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햄, 소시지와 잘익은 김치만 있으면 집에서도 부대찌개를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이효연
지난 토요일의 우리집 점심 메뉴는 부대전골이었습니다. 모처럼 남편이 쉬는 토요일이기에 나가서 냉면으로 외식을 할까 하다가, 마침 냉장고 속에 있던 소시지와 햄에 눈길이 가서 집에서 부대찌개를 끓이기로 했지요. 처음에는 김치찌개에 햄과 소시지 정도를 넣어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야채에 조랭이떡, 버섯, 그리고 베이크드 빈스까지 넣다보니 제법 '전골'답게 끓여졌습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부대찌개의 찰떡 친구, 라면사리도 당연히 넣었죠. 찬밥이 달랑 한 공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떡에 라면까지 넣은 부대전골을 끓인 덕분에 든든한 요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옆 동에 사는 형님이 시골에서 얻어왔다며 나눠준 양념이 잔뜩 들어간 '시골 스타일 김치'를 이렇게 찌개를 끓일 때 넣어보니 아주 제격이더군요.

이래저래 부대전골을 끓여 먹기에 좋은 여러 가지 조건이 딱 갖춰진 날이었습니다. 아주 내친 김에 냉장고를 찬찬히 뒤져서 햄, 베이크드 빈스, 떡 등 김치찌개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넣어보았습니다. 쉽게 말해 비린 생선 빼고는 다 넣을 수 있으니 이 참에 냉장고 정리도 하는 거지요.

▲ 납작한 전골냄비를 이용하면 적은 재료라도 양이 풍성하게 보입니다.
ⓒ 이효연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부대전골을 끓일 때에는 납작한 전골냄비에 재료를 보기 좋게 빙 둘러 담아 즉석에서 끓여 먹어야 제 맛이 납니다. 동네 그릇가게에서 5천원 주고 구입한 뚜껑 없고 얄팍한 전골냄비와 블루스타도 찬장에서 꺼내 닦아 놓습니다.

가스레인지에서 냄비에 끓여 각자 공기에 덜어 먹는 것보다 좀 번거롭긴 합니다만, 걸쭉하고 칼칼한 부대찌개 국물이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먹음직한 소시지랑 햄을 건져 먹는 재미 또한 빼 놓을 수 없으니까요. '장 맛 보다는 뚝배기 맛'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라면사리는 반드시 미리 삶아서 넣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맛있는 부대찌개 국물을 다 잡아 먹어 버려 뻑뻑하게 됩니다.

이렇게 온갖 '맛있는 재료'를 다 넣어 짭짭거리며 부대찌개를 먹다가도 가끔은 코끝이 찡해질 때가 있습니다. 먹을 게 없어 가난했던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남긴 식재료를 다 쓸어모아 김치와 섞어 끓여 먹던, 그래서 오죽하면 '꿀꿀이 죽'이라 불리던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부대찌개로 변했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가끔 부대찌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남긴 그 많은 반찬들과 밥을 종업원이 쓰레기통에 마구 쓸어 담는 것을 보면 참 '세상 달라졌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 시절의 슬픈 추억이 담긴 요리이자 '대한민국 퓨전 요리'의 원조이기도 한 부대찌개! 남녀노소 누구나 많이 좋아하는 부대찌개를 집에서 맛있게 한 번 끓여볼까요?

▲ 불 조절을 부지런히 하면서 끓여 먹어야 하는 부대찌개.
ⓒ 이효연
[재료(2인분)] 잘 익은 김장김치나 신김치 한 컵(한 입 크기로 잘라서), 양파 작은 것 반 개, 호박, 버섯 등 야채, 대파 약간, 소시지, 물 혹은 육수 3컵, 다진 마늘 1큰술

양념장(고춧가루 2큰술, 소금 1/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국간장 1/2큰술, 된장 1/2큰술, 물 2큰술)

▲ 국물 양념장은 미리 한 데 개어 놓아야 국물맛이 좋습니다.
ⓒ 이효연
[조리법] 1. 김치와 준비한 야채, 햄, 소시지 등을 전골냄비에 빙 둘러서 보기 좋게 담고 만들어 둔 양념장과 다진 마늘 등을 올립니다. 육수(물)를 붓고 불에 올려 끓입니다. 이 사이 라면을 삶아 두면 시간이 절약되지요.

▲ 국물이 끓으면 양념장을 풀어줍니다.
ⓒ 이효연
2. 서서히 끓기 시작하면 국자로 양념장이 육수에 고루고루 잘 풀어지도록 저어줍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이 과정에서 꼭 소시지며 햄을 먼저 날름 날름 집어먹어서 일행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지요. 부대찌개는 먹는 사람의 성격을 다 드러내게 만드는 묘한 찌개이기도 합니다.

▲ 라면이나 당면 사리는 반드시 미리 삶아 건진 후 넣어야 국물이 졸아들지 않아요.
ⓒ 이효연
3. 강불로 끓이다가 한 번 끓어오르면 중불 혹은 약불로 줄입니다. 그래야 국물이 너무 졸아들어 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 허전하다면 이 때 삶아둔 라면을 넣습니다.

4. 삶아둔 라면 사리를 넣어 좀 더 끓이면서 면발에 간이 잘 배어든 다음 열심히 건져 먹으면 됩니다.

[부대찌개와 관련한 몇 가지 TIP]

① 부대찌개 맛을 살려주는 소시지와 햄

미군부대에서 남은 식자재로 만든 찌개라서 '부대찌개'란 이름이 지어진 만큼 부대찌개에 넣는 소시지나 햄은 '물 건너온 제품'을 넣어야 맛이 좋습니다. 아니, 좋다기 보다는 좀 느끼한 맛이 나면서 흔히 말하는 '원조 부대찌개'에 가까운 맛이 납니다. 국산 프랑크 소시지나 햄을 사용하면 좀 담백한 맛이 나고요. 다시 말해서 느끼하고 걸쭉한 원조 부대찌개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소시지라고나 할까요?

▲ 부대찌개용 수입 소시지와 햄을 넣으면 '느끼하고 진한' 원조 부대찌개의 맛을 낼 수 있어요.
ⓒ 이효연
사진의 소시지는 지난번 이마트에 갔을 때 부대찌개용 햄, 소시지만 모아놓고 파는 코너에서 한 팩 사 왔습니다. 가격은 3500원 선입니다.

햄은 덴마크 튜울립 햄이 가장 맛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냥 먹자면 너무 느끼해서 먹지 못할 정도로 기름이 많습니다. 국내 식품업체에서 수입해서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쉽게 구입할 수 있지요. 느끼한 맛이 싫다면 이 햄 대신 스팸을 넣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또 그라운드 비프라는 냉동 다짐 육을 넣기도 합니다만, 식당 재료상에서 보통 판매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일반 슈퍼마켓에서는 사기가 어렵더군요. 집에서는 그냥 쇠고기 다짐 육을 조금 넣으면 되겠어요. 그렇게 하면 국물 맛이 훨씬 구수하고 진해집니다.

② 부대찌개 육수는 '내 멋대로 육수'로 해결

부대찌개 전문점의 식당 주인들은 한결같이 뽀얗게 곤 사골국물로 육수를 낸다고 하지만 부대찌개 하나 끓여 먹자고 사골 사다가 고아먹는 가정이 과연 몇 집이나 될까요? 그냥 다른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처럼 멸치가루나 새우가루 혹은 먹다 남은 맑은 국의 국물 정도로 끓여도 괜찮습니다. 그도 귀찮다면 쇠고기 다시다를 아주 조금 풀어서 육수를 만들어보세요.

저는 보통 국물을 낼 때 마른 멸치를 볶은 것과 보리새우를 사다가 분마기에 갈아두고 씁니다. 버섯과 다시마도 이렇게 가루를 내서 사용하면 건더기를 버리는 일이 없이 100% 먹을 수 있어 경제적이지요. 국물도 진하고요.

▲ 새우, 멸치, 다시마 등을 분마기에 갈아 집에서 만든 천연조미료입니다.
ⓒ 이효연
분마기를 이용해서 드르륵 한 번만 갈아주면 새우, 멸치, 다시마, 말린 버섯 등이 저렇게 고운 가루가 되어 나옵니다. 냉장실에 넣어두고 요리를 할 때마다 한 숟가락씩 넣어주면 육수도 내기 쉽고 볶음,. 무침 등의 요리에 골고루 사용할 수 있어요. 물론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음식의 맛이 살아나고요.

부대찌개를 만들 때에도 새우 가루를 넣어주면 국물이 달착지근한 것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도 '무언가 모자란다, 식당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머리에서 김이 날 것 같으면 그 때 쇠고기 분말 조미료를 아주 극소량만 넣어보면 '식당맛'이 날 겁니다.

③ 부대찌개의 달콤새콤, 걸쭉한 맛의 비밀은 베이크드 빈스에 있다!

식당 부대찌개를 먹다보면 시큼한 김치찌개의 맛 외에 달콤새콤한 오묘한 맛이 있지요. 그리고 국물도 걸쭉한 것이 절로 입안에 침이 고여집니다. 잘 아는 부대찌개 식당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맛의 비밀은 베이크드 빈스에 있다고 하네요.

▲ 흔히 '케첩 콩'이라 불리우는 베이크드 빈스는 수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 이효연
흔히 '케첩 콩'이라고 불리는 이 베이크드 빈스는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요. 구하기 어렵거나 급하게 만들 때에는 이것 대신 케첩을 한 두 큰 술 넣어주어도 비슷한 맛이 나긴 합니다.

④ 부대찌개는 부지런히 간을 보고, 불 조절을 해야 맛있게 끓일 수 있다

부대찌개의 맛은 똑같은 레서피를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집집마다 다를 수 있으니 끓이면서 간을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각 가정의 김치에 들어간 양념이 다르고 염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또 부대찌개를 끓일 때 사용하는 불의 세기에 따라서도 국물이 졸아드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딱히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레서피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부대찌개 전문점에 가면 주인이 손님들 자리를 오가며 부지런히 불 조절을 해주고 육수를 보충해 주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에는 위의 양념장을 한 곳에 개어서 만들어 둔 다음 육수와 재료를 끓이면서 조금씩 넣어가면서 간을 봐야 맛있는 부대찌개가 만들어집니다.

자, 부대찌개! 이제는 집에서 맛있게 끓여 먹어 보자고요.

그런데 아직 한가지 궁금증이 있습니다. 부대찌개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주전자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보충해주는 그 뽀오얀 육수 말이죠. 그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구수한 육수는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참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효연의 '멋대로 요리 맛나는 요리'  http://blog.empas.com/happymc
평소 잘 가는 부대찌개 식당에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가 "발색제랑 방부제 잔뜩 들어간 소시지가 뭐 그리 좋냐"면서 야단만 잔뜩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햄, 소시지가 몸에 안 좋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 부대찌개의 매력 만큼은 저버릴 수가 없으니 참 고민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