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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린다가 일반 대중들(public)에게 남긴 유서. 실제로는 미디어에 대한 원망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2세 남아 트랜튼 실종사건과 이에 뒤이은 한국계 엄마 멜린다 더켓 자살사건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은 채 갈수록 미궁 속에 빠져 들고 있다. 여기에는 이번 사건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응과 석연찮은 대응방식도 사건 해결을 늦추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리스버그 경찰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트랜튼이 실종되던 날 911 신고 녹음기록과 멜린다가 자살직전 남긴 유서를 그녀의 차(미츠비시 2000년도형 은색) 댓시보드에서 발견했다"고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같은 경찰 발표는 멜린다가 자살한 지 2주가 지난 뒤에 나온 것이다.

이어 경찰은 25일 멜린다가 어머니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남긴 유서도 공개했다. 멜린다의 가족들은 "경찰이 유서를 공개하기 전까지 유서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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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멜린다가 자살했을 당시 유서를 수거한 사실에 대해 부인했다. 언론들도 유서 유무에 대해 보도가 다소 엇갈렸다. 한 언론은 "경찰이 유서의 존재 유무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고 보도했으나, 다른 언론은 아예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언론이 낌새를 채고 멜린다의 유서 유무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서자 결국 이를 공개했다.

이처럼 뒤늦게서야 경찰이 멜린다의 유서들을 시차를 두고 공개한 배경이 의혹을 사고 있다. 언뜻 유서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수사에 혼선이 빚어질 것을 염려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으나, 경찰이 멜린다를 미리 혐의자로 지목하고 '맞춤수사'을 벌여오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멜린다의 부모가 "왜 경찰이 멜린다에게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말이나, 조부모가 "경찰이 멜린다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해 온 것도 이같은 의혹을 대변하고 있다. <올랜도 센티널> 칼럼니스트 로렌 리치도 경찰의 이같은 일방 수사가 멜린다를 궁지에 몰아 넣었으며 결국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서를 뒤늦게 공개한 것에 대해 리스버그 지니 패젯 경찰서장은 <올랜도 센티널> 26일자에 "(처음에 유서를 수거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트랜튼의 행방 또는 죽음을 (결정적으로) 알려주는 유서가 없었다는 말이었다"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사흘 간격을 두고 연이어 공개된 유서 내용을 보면 멜린다가 트랜튼 실종사건과 관련하여 미디어의 이목이 온통 자기에게 집중된 데 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 온 사실을 보여 주었다.

멜린다는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낸 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이같은 짓(자살)을 하는 이유는 내 아이가 발견된 후조차도 좋은 엄마가 될 성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두 곳의 일터에서 일해왔고 풀타임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는 구렁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지극한 관심으로 항상 트랜튼을 돌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멜린다는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가 이래야만 하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스트레스와 좌절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더 행복해 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유서를 읽은 멜린다의 할아버지 빌 유뱅크씨는 "멜린다는 항상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면서 "그녀는 아주 꼼꼼한 성격으로 모든 일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기를 원했으나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트랜튼이 실종된 이후 이목이 집중된 것이 멜린다를 못견디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 공격적인 인터뷰로 멜린다 더켓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낸시 그레이스.
ⓒ TV화면 촬영
"여러분은 뜬소문을 만들어 내고 사실을 왜곡했습니다"

경찰은 이에 앞서 23일 '일반 대중들에게(To public)'라는 타이틀을 단 멜린다의 유서를 공개했다.

이 유서에서도 멜린다는 자신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던 매스 미디어에 대해 원망하는 글을 남겼다. 그는 유서 맨 앞머리에 "당신들의 관심은 내 아들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가 무사하게 내 팔에 안기기만을 원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녀는 "당신들은 뜬 소문을 만들어 내고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어떤 말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만큼 나는 강합니다, 그러나 나는 젊고 악착같이 살아 왔으며, 지금 조롱과 비난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멜린다는 유서에서 "자신의 아들이 실종된 후에도 공공연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미디어가 이같은 자신의 냉정한 성격을 트랜튼의 실종사건과 연루시키고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제발 당신네들이 어떤 사람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놓지 않고 살아왔는데, 당신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멜린다는 자신의 관심이 경찰의 요구에 대응하기보다는 오로지 트랜튼을 찾는 데만 쏠려 있었다는 사실을 적었다.

"이것(자살)은 마지막으로 선택한 아이디어입니다. 트랜튼이 실종된 1주일 후부터 (삶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느껴왔습니다. 그를 말할 수 없이 사랑합니다. 트랜튼은 내가 숨쉬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의 전부이고, 나의 에센스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가 자라면서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멜린다의 유서는 주로 미디어와 경찰로부터 받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적고 있으나 행간에서는 트랜튼이 살아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 멜린다의 유서가 공개된 사실을 보도한 <올랜도 센티널> 23일자. 경찰은 멜린다가 자살한 당일 발표에서 유서를 수거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으나, 뒤늦게 이를 공개하여 의혹을 사고 있다.
전 남편 "아들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희망을 준다"

멜린다의 전 남편 조슈아 더켓은 26일 <올랜도 센티널>에 "멜린다의 여러 언급들은 트랜튼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희망을 준다"면서 "(멜린다의 자살이) 순간의 충동에서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슈아는 지난 22일의 인터뷰에서도 "멜린다가 나와 다투면서 아이를 다치게 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정말 아이에게 해를 끼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그녀가 어딘가에 트랜튼을 빼돌린 느낌이고, 누군가가 트랜튼을 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록펠러 리스버그 경찰서장도 같은날 "누군가가 트랜튼을 데려가서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유서와 함께 공개한 911 신고 녹음테이프에는 트랜튼이 실종되던 날의 상황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다.

녹음 테이프에는 트랜튼이 실종되었다며 멜린다가 밖으로 뛰쳐나간 후 거실에 있던 남자친구가 경찰에 신고하는 소리, 신고접수 직원이 멜린다를 바꿔달고 요청하자 밖에서 아이를 찾던 멜린다가 급히 들어와 숨에 찬 목소리로 울먹거리며 아이가 없어진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소리 등이 담겨져 있었다.

한편 멜린다의 유서가 처음 공개되기 이틀 전인 지난 21일 리스버그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고 멜린다 더켓을 '트랜튼 실종사건'의 주요 혐의자로 공식 지목했다.

▲ 멜린다가 엄마와 아빠(위),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남긴 유서.
양부모 "경찰이 그녀를 희생양 삼고 있다"

경찰이 멜린다를 트랜튼 실종사건의 혐의자로 지목한 이유는 멜린다가 7월 초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협박 이메일이 멜린다 자신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멜린다는 지난 7월 4일 "누군가 아들과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 이메일을 보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범인이 전 남편인 조슈아 더켓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멜린다는 이를 근거로 법원으로부터 조슈아의 접근금지 명령을 얻어냈다.

그러나 경찰은 이 협박 이메일은 조슈아가 써보낸 것이 아니라, 멜린다가 남편의 개인 블로그 사이트에 불법 접속하여 남편이 자신에게 쓴 것처럼 위장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밖에도 ▲멜린다가 트랜튼 실종신고 이후에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거부한 점 ▲수사과정에서 트랜튼 실종 전날 오후의 행방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한 점 ▲실종신고 후 아들 트랜튼의 사진 등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점 등을 들어 멜린다를 주요 혐의자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멜린다의 양부모는 "경찰이 트랜튼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하자 멜린다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즉각 반박했다.

멜린다의 할머니 낸시 유뱅크는 "그 애는 아들을 매우 사랑했고 결코 해를 끼칠 애가 아니다"면서 "멜린다는 '내 잘못이다, 내가 트랜튼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자탄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수사관들은 정작 범인이 달아날 때까지 엄마와 아빠의 주변만을 맴돈 '존 베넷 램지 케이스'를 생각나게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낸시는 쓰레기통에서 트랜튼의 사진과 소지품들이 발견된 것을 두고 경찰이 트랜튼 실종과 연관시키고 있는 데 대해서도 "멜린다가 소지품을 버릴 때 남편과 함께 이를 도와주었다"면서 "그녀는 조슈아가 들어있는 사진과 여러 물품들을 모두 정리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멜린다의 남편 조슈아 더켓은 "멜린다가 아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보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그녀를 혐의자라고 생각했다"면서 "경찰이 멜린다를 체포했다면 아들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경찰의 늑장 대응을 비난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초기부터 멜린다를 주 혐의자로 꼽고 있었으나, 멜린다가 스스로 트랜튼의 소재지를 밝히기를 기다렸고 다른 단서를 잡기 위해 체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멜린다와 그의 아들 트랜튼의 행복했던 한 때.
이어지는 의혹들, 추측만 난무... 주 아동 복지국으로 불똥

27일 현재 트랜튼 실종에 이은 멜린다 더켓의 자살은 각종 의혹과 추측만 난무한 채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수사당국의 늑장 대응과 더불어 플로리다주의 아동복지 시스템의 헛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멜린다의 전 남편 조슈아 더켓은 25일 "아동 복지국 관계자들이 이번 일을 잘 처리했다면 이제껏 벌어진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트랜튼이 위험에 처해 있다며 양육권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내 말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그동안 "아동 복지국에 보관되어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양육권 논쟁 기록들이 트랜튼 사건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고, 주 아동복지 시스템의 개혁에 대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며 공개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사법 당국은 두 부부와 트랜튼, 그리고 양가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이에 대한 공개를 불허해왔다.

사건의 불똥이 주 아동 복지국으로 옮겨가자 카운티 지방법원은 27일 지난 1년 이상 동안 벌어진 조슈아와 멜린다 사이의 양육권 논쟁에 대한 아동 복지국의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법당국은 이에 대한 전면적인 공개를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결국 지난 8월 27일 2살 아동 트랜튼의 실종신고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2주 후인 9월 8일 입양 한국계 멜린다 더켓의 충격적인 자살, 이와 관련하여 CNN 헤드라인뉴스의 낸시 그레이스 토크쇼의 보도 윤리 논란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경찰의 대응방식에 대한 의혹과 주 아동 복지국의 난맥상으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수사 당국은 지역 수색을 잠정 중단하고 지난 24일부터 '가장 긴급히 찾는 사람'(Most Wanted)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으로 트랜튼 찾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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