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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깨가루와 들기름을 넣어 더 구수한 멸치볶음
ⓒ 이효연
어제 밤늦게 만들어 본 멸치볶음입니다. 갑자기 아이스크림 생각이 나서 냉동실 문을 열었다가 우연히 얼마 전 한국에서 사 온 멸치봉투가 눈에 들어오기에 야심한 밤에 멸치 볶음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멸치볶음을 만들기는 참 쉽고 간단하지만 그 맛이 집집마다 다른 걸 보면 참 흥미로운 요리란 생각이 듭니다. 같은 조림용 멸치라도 멸치볶음이냐, 멸치조림이냐에 따라서 그것도 고추장 양념이냐 간장 양념이냐에 따라서 현저한 맛의 차이가 나거든요.

저희 어머니 식의 멸치조림은 짜거나 맵지 않은 심심한 간장 맛이었습니다. 가끔은 감자도 같이 볶아서 넣으셨던 것 같고요. 그런데 엄마가 만드신 그 멸치조림은 친구들 도시락에 들어 있던 고추장이 들어간 새빨간 멸치볶음에 비해서 제 입맛에 솔직히 맛이 없었습니다. 뜨거운 밥 김에 눅어서 바삭하지도 않았고요. 게다가 멸치조림에서 흘러나오는 간장이 흰 밥에 스며드는 날이면 정말 도시락 먹는 일이 고역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날마다 어김없이 멸치조림을 도시락에 넣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도시락부터 동생 도시락까지…. 그러니까 매 끼니마다 멸치조림을 먹어야 하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감당해야 할 일종의 의무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집에 가져온 빈 도시락에는 늘 남은 멸치 반찬이 남아 있기 일쑤였죠. 그러면 또 어김없이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집니다.

"왜 반찬을 남겨 오니?"
"그럼 멸치조림 같은 것 말고 다른 반찬 싸주면 되잖아. 정말 먹기 싫어!"
"멸치만큼 몸에 좋은 반찬이 어디 있다고 그래? 일부러 애써 도시락 반찬으로 따로 만든 건데."
"내일도 또 멸치 싸 주면 도시락 안 먹고 매점에서 빵 사 먹을 거얏."

▲ 들기름, 올리브기름, 간장, 설탕, 맛술, 생강즙을 섞은 양념장
ⓒ 이효연
그러나 어머니의 꾸중과 저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내내 멸치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 싸움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동안은 보기도 싫고 먹기도 싫었던 멸치…. 그런데 참 우스운 일이지요. 어른이 되고 주부가 된 지금, 저만큼이나 멸치 먹기를 싫어하는 딸아이에게 매 식사시간마다 예전에 우리 엄마가 저에게 하셨던 말씀을 제가 그대로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엄마께 가끔 안부전화를 드리는 날이면 제가 도리어 '멸치 잔소리'까지 늘어놓는다니까요.

"엄마, 연세 드신 분들은 칼슘을 많이 드셔야 골다공증에 안 걸린대요. 그러니까 멸치볶음 해 두시고 식사하실 때마다 몇 개씩 꼭 챙겨드세요, 아셨죠?"

멸치는 우리 몸의 뼈만 튼튼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간의 정을 단단하게 엮어주는 고마운 칼슘 식품인 것 같습니다.

자!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멸치 볶음을 만들어봅시다

먼저 양념장을 준비합니다.(간장+들기름+기름+설탕+맛술+생강즙)

멸치를 볶으면서 한 두 숟가락씩 양념을 떠 넣다보면 멸치의 일부분에만 양념이 스며들어 맛이 골고루 배어들지 않거든요. 미리 섞어 만든 후 한꺼번에 뿌려서 볶는 것이 좋습니다.

재료

멸치 2-3줌, 기름(식용유나 올리브 오일) 2큰술, 들기름 1큰술,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맛술 1큰술, 생강즙 1/2큰술, 통깨 1큰술, 들깨가루 2큰술, 고추(취향에 따라서)


▲ 마른 프라이팬에 멸치 볶기
ⓒ 이효연
1. 마른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센 불에서 멸치를 볶아줍니다. 이렇게 하면 멸치가 좀 더 바삭해지고요, 비린내도 사라집니다.

▲ 준비한 양념장을 한꺼번에 따라 붓기
ⓒ 이효연
2. 준비한 양념장을 볶은 멸치에 넣고(이때 취항에 따라 고추도 넣어줍니다.) 멸치와 고추에 양념장이 충분히 스며들 때까지 중불에서 볶아줍니다.

▲ 들깨가루를 섞어주기
ⓒ 이효연
3. 어느 정도 멸치와 고추에 양념이 스며들면 불을 약하게 줄여서 준비한 들깨가루를 넣어 버무리구요.

▲ 완성된 멸치볶음
ⓒ 이효연
4. 통깨를 뿌려 접시에 담아내고 참기름을 두르면 완성이에요. 젓갈처럼 멸치볶음도 먹기 직전에 참기름을 뿌리면 향과 맛이 더 좋던데요.

▲ 견과류나 고추 등을 넣어도 맛이 좋은 멸치볶음
ⓒ 이효연
들깨가루와 들기름을 넣어서 구수한 맛을 더한 것이 별미입니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좀 넣어주세요. 고추장은 양념장에 풀어서 넣으면 멸치에 골고루 고추장이 스며들어 요리하기 편하지요.

단맛을 좋아한다면 물엿이나 꿀을 넣으면 되구요. 단, 물엿을 넣을 때에는 맨 나중에 들깨가루를 넣는 순서에서 넣어 슬쩍 버무리면 됩니다. 처음부터 넣어서 볶으면 쉽게 타고 너무 딱딱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더 업그레이드 시키자면, 호두나 잣을 넣어도 맛이 좋지요. 다음에는 고추장을 넣은 멸치볶음을 한 번 만들어볼까 합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그 맛과는 전혀 다른 멸치볶음이 되겠지요. 어머니께서 제가 만든 멸치볶음을 잡수시고 과연 뭐라 하실지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철없이 반찬투정 해대면서 어머니 속을 썪였던 옛날을 생각하면 요리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도시락에 담아주셨던 엄마의 사랑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는지 참 후회스럽네요.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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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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