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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푸징 야시장에 늘어선 88개 포장마차 "전갈, 지네 10위안!"

▲ 왕푸징 야시장의 88개 포장마차 같은 점포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 김대오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빼고 다 먹고, 기어 다니는 것은 탱크 빼고 다 먹고, 다리가 넷인 것은 책상·의자 빼고 다 먹고, 다리가 둘인 것은 엄마 아빠 빼고 다 먹는다.”

중국인의 다양한 요리방식과 거침없는 식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베이징 왕푸징(王府井)의 야시장에 가보면 정말 뱀, 전갈, 지네, 물방개, 애벌레, 불가사리, 해마 등 정말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

양고기 꼬치를 파는 ‘신장(新疆)’에서 온 사내는 양러우(羊肉)의 ‘러우’를 유난스럽게 굴리는 발음으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한국 관광객이 많은 탓에 “맛있다! 뱀, 참새, 전갈, 개구리, 먹어봐!”하는 서툰 우리말도 사방에서 들려온다.

"굼벵이 한 개 주세요."
한국 관광객인 40대 남자가 돈을 낸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향신료가 뒤섞인 냄새는 참겠는데 물컹하면서 독특한 즙이 나오는 건 못먹겠다"며 휴지통을 찾는다.

나는 전갈을 골랐다. 의외로 고소한 게 맛이 괜찮았다. 나와 동행했던 친구는 연달아 두 마리를 먹어치웠다. 지난 해 시식해봤던 불가사리는 겉은 딱딱했지만 속은 다소 느끼하면서도 독특한 향이 났었다.

▲ 구성지고 재미있는 목소리로 호객을 하고 있는 상점 주인들, 서툰 한국어도 사방에서 들려온다.
ⓒ 김대오
왕푸징 야시장에는 ‘돈을 벌다’라는 의미의 ‘發’과 발음이 비슷한 ‘8’에 맞추어 88개의 포장마차 같은 점포가 있다. 이 곳에서는 기상천외한 음식들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손님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혐오스럽게 생긴 뱀, 전갈, 지네, 물방개, 매미는 꼬치 당 10위안(1300원) 정도 하는데 모두 기름에 튀겨진 탓인지 고소한 게 비슷한 맛이다. 이 밖에도 각종 만두와 면류, 검은 두부, 냄새나는 두부(臭豆腐), 야자수, 딸기, 탕후루(糖葫蘆, 산사열매에 설탕물을 입혀 만든 꼬치) 등 다양한 먹거리들이 재미난 호객소리와 어우러져 중국적인 맛과 멋을 물씬 풍긴다.

기상천외한 음식과 관광객·걸인들의 조화, 이곳이 바로 '카오스'

▲ 혐오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식(?)이 많다.
ⓒ 김대오
황제가 거했던 자금성 옆에 위치한 왕푸징은 명·청대 고관대작의 거처가 있던 것으로 뿌리 깊은 전통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현대화 이후 전통가옥들은 거의 사라지고 고층빌딩과 맥도널드, 케이에프시(KFC) 등 세계 다국적 기업의 전초기지가 되고 말았다.

또 관광객들이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들을 뒤져서 주워 먹는 걸인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먹거리 종류와 눈앞에 펼쳐지는 극과 극의 단면들이 이곳이 바로 ‘카오스의 세계’ 중국임을 실감케 한다.

중국 내에서도 베이징의 대표거리인 왕푸징이 유서 깊은 전통문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고 서구화만을 향해 변모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 위생과 현대화의 관점에서 보면 왕푸징 야시장은 도태되어야 할 비위생적이고 낙후된 곳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사스 이후 중국정부는 각종 혐오식품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고 유통경로를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상인들의 불만도 높다. 1988년 개장된 이래 17년간 이곳에서 일했다는 한 점포주인은 “매달 8000위안의 자릿세를 내야 하는데 여름에는 관광객이 많아 벌이가 괜찮지만 겨울에는 겨우 본전치기를 하는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 전통적인 멋을 자랑하는 왕푸징의 먹거리 골목 입구의 모습이다.
ⓒ 김대오
그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이 야시장에 시간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에는 오후 4시~저녁 10시까지, 여름에는 오후 5시~밤 11시까지만 영업할 수 있다. 각종 위생검열이 엄격해져 장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그의 하소연도 뒤따랐다.

그나마 ‘야시장’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던 요리 문화와 중국적인 멋과 맛도 위생과 도시정화의 명목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진 것. 하지만 거대한 상업주의 문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나마 전통적 요소인 요리문화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왕푸징에 대한 존립판단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왕푸징 야시장은 최근 특색 있는 중국요리와 전통공연을 결합해 이를 하나의 문화관광 상품으로 블록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의 옛 모습을 재연해 놓은 거리나 백화점 앞의 인력거꾼 등의 조각상들이 이를 위한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왕푸징 남쪽의 작은 먹거리 골목도 현대 상업문화와 전통문화 요소를 결합해 변화를 꾀했다. 이제 먹거리 골목에서는 중국적인 기념품 판매장과 음식점 주인의 호객소리가 경쟁하듯 울려퍼진다. 2층 식당의 야외무대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배우가 전통음악을 연주한다.

관광 수입원이냐 환경위생이냐... 고심하는 중국정부

▲ 먹거리 골목으로 들어 와 왼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야외 공연장이다. 전통의상을 한 배우가 전통민요를 부르고 있다. 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음식을 먹는 손님은 없었다.
ⓒ 김대오
한국인이 입는 것을 중시한다면 중국인들은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워낙 요리가 발달한데다가 사회주의 시절, 좋은 집과 좋은 옷은 부르주아의 상징처럼 여겨 터부시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에도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國以民爲本,民以食爲天)’라는 말이 있다. 배불리 먹는 ‘원바오(溫飽, 먹고 살만한 수준)’ 문제는 사회주의 중국의 지상 과업이었다.

‘따궈판(大鍋飯, 큰 솥에 밥을 해 공동취식 하는 방식)’ 시대가 지나고 개혁 개방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원바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이제‘샤오캉(小康, 안락하고 풍족한 생활수준)’이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의 먹거리 문화는 그 숫자가 다양해지는 만큼 식품위생, 식품가공, 영양문제 등에서 문제점을 양산해왔다. 왕푸징 야시장은 ‘중국=음식문화’라는 관광수입원과 ‘질병 줄이기=식품위생’이라는 환경문제 사이에서 고심하는 중국정부의 고심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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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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