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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전 '풍요와 안녕의 기원 - 선사·고대의 제사'
ⓒ 복천박물관
지난 9월 29일부터 12월 3일까지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이 열렸다. 이번 특별전 '풍요와 안녕의 기원-선사, 고대의 제사'는 연구자들이 매장의례를 통해 분묘에 공헌된 유물이나 점치는 뼈 같은 제사유물을 다루는 과정에서 생긴 '옛날 사람들은 제사를 어떻게, 왜 지냈을까'라는 소박한 호기심으로 기획한 전시회다.

사실 선사, 고대의 유물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모습을 속속들이 복원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특히 제사나 의례는 말이나 행동으로 이루어진 무형적인 것들이라 이를 고고학적으로 복원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많은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아직도 우리 문화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어 이런 연구가 가능하다.

@BRI@선사, 고대의 사람들은 집의 안과 밖, 화덕자리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과 생업에 관련된 농경지와 수리시설, 바다, 산악, 하천주변 등에서 제의행위를 행해왔다. 그리고 시기가 지나면서 외래종교인 도교, 불교와 점차적으로 융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살펴보기 쉽게 생활, 수변, 생산, 산악, 해양, 분묘, 종교제사로 나누어 제사의 성격이나 제사를 지낸 공간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7개의 장으로 분류하여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제사문화는 구석기 시대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모습은 대부분 상상력에 맞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반면, 신석기 시대의 경우 유물들을 살펴볼 때 제사의례가 구체화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제사문화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생업활동의 안전, 풍요, 다산 등을 기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종교적인 신앙심으로 표현하여 자연물과 동식물을 신격화, 형상화해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 위쪽부터 제사에 사용하던 청동기들, 길흉을 예측하던 점치는 뼈, 성기숭배 관련 제사유물들.
ⓒ 장원주
청동기시대가 열리면서 이 땅에도 곡물을 재배하는 농업혁명이 휩쓸고 지나갔고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 크게 바뀌어 자연과 사물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을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잉여생산물의 발생에 따라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계급이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마을을 이루고 무덤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공간에 대한 개념도 변화하였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해안이나 산의 정상까지 제사의 장소가 확대된다. 사람들은 마을의 안전, 수확물의 풍요, 풍어와 마을의 평안, 해상에서의 안전을 빌며 산에서는 산신에게, 바다에서는 해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어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불교나 도교와 같은 외래종교를 수용하면서 토착신앙과의 융합으로 제사의례의 모습도 바뀌게 된다.

생활제사

▲ 각종 생활제사 유물들 - 구멍뚫린 석기, 유구석부, 반달돌칼, 돌화살촉, 돌끌, 가락바퀴, 그물추, 돌도끼, 깊은 바리, 지진구, 철곳, 뚜껑항아리, 개원통보 등 실생활과 관련된 제사모습을 추정하게 해주는 유물들.
ⓒ 장원주
옛날이나 지금이나 집의 안과 밖, 화덕자리, 집 자리 주변 환호와 물가 등 일상적인 생활 전반에 걸쳐 제사가 이루어졌다. 옛 집 자리 유적에서는 벽이나 기둥자리 속에 유물을 포개어 두거나, 화덕자리에서 조왕신을 위한 제사행위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구역이나 경계의 표시인 도랑이나 구덩이 유적에서도 생활과 관련된 의례의 흔적이 발견된다.

▲ 모조품과 소형토기-흙을 재료로 실물을 축소하여 만든 소형토기, 마형토제품 등 신에게 바치는 공헌용으로 제작한 상징적 유물들. 말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 중요했던 동물이었다. 지상의 인간들의 염원을 하늘에 전달해주는 매개물로 간주됐다.
ⓒ 장원주
생활제사와 관련된 유물로는 각종 중요한 일을 행하기 전에 길흉을 예측하는 점치는 뼈, 다산과 풍년을 바라는 성기가 강조된 인형이나 토우, 지진구 등이 있으며, 의례와 관련한 소형 모조품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루어진 선사, 고대의 생활제사는 현대의 우리 생활 속에서도 새 집을 지을 때 행하는 상량식, 푸닥거리, 각종 금기 등 민간신앙 형태로 남아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산악제사

산은 예로부터 만물을 산출하는 곳이자 하늘과 교통할 수 있는 거룩한 공간이며, 죽은 자의 혼백이 돌아가 쉬는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험준한 산은 기상조건 변화가 극심하고 맹수를 만나거나 조난당할 위험이 높은 지역이므로 고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힘, 즉 산신에게 기원하는 의식을 행한 흔적이 발견된다.

▲ 하남 이성산성에서 나온 산악제사의 중요유물인 목간, 목제 인면상, 목제 인물상
ⓒ 장원주
산신은 봄의 시작과 함께 마을에 내려와서 파종을 도우고 벼의 생육과 마을사람들의 생활을 지키며 가을 추수 후에 산으로 돌아간다는 신앙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생활과 밀착한 마을 뒷산 혹은 고개에 머무는 신으로, 마을사람들의 생활을 둘러보는 신이었다.

▲ 산악제사 관련 유물들-고배와 항아리, 흑유병, 인화문토기조각 등 각종 토기류, 중국청자 조각, 금동제 허리띠장식, 유리구슬, 가락바퀴등, 산악제사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유물로 출토되었다.
ⓒ 장원주
영암 월출산, 광주 이성산성, 대전 보문산성, 기장 달음산유적, 거창 거열산성 등에서는 산의 정상이나 산성과 인접한 곳에서 흙이나 쇠로 만든 말을 비롯하여 각종 토기 및 자기편이 출토되었고, 제사와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고 있다. 산정제사유적은 대부분 삼국시대 이후에 형성된 것들이며, 현재에도 그 맥이 이어져 민간신앙과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해양제사

섬이나 반도의 돌출된 지형은 배들의 항로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기도 하며, 물의 흐름이 복잡해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에서는 행해의 안전이나 풍어를 기원하는 해양제사유적이 발견된다. 고고학적으로 해신제사를 지낸 것으로 확인되는 유적으로는 부안 죽막동, 울릉도 현포리, 제주 용담동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사행위가 이루어지기도 한 것을 보면, 고대의 제사행위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낯선 문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농경과 관련된 생샌제사 관련 유물들-원판형 토제품, 가락바퀴, 토제방울, 말모양토기, 두들개, 토기받침, 굽다리 사발, 사발, 사람모양 토우, 달개, 새모양토우
ⓒ 장원주
채집경제 위주이던 사회인 신석기시대에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좌우되는 여건 속에서 삶 자체가 동물숭배 신앙의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사가 시작되는 봄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가을에 주로 농경 제사의례가 행해지며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던 이전 시대에 비해 생산과 관련된 신앙이 강화된다.

분묘제사

인간은 농업혁명 후 커다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맡게 됐다. 그에 따라 매장의례는 중요한 사회적 제도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청동기시대에는 지석묘(고인돌) 주변에 토기파편을 흩어 놓은 제사행위가 나타나며, 삼국시대 분묘에서는 빈-봉토제사-묘사제사라는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진 흔적이 보인다.

▲ 분묘제사에서는 계세사상적 내세관의 반영으로 저승에서도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라는 의미로 공헌용 토기의 매납, 음식공헌, 소나 말 같은 가축들의 희생 등 제사와함께 공헌의식이 이루어졌다. 고령,합천,경주 등지에서 말을 묻은 경우도 있다-공헌물 중 오리모양 토기, 소형 토제품이 담긴 대호
ⓒ 장원주
빈이란 삼년상제도에서 죽은 직후에서 본 매장이 이루어지기까지 행해지는 의례로, 공주 정지산 대벽유적이 백제 무녕왕을 위한 빈궁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토제사란 분묘 축조공정 중 행한 제사행위로, 봉토 내에서 제사흔적이 발견되었을 경우를 말한다. 묘사는 분묘축조 완료 이후 후대에 정기나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진 제의를 말한다.

수변제사

물은 청동기시대 이후 일상생활이나 농경에서 더욱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물에 감사하는 마음과 그것을 신성시하는 관념, 삶의 터전을 일시에 앗아갈 수도 있는 홍수에 대한 두려움 등 상반된 관념에서 수변제사가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 수변제사 유물들. 각종 토우와 토기들, 인화문토기, 새모양 목제품, 청동접시와 사발, 사슬, 동곳, 옥조각, 가락바퀴, 돌화살촉, 곡옥, 마제석검조각, 유구석부조각, 소형토기, 동물뼈, 사람모양토우 등 수변, 우물제사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들이다.
ⓒ 장원주
청동기시대의 수변유적은 모두 하천이나 수변에 인접해 있는 유적을 말한다. 집석유구, 구나 석축 등이 설치된 흔적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 토기나 석기 등이 파쇄된 채 폐기되어 출토된다. 삼국시대 수전으로 연결되는 수로나 저습지에서는 토기, 목제품, 복골, 석구, 씨앗류 등 제사유물이 출토된다. 이 역시 수로제사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안정적인 물의 공급과 함께 풍성한 수확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제사행위로 표현된 것이다.

종교제사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공포이다. 이에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의 하나로 종교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이 땅의 사람들은 삶이란 현세에서 끝나지 않고 내세에 이어져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덕분에 샤머니즘적인 신앙 심리가 자리 잡았다.

▲ 종교제사 관련 유물-4세기 이후 외례종교의 유입으로 종교제사가 성행하였다. 사진은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제 허리띠, 곡옥, 옥목걸이등 장신구류와 청동사신무늬거울, 금동꽃모양장식, 은제칼, 가위, 철제판 신라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운모와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매실
ⓒ 장원주
AD 4세기 이후에는 불교, 유교, 도교 등 체계적인 조직과 문자화된 경전, 교리를 가진 다양한 고등 종교들이 우리 문화 속에 흘러 들어와 샤머니즘과 결합된 형식으로 복합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

제사는 언제, 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사실 제사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필자의 집안에서도 명절이나, 조상님들 기일이 되면 제사를 정성껏 봉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태초의 제사문화는 유물이 부족하여 그 모습을 짐작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하시만 사람이 지구상에 처음 살기 시작한 선사시대나 지금이나 세계 곳곳에서는 제사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모든 것이 경외,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천둥이 치면 하늘이 노한 것으로 생각했고,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 드는 것도 신의 분노로 생각했던 태초의 시대에 자연에 대한 경외, 바로 그것으로 부터 시작한 제례의식은 지금에 이르러 나를 있게 하는 자연과 조상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우리 민족의 의식 저변에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1월 18일, 12월 2일 두 번 방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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