마블링을 잘 보아야 해요. 육색이 선홍색인 것이 신선하거든요"라며 고기 잘사는 법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여기 다닌 지 10년이 넘어요. 아저씨도 좋고 고기도 금방 들어와서 신선해요."

삼겹살을 사러 온 한 아주머니의 말이다. 독산동 축산물 시장은 부근에 도축장이 함께 있어서 고기의 유통과정이 짧고 직송되어 소비자에게 신선한 상품을 제공한다.

낙후한 시설과 불편한 교통, 신세대 발길 '뚝'

▲ 좁은 통로와 붉은 조명이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 이병기
그러나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온 재래시장도 세태의 변화 때문인가 성세가 예전 같지 못하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이명호씨는 20년 전과 비교해서 약 50% 정도 매출이 떨어졌다고 했다. 요즘 들어 매출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형 할인마트의 등장이다. 지근거리에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 할인마트들이 입점 되어 영세 상인들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다.

"신혼부부 같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마트에 몰려가고 주 고객층인 노년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매출이 늘어날 수가 있나요."

이명호씨의 아들 이창우(28·가명)씨의 말이다. 일의 특성상 생고기를 만지는 일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 찾는 비율이 극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이곳의 대부분의 영세업자들은 가족이 대를 이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4년째 아버지와 같이 일하고 있다.

재래시장을 많이 접하지 않은 신세대들이 보기에 축산시장은 첫인상부터 얼굴을 찌푸릴 수 있다. 고기의 변질을 막기 위해 건물 전체가 붉은색 형광등을 쓰고 있어 밝고 쾌적하기 보다는 어둑침침한 느낌을 준다. 또한 오랜 시간 발 때가 묻어있는 바닥과 간간히 보이는 핏물이 산뜻한 마트와 비교돼 신세대들에게 자칫 혐오감을 줄 우려도 있다.

밀집돼 있는 가게에다 건물과 건물사이의 2차선 찻길은 고기 배달차들이 점령해 일반 차량들이 지나가기도 어렵다. 더구나 따로 주차장이 없어 고기를 사러 온 손님들의 차량도 길가에 주차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추석 같은 명절에는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인데, 구청에서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주차 딱지를 더 끊는 것 같아요.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은 벌금내면 남는 것도 없죠. 그럴 땐 좀 봐주면 좋겠는데..."

이 사장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구수한 순대국밥, 이것이 재래시장의 맛

▲ 5평 남짓한 순대국밥집. 크기와 반비례하게 맛있다.
ⓒ 이병기
마장동 우시장의 경우 성동구청이 리모델링 등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지원시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독산동 시장의 경우 금천구청이 주차시설 및 화장실 설치계획만 세우고 있을 뿐 현장에서 변화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이에 대해 금천구청 산업지원과 관계자는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어 구청 차원에서 지원하는 개발 계획은 없다"고 대답했다.

대형 할인마트의 등장이 독산동 축산물 시장만의 위기는 아니다. 우리 주위의 여러 재래시장들과 소규모 상가들이 거대 기업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근래에 들어 지방자치 단체나 상인연합회에 의하여 상품권 제도 도입 등 여러 가지 이벤트로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선 환경 개선이 우선이다. 아직도 예전 같은 낙후된 시설로는 대형 할인마트와의 경쟁력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돼야할 뿐만 아니라 상인들 개개인 역시 세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민들 역시 인정과 삶이 느껴지는 재래시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용하려 노력해야 한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 손잡고 시장에 다니면서 공갈빵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 겨울에 호호 시린 손을 녹여가며 붕어빵을 먹었던 기억도 새롭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흥정소리와 아이들 떠드는 소리. 순대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김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따스해 진다. 이런 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고, 이런 냄새가 사람 사는 향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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