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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은 태풍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피해만 없다면 은근히 그 태풍을 기다리기도 한다. 태풍은 바닷물을 뒤집어 물을 맑게도 하고 새로운 어장을 만들어 주는 변화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바다에 닥친 사스태풍은 메가톤급 위력으로 중국을 강타했고 엄청난 피해와 상처를 남기고 이제 거의 중국대륙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사스태풍이 중국을 뒤흔드는 동안 우리는 바람에 들추어진 옷자락 사이로 중국의 속살을 훔쳐보기도 하고 휘청거리는 중국의 몸짓에서 그들의 약점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비교적 가깝고 안전한 곳에서 그 태풍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태풍이 갈아 엎어 놓은 그 신선한 중국 바다에 새롭게 그물을 던지고 ‘최대한의 국익’ 이라는 대어를 잡아 올려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사스’라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서 중국의 위기 관리와 대처능력을 평가해보고 사스 이후의 변화를 정리해 보는 일은 포스트사스(POST-SARS)시대 중국의 행보를 가늠해 보는데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사스로 인해 중국 사회의 변화 물살이 빨라짐에 따라 중국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인 우리의 손놀림도 함께 빨라져야 할 때이다.

지난 8월 15일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국 광동(廣東)성에서 ‘괴질’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사스의 전 세계 감염자수는 8월 7일까지 32개국 8422건이며, 치사율은 11% 라고 한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에서만 감염자수가 7082건이며 사망자는 649명에 달했다. 그밖에도 대만은 환자발생 665건에, 사망 180명, 캐나다는 환자발생 251명에, 사망 41명, 싱가포르는 238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3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사스가 창궐한 지난 4월과 5월은 중국에게 그야말로 잔인한 계절이었다. 전 세계가 중국을 백안시하였고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중국탈출 행렬이 꼬리를 물었으며 중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각종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었다. 세계 100여개국에서 중국인의 자국내 입국을 금지시켰고 중국 대부분 지역이 여행자제권고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北京)에서만 총 2521명의 환자가 발생하였고 19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두꺼운 마스크 아래로 패닉에 가까운 불안과 공포를 견뎌내며 가택연금과도 같은 답답한 상황을 경험해야 했다. 베이징이 봉쇄되면서 생필품 값도 올랐다. 사스와 관련한 흉흉한 소문들과 사스환자와 접촉한 이들에 대한 강도 높은 격리는 사람들간의 거리를 더욱 소원하게 만들었다. 수도 베이징은 도시로서의 거의 모든 기능을 상실하고 그저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해 복지부동의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16대(제16차 전국대표대회)와 전인대를 거치면서 새롭게 출범한 후진타오(胡錦濤)체제는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는 사스의 실체를 인정하고 정면돌파의 길을 택하게 된다. 4월 18일 후진타오는 사스에 관하여 더 이상 은폐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4월 26일 사스에 대한 초기의 미온적 대처와 감염자 은폐, 축소 책임을 물어 짱원캉(張文康) 북경 위생부장관과 멍쉬에농(孟學農) 북경 시장을 경질한 데 이어 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원래 일주일이던 노동절 연휴도 하루로 단축하였다.

국가 발전이나 중국공산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는 끝까지 부인하고 버티다가 더 이상 진실을 감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하나의 희생양을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고 새로운 투쟁노선을 들고 나오는 전형적인 중국적 특색의 정책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사스와 관련한 보도를 극도로 자제하던 언론은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사스 특별 방송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동안 축소 은폐되었던 사스 환자수도 현실화되었다. 사람이 운집하는 모든 공공장소는 철저한 통제와 관리체제에 들어갔고 가공할 만한 방역활동이 계속되었다.

사스 환자에 대한 필사적인 의료활동과 의심환자에 대한 강도 높은 격리와 예방조처가 실시되면서 5월 중순 들어 잡힐 줄 모르던 사스의 불길이 수그러들기 시작하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6월 24일 베이징을 사스 관련 여행자제권고지역에서 해제하였고 중국 전지역이 사스의 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중국공산당으로 일원화된 위기대처는 나름대로 강력한 힘으로 주도면밀하고 체계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진타오 주석, 원쟈바오(溫家寶) 총리, 황쥐(黃菊) 부총리 등은 사스와의 전쟁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하며 취임 초기 맞이한 국가적 시련을 국민과 함께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해내며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고 평가할 만하다.

사스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뉴스는 첫 번째가 ‘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들에 대한 후일담이며 두 번째는 사스 한파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중국경제에 대한 희망적인 지표들이다.

전자가 사스 위기에 직면한 중국 정부와 중국 국민들이 합심 단결하여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중화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적 선전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면 후자는 사스병균에도 끄떡없는 건강한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과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스 대처과정에서 ‘한 손에는 사스 퇴치를, 다른 한 손에는 경제건설을 움켜쥐자’던 구호가 이제는 한 손으로는 사스와 맞서 싸운 사스 퇴치영웅의 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브레이크 없이 발전하는 중국경제의 손을 높이 들어 주는 것으로 바뀐 듯 하다.

‘경제건설’ 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양한 시장개방과 개혁개방을 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영도의 일당독재와 마르크스-모택동 사상을 견지해간다는 중국적 특색의 국가 통치 논리가 사스와의 전쟁 과정에서도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사스 퇴치의 성패를 떠나서 사스가 남긴 깊은 상처는 많은 중국인들을 고통스럽게 하였다. 사스의 영향으로 중소기업, 요식업, 상업 및 서비스업계가 영업을 중단함에 따라 약 700~800만 명이 실직하였으며 관광업계는 2768억위엔(圓)에 달하는 적자를 입었다.

사스 기간 중에 베이징의 25% 시민의 수입이 삭감되었으며 숙박·요식업 근로자의 1인당 평균임금은 946위엔으로 낮아졌다. 소비자물가는 채소, 수도 및 전기, 의료, 교육비 등이 크게 상승하면서 0.6%가 올랐다.

어려움이 닥치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서민들이다. 사스로 인해 중국의 서민들은 직장을 잃고 임금이 삭감되었다. 결국 사스는 표면적으로 중국경제를 크게 뒤흔들어 놓진 못했지만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중국에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을 깊은 멍을 남겼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경제적인 수치만 놓고 본다면 사스는 오히려 중국경제의 거대한 성장의 발걸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악역을 맡은 엑스트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사스의 영향으로 금년도 경제성장이 'V'자 혹은 'U'자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 목표인 8%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반기 사스 피해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고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도 동기대비 8.2%가 성장하였고, 국민경제 역시 비교적 빠른 성장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주 깐깐한 '사스 선생님'은 중국사회 구석구석 먼지처럼 쌓여있던 구조적 병폐들을 꼼꼼하게 짚어주기도 하였다. 우선 사스 초기 최고 정치권력에서의 사실 은폐와 축소 그리고 이에 편승한 언론매체의 어용적인 보도태도는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와 당정군(黨政軍)이 일원화되어 있는 구조 하에서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문제의 소지를 안은 채 아주 서서히 개선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사스 초기 중국 의료체계의 허술함은 환자치료에 대한 무능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의료진이 오히려 사스에 감염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사스 이후 중의(中醫)를 중심으로 한 활발한 의약 연구와 낙후된 제반 의료시설에 대한 단계적인 투자와 구조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사스는 중국인들의 다소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생활습관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사스 이후 침을 뱉는 중국인이 많이 줄어들고 음식점도 뷔페 식으로 영업스타일 바꾸었으며 중국인들은 스스로 더욱 개인위생에 신경을 쓰는 모습들이다. 그밖에도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상거래 같은 새로운 쇼핑문화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8월 16일 베이징의 띠탄(地壇)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마지막 사스 환자 2명이 퇴원함으로써 중국에 이제 더 이상 사스 환자는 없다. 그러나 사스병원균과 숙주 등이 아직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고 기온이 낮아져 호흡기질환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겨울이나 봄이 되면 사스가 다시 권토중래(卷土重來)할 가능성은 여전히 아주 높다.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한 포스트사스(POST-SARS) 중국은 이제 전열을 가다듬고 사스 극복의 경험과 위기 상황에서 하나된 국민적 역량을 총집결하여 ‘경제건설’ 이라는 하나의 국가목표에 쏟아 붓고 있다.

중국정부는 사스 발생 이후 우리 정부가 중국 국민에 대해 특별히 차별적인 출입국 통제나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민 철수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안했든, 못했든 간에 이제는 다시 중국시장에 뛰어들어 사스 때 드러난 중국의 약점을 공략해야 할 때이다.

의료, 의약, 환경, 방역, 위생 관련 업이나 개인주의 성향의 핸드폰, PC, 인터넷, 자동차 등은 사스의 영향으로 중국시장에서 더욱 탄력을 받아 고도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사스에 크게 놀라 있는 중국인에게 사스와 증세가 비슷한 유행성감기 예방주사만 들고 가도 크게 환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스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중국, 그 곁에서 우리는 중국의 사스 피로와 사스 상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장기적인 전략과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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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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