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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군림했던 장쩌민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제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가 당정군의 최고지도자로 올라섰다. 베이징완바오가 그렇게 막이 바뀌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 김대오
지난 16일 개막된 중국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6기 4중전회)가 나흘 간의 일정을 마치고 19일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무엇보다 장쩌민(江澤民·78)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주석직을 사임하면서 후진타오(胡錦濤·62)가 당, 정, 군을 완전히 장악하며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

또한 당집정 능력과 전국대표대회의 감독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기율조직을 당 중앙에 직속 배치함으로써 당의 사상과 조직 및 기풍을 일신하겠다는 후진타오체제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도 하였다. 중앙군사위 정원을 8명에서 11명으로 확대한 것은 후진타오가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 점쳐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고속 성장보다는 안정과 균형을 강조하는 건실한 성장에 무게를 둔 정책입안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중정 정중동(動中靜 靜中動)

중국의 언론이 최고 지도자인 장쩌민의 사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를 지켜보는 중국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였다. 중국에서도 이미 한 지도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지났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전공의 한 박사생은 중국의 정치체제는 다수 정당이 존재하는 선진국과는 다르다고 전제하고 정쩌민의 퇴장을 '정치적 자연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즉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체제가 공고히 되어 있는 현상황에서 장쩌민의 사임이 커다란 정책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중국은 다수정당이 존재하는 국가처럼 한 정당이 집권하면 기존의 인물들을 자기 정당의 사람들로 전면 물갈이하는 형태의 전면적인 정권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쩌민이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그 측근인사들이 여전히 정계에 남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것은 장쩌민의 막후 실력행사가 장기화될 수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악영향만 아니라면 후진타오체제도 충분히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공산당이 '안정'이라는 키를 굳건히 움켜잡고 있는 한 모든 변화는 동중정(動中靜)의 손바닥 안이며 그 안에서의 민주, 법제체제의 민주화가 끊임없는 정중동(靜中動)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쩌민, 아름다운 퇴장인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장쩌민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은 다양하다. 중국 주요 언론들은 장쩌민 집정 15년의 업적을 찬양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많은 네티즌들도 그에 대한 사랑을 표하고 있다. IP가 220.166.*.*인 한 네티즌은 장쩌민이 없었다면 중국의 고도성장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존경을 표하고 건강을 기원했다. 그러나, 네티즌이 남긴 글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장쩌민에 대한 아쉬운 부분들이 간접적으로 배어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장쩌민의 사임을 기리는 게시판에 '부패척결'과 '대만문제'에 대한 글을 남긴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IP가 61.241.*.*인 한 네티즌은 '장쩌민 퇴진의 최대수혜자는 후진타오가 아니라 국민이다'라고 평하며 장쩌민의 측근비리문제를 간접적으로 지적하였다. 작년 여름에 발생한 상하이 부동산 재벌 저우정이(周正毅)의 금융 비리 사건 등 장쩌민 측근인물들의 비리와 장쩌민의 장남인 장몐헝(江綿恒)과 차남 장몐캉(江綿康)의 사업 특혜문제 등도 무대를 내려가는 장쩌민의 뒷통수를 간지럽게 하는 부분이다.

또한 대만문제에서도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대만독립시간표를 작성하는 등 악화일로를 걷는 것도 장쩌민의 입지를 약화시켰으며 사스 발생 때 보여준 초기 대응 미흡과 불투명한 행보는 그의 지도력을 의심받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기에다가 78세의 고령과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사임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은 과연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일까? 사회과학원의 박사과정의 리우(劉)군은 2002년 물러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는 말로 완곡하게 표현했다. 인민대회당에서의 전원 박수소리를 받기는 했지만 중국국민들의 박수 소리는 좀더 시간이 흘러야 그 정확한 울림을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신중 행보 속 부패 척결, 정치개혁 박차

마오저동은 일찍이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로 군사적 역량의 뒷받침을 강조한 바 있다. 2002년 11월 당 총서기, 2003년 3월 국가주석직에 이어 2004년 9월 19일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한 후진타오는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일련의 과정에 어떤 총성도 피비린내도 없었다. 덩샤오핑이 마오저동을 끌어안았던 것처럼, 장쩌민이 위대한 덩샤오핑사상을 이어받자는 말을 연설 때마다 되뇌였던 것처럼 후진타오도 장쩌민의 3개대표론(중국 공산당은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모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을 마르고 닳도록 찬양하며 전관 예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일당독재체제하에서 전관예우의 불문율을 지키면서 후진타오는 장쩌민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집단지도체제에 의존하며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실적으로 9명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장쩌민 측근인 상하이방(上海幇)으로 분류되는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 서열 2위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칭린(賈慶林)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황쥐(黃菊) 제1부총리전 주석 등이 포진되어 있는 데다가 총 25명의 정치국 위원에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서기 등 절반 가량이 장쩌민의 사람이라는 것이 후진타오의 행보를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투명성과 법치를 내세우며 장쩌민 체제하에 만연했던 기득권 세력들의 부패 척결을 시작으로 기존의 지도자들과는 차별성을 분명히 하면서 칭화방(淸華幇)을 중심으로 자기 세력을 키워 갈 것이다.

이제 공은 후진타오에게 있다. 청렴한 이미지에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한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중화패권주의를 앞세운 뚝심과 야망도 만만치가 않다. 효율, 실용, 합리, 투명성을 강조하는 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가 과연 중국을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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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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