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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이 그림 위를 뛰어다녔다.
ⓒ 홍성희
3일 서울시 성북구 삼선1동의 좁은 골목. 아이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뛰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자동차 뒤에서 슬그머니 기어나왔다. 전신주 아래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너, 딱 걸렸어!" 하고 소리치며 열심히 좇아갔다.

그 곳에는 부드러운 모래도, 흔들리는 그네도,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그려진 작은 그림만이 동심을 위로하고 있었다. 해, 달, 꽃, 얼굴. 아이들은 그 곳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놀이터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강남의 아파트가 떠올랐다. 강남 입성이 인생의 목표가 된 시대. 아이들은 강남이란 별천지를 알고 있을까. 집밖에 나서면 놀이터와 넓은 공원이 곳곳에 있는 그 곳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이 강남에 미쳐 있는 지금도 골목에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그러나 골목에 더 이상 1980년대의 추억은 없다. 이제 골목에 사는 사람은 소수가 됐다.

골목은 추억이 아니라 가난이다

▲ 계단이 있는 곳에 골목이 있고 골목이 있는 곳에 계단이 있다.
ⓒ 홍성희
골목을 찾는 일은 '계단'을 찾는 일에서 시작됐다. 계단이 있는 곳에 골목이 있고 골목이 있는 곳에 계단이 있다. 좁은 골목길은 대부분 경사가 높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다.

"또각, 또각, 또각…." "끼이익…, 떨그럭 떨그럭."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골목에는 좀처럼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녹슨 쇠문의 힘겨운 기지개 소리와 바람에 굴러다니는 깡통 소리뿐이었다. 마치 몰래 들어온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두 팔을 뻗으면 양 벽에 손이 닿을 만한 좁은 골목길이 이어졌다. 바닥에는 십년 전에나 사용하던 정사각형의 네모난 큰 타일이 깔려 있었다.

▲ 문을 나서면 바로 거리다.
ⓒ 홍성희
골목에 있는 집들은 하나같이 문이 바로 길가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파트는 문을 열어도 계단이나 복도가 있기 때문에 팬티 바람으로 신문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평수가 작아 공간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는 골목의 집들은 그런 공간을 둘 여유가 없다.

골목에는 기름보일러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었다. 벽돌 사이로 힘겹게 뚫린 구멍으로는 하얀 연기가 추위에 숨을 헐떡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골목길에는 끝이 없었다. 마치 인생과 같이, 끝이 보일 즈음에는 새로운 갈림길이 나타나 선택을 강요했다. 여러 번 수술한 사람의 뱃가죽처럼, 몇 번을 부수고 다시 덮었을 엉성한 길이 이어졌다.

양동근의 노래 '골목길'의 가사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밤엔 너무나 캄캄해. 혼자 있는 이 길이 난 정말 싫어. 찬바람이 불어서 난 더욱 싫어. 기다림에 지쳐서 난 또 눈물이."

예전에는 '골목대장'이란 말이 흔히 쓰였다. 그만큼 골목이 많았고 골목은 놀이의 공간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기둥을 정해 놓고 '와리가리'(테니스공을 주먹이나 발로 차서 정해진 곳을 왔다갔다 하는 놀이)를 하거나 고무줄을 한 경험이 있으리라.

골목은 종종 로맨틱한 '키스'를 꿈꾸는 곳이기도 했다. 연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서는 찰나, 못 다한 아쉬움이 붉은 백열등과 함께 키스가 이어졌다.

하지만 동네의 가치가 집값, 땅값으로 매겨지는 지금, 골목은 단지 가난하고 작은 집들의 비좁은 피신처로 남아있다.

청소부와 자장면 배달부도 힘들다

▲ 창문을 삼키고 있는 늑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 홍성희
골목에는 쓰레기가 많았다. 아파트처럼 쓰레기를 한꺼번에 모을 수가 없고 분리수거도 힘들기 때문이다. 마침 가로등 불빛을 좇아 계단을 내려가던 중 양손에 쓰레기를 들고 가는 청소부를 만날 수 있었다.

"집집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거둬야 해. 게다가 오르막 내리막이 좀 많아야지. 이것도 지금 몇 번을 왕복하고 있잖아."

청소부는 그래도 묵묵히 쓰레기를 거두고 있었다. 아니, 한편으로는 아주 열심이었다. 청소부는 터질 듯한 봉투를 손에 꽉 쥐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높은 골목이었지만, 이 곳에도 자장면 그릇은 있었다. 자장면만큼 평등한 것도 없다. 문 앞에 내놓은 자장면 그릇을 서너 개 지나칠 즈음, 마주한 골목에서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낑낑거리며 끌고 오고 있었다. 이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그릇을 주섬주섬 챙겨넣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나는 그 남자가 걸어 나온 골목으로 갔다. 오토바이의 속도를 내기에는 너무 위험한 좁은 골목이었다. 그 사람은 한참을 이어지는 그 골목을 그렇게 걸어왔던 것이다.

골목의 낙서, 예술가의 그것보다 아름답다

▲ 너의 고백이 성공하길 빈다.
ⓒ 홍성희
골목에 추억은 없다고, 온통 삶의 고단함 뿐이라고 낙담하고 있을 즈음,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을 보게 됐다. 차가운 시멘트 벽면 위로 거대한 붉은색의 늑대가 입을 쩍 벌리고 서 있었다. 창문을 삼키려는 듯한 모양이 유쾌하고 재밌었다.

삭막한 이 골목에도 삶의 터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노력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그림은 골목에 있었기에 살아 숨쉬는, 삶 속에 녹아있는 그림이 될 수 있었다.

단조롭게만 보이던 계단에도 그림이 있었다. 한 손을 위로 하고 춤을 추는 듯한 그림이었는데, 계단에 썩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골목을 꾸미는 것은 그림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낙서. 낙서가 그 곳에 남아있었다.

내 눈에 비친 최고의 낙서는 '배다에 조와해'였다. 맞춤법을 보면 이 낙서는 초등학생이 쓴 것임이 틀림없다. 이 학생은 '배다에' 양이 꼭 이 낙서를 읽어주길 바랄 것이다. 낙서는 어설프지만 솔직함이 묻어있어 좋았다. 이 학생의 고백이 성공하길 빌었다.

사라지는 골목,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가파른 시멘트 언덕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 홍성희
골목의 뒤편으로 거대한 아파트가 육중한 회색빛 몸집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부동산 앞을 서성이던 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한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와 이곳 삼선동에서 50년을 넘게 살아왔다고 한다. 나는 "골목이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깨끗하고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좋긴 뭐가 좋아. 저 아파트는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 우리 집도 재개발이 되는데, 거기에 짓는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2억원을 더 내야 한다고. 근데 나같이 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2억원을 마련하느냐 말이야. 다들 재개발해야 한다니까 나도 따라가야 하지만 빚을 내서라도 새 집에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팔고 다른 데로 전세잡아 가야할지 아주 머리가 아프다고. 나같은 사람이야 수입도 없는데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게 제일 속편하지."

삼선동 골목은 아파트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골목을 허물고 깨끗한 도로를 놓았지만, 정작 그곳에는 골목에 살던 사람이 없다. 보상비만으로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사기 벅차기 때문이다.

골목을 내려오며 다시 강남을 떠올렸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인데 강남과 이곳은 왜 이렇게 다를까. 강남에 각종 문화 시설이 들어올 때, 이 곳에는 왜 아이들에게 변변한 놀이터 하나 들어오지 않았나.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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