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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수
'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시기이다. 연이은 폭설과 강풍을 동반한 한파에 '정말 겨울다운 겨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던 게 엊그제 같건만 벌써 봄기운이 완연해졌으니 말이다. 이럴 때 입맛을 잃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간절기에 입맛 돋우기 딱 좋은 음식을 소개하려 한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밥상에 오르는 생선 중 가장 흔한 것은 꽁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참치 정도의 대중성이 있었던 꽁치는 참치와 마찬가지로 통조림에 담아져 서민들의 반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 참치는 김치찌개용으로 주로 쓰이는 반면, 그 당시 꽁치는 통조림에 담겨진 그대로 먹는 경우가 많았던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물씬 묻어나는 상차림이다.
ⓒ 유영수
그랬던 그 시절에 갈치는 정말 쉬 먹어 보기 힘든 귀한 생선이었다. 그 시절뿐만 아니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갈치를 맘껏 먹을 수 있는 날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긴 요즘도 음식점에서 사먹을 수 있는 생선 메뉴 중 가장 비싸게 값을 치는 것 역시 갈치다.

그렇다면 왜 갈치는 왜 그리 몸값이 높은 것일까. 거기엔 당연히 합당한 이유가 있다. 갈치에는 칼슘, 인, 나트륨 등 무기질이 풍부해서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좋으며 불포화 지방산인 EPA와 DNA의 함량이 높은 편이어서 기억력 증진에 효과적이라 알려져 있다.

▲ 시장 골목을 사이에 두고 왼쪽 편은 손님을 받는 홀, 그리고 반대편에는 주방이 자리잡고 있다. 늘어나는 손님들 때문에 가게를 조금씩 넓히다 보니 이렇게 독특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유영수
이렇게 효능 만점인 데다 맛까지 부드러운 갈치를 양껏 그리고 맛깔스럽게 손님상에 내어놓는 집이 남대문시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카메라 때문에 볼일이 생겨 남대문에 들렀다 평소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그 유명하다는 갈치조림 전문점을 드디어 방문하게 됐다. 우선 좁은 골목에 걸려진 간판의 상호가 맘에 든다.

'희락'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손님들이 즐거움을 느낀다는 뜻일까. 아무튼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대를 이어 30년 넘게 맛을 지켜가고 있다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저녁 식사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각인데도 식당 안은 쇼핑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꽤 붐비고 있었다.

ⓒ 유영수
우선 갈치조림을 시켜본다.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는 식당 밖 골목에 마련된 불 위에서 양은냄비로 갈치를 한껏 조려준다. 가스불을 얼마나 세게 켜놨는지 냄비는 물론 행여 눌어붙을까 바삐 젓고 있는 아주머니의 손까지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정도다.

잠시 기다리니 테이블에 밑반찬과 밥이 놓여지는데 밑반찬 몇 가지가 함께 담겨진 그릇에는 역시 갈치가 튀겨진 채로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갈치로 유명해진 음식점답다. 한 가지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비닐봉지에 담아져 있는 김이다.

혹시 눅눅해질까 싶어 봉지 안에 담아 놓은 주인장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약간은 촌스럽다고나 할까 어쨌든 정감이 느껴졌다. 그뿐 아니라 이곳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소품 하나하나가 모두 집에서 밥을 먹는 듯 편안한 컨셉트를 유지하고 있다.

ⓒ 유영수
갈치조림이 담겨진 양은냄비만큼이나 커다란 밥그릇에 들어 있는 하얀 쌀밥에 김을 한 숟가락 올려놓은 후 간장을 쳐먹으면 그 맛이 바로 꿀맛이다. 요즘은 가정에서는 물론 음식점에서 사먹는 밥에도 흑미를 넣어 잡곡밥을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지만, 어떤 메뉴에는 유독 흰 쌀밥이 어울리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갈치조림이 아닌가 싶다.

쌀밥 위에 매콤하게 양념된 갈치조림 한 조각을 얹어놓고 입 안에 그냥 넣어도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리는데, 상 위에 있는 김으로 한번 싸먹으면 감칠맛은 배가 된다. 갈치와 김이 이리도 찰떡궁합인 줄은 몰랐다.

▲ 아... 바로 필자의 입 속으로 집어넣고 싶은 충동이 마구 느껴진다.
ⓒ 유영수
양은냄비에 담겨진 갈치조림은 알이 굵고 싱싱한 데다 짠 편이 아니라서 밥 없이 그냥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다. 갈치는 본디 바다 깊은 곳에서 살면서 운동은 많이 하지 않아 살이 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소화기 계통이 약한 노인이나 어린이들의 영양식으로도 권할 만하다.

맛이 좋은 것은 물론 그 양 또한 꽤 흡족할 만하다. 대식가인 필자가 만족할 만하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남길 수도 있다는 뜻일 게다. 갈치조림의 깊은 맛에 푹 빠져 그 커다란 밥공기 하나를 다 비우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 상 위에는 어김없이 계란찜이 하나씩 놓여져 있는 게 아닌가.

▲ 푸짐한 계란찜 하나만으로도 두 사람 정도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 유영수
평소 식탐이 약간 있는 데다 계란찜도 먹어 보고 그 맛을 알려줘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에 덥썩 하나 시키고 말았다. 헌데 혼자 먹기에는 정말 양이 많다. 어지간하면 음식 안 남기는 편인데 도저히 다 먹지 못하고 반을 남기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밥은 한 공기 더 달래서 깨끗이 비웠지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할 경우 사람 수만큼의 갈치조림에 계란찜 하나 더 주문하면 딱 좋을 듯하다. 계란찜에는 참기름을 듬뿍 넣어서 입맛이 까다로운 이들은 약간 느끼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것만 제외하곤 계란찜의 맛도 갈치조림의 그 훌륭함에 비해 별로 빠지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 유영수
이 집에서는 공기밥 두 그릇 정도는 먹어줘야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속살이 부드러운 갈치살은 물론 매콤한 양념이 잘 배어든 무에다 양은냄비에 남겨진 갈치조림의 국물까지 밥에 비벼 먹으려면 밥 한 공기로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당연히 추가로 주문하는 공기밥은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

갈치조림을 배불리 드셨다면 바로 집으로 향하지 말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남대문시장에서 꼭 필요한 물건 하나 정도 쇼핑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아직도 얼어 있는 경기 탓인지 재래시장의 대명사라 할 남대문시장의 북적거림이 예전 같지 않아 보여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덧붙이는 글 |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http://blog.
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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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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