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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대한 호랑이가 구름벌판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일월궁전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 대왕의 몸속에서 또 다른 커다란 호랑이 몇 마리가 일월궁전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호랑이들은 순식간에 내달려 일월궁전에 들어와서는 아이들을 할퀼 것처럼 포효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물어버리기라도 할 듯 덤벼댔지만, 선녀들이 어디선가 비단 같은 천을 더 끄집어내어 앞으로 내던졌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는 높은 벽이 보랏빛 화염처럼 이글거리며 호랑이들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호랑이들은 그 벽 앞에 이르러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성난 소리로 울부짖을 뿐이었습니다. 일월궁전의 아이들은 선녀들이 만든 비단벽 안에서 소리 내어 울기만 했습니다.

백호가 바리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바리야, 정신 차려, 얼른 그 여의주를 꺼내어서 저 여의주 함에 넣으란 말이야.”

그제야 바리는 천천히 일어나 다리를 옮겼습니다. 거센 바람에 중심을 잡느라 뒤뚱거리기는 했지만, 천천히 여의주함으로 다가가 쥐고 있는 여의주를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는 조심스럽게 여의주 함의 뚜껑에 손을 댔습니다. 손잡이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열어야할지 몰랐지만, 아까 그랬던 것처럼 여의주 뚜껑에 손을 대자마자 육중한 소리를 내며 함은 입을 벌렸습니다.

바리는 여의주함 속에 들어있는 여의주를 손으로 들어 꺼내었습니다. 그러자 우물 벽에
그려져 있는 금빛과 은빛선이 반짝이기를 멈추었습니다.

바리는 조심조심 왼손에 쥐고 있던 여의주를 안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여의주는 여전히 밝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만났던 가신들이 여의주 안에서 바리를 보고 미소 짓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이 전부 하나 하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여의주가 여의주함에 들어가자 뚜껑이 혼자 슬며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덜커덩 닫혔습니다. 그러자 바리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그 여의주가 쨍그랑 하면서 깨져버렸습니다. 우물 벽에 칠해져 있는 금빛, 은빛선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리가 있던 일월궁전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여의주함 밑으로는 아주 밝은 빛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아래로 뻗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세상의 어떤 것보다 빠르게 세상에 도달하여 천지를 둘러 안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품어 안는, 보이지 않지만 강렬한 빛이었습니다.

그 빛은 아래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일일이 훑고 지나갔습니다. 울창한 숲 어두운 곳에 둥지를 만든 작은 산새도, 집 한 귀퉁이 구석에서 구멍을 뚫고 사는 쥐들도, 세상 밖은 전혀 모른 채 평생을 흙 속에서만 살고 있는 작은 벌레들도, 바다 밑 수 천 리 깊은 바닥에서 헤엄을 치고 사는 자그마한 새우까지도, 그 빛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머리와 가슴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둘러 안았습니다.

그 빛은 모든 생명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과 소원을 빨아올리는 것이었습니다. 해와 달이 뜨기를 기다리면서 모든 생명들이 하나가 되어 바라는 희망과 소원은 그 빛을 따라서 하늘로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그 모든 생명들의 소원을 담고는 여의주함 아래에 다시 와 닿았습니다. 그 순간 여의주함은 터질듯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백호는 얼른 바리의 옷을 입으로 물어서는 뒤로 당겼습니다.

여덟 귀퉁이에 박혀있던 붉은 보석들이 발사된 총알처럼 튀어나와 그 빛 속에서 원을
돌며 하늘로 빙빙 돌며 솟아올랐습니다. 그 보석들은 여덟 가지 색깔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보석 두개가 한 쌍이 되어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그라미는 위 아래로, 옆으로, 아니면 비스듬하게 다양한 모양으로 돌고 있었지만, 방향은 전부 같았습니다.

보석들 사이로는 여의주함에 조각되어있는 신비한 동물들이 날아올랐습니다. 새 같기도 했고, 사자 같기도 하고, 뱀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고 신비로운 동물들이 그 빛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용트림을 시작했습니다.

보석들은 마침내 여덟 개가 전부 하나로 모여 그 동물을 가운데 두고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들었습니다. 보석들이 만드는 동그라미의 내부는 여덟 가지의 색으로 번갈아가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구름 괴물 같은 그 거대한 호랑이는 그 불빛을 똑똑히 응시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호랑이는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땅이 울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호랑이들이 포효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사나운 바람에 섞여서 바리 귀에 들어왔습니다.

분명 그 호랑이의 대왕이 무언가 말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보석들이 갑자기 동그라미 한가운데 모였습니다. 그러더니 보석들은 그때까지 동그라미 안에서 빛나던 빛들을 전부 한자리에 모은 것처럼 아주 강렬한 빛을 쏘았습니다.
그것은 호랑이의 심장을 향해 쏘는 빛줄기가 아니었습니다.

호랑이를 넘어 저 멀고 먼 하늘, 일월궁전의 아이들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하느님들이 사는 궁전 하나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해 그 빛줄기가 달려 나갔습니다.

그때…, 그 빛줄기 끝에서 무언가 달려 나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구름처럼 새하얀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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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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