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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5·18기념문화회관에서는 5·18기념재단 관계자와 시민 등 15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제5회 '광주인권상' 시상식이 열렸다. 아웅산 수기 여사를 대리해 버마민족민주동맹(NLD) 본부의장 Win Khet 등씨 등이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24주년을 맞은 '오월 광주'는 어디만큼 와 있을까. 지난 18일 오후 5시 광주시 서구 5·18기념문화회관 대동홀. 5·18기념재단 관계자와 시민 등 15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제5회 '광주인권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 사무총장 아웅산 수치 여사.

인구 5천만의 미얀마는 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62년부터 연이은 군사 쿠데타에 의해 현재까지 군부의 통치를 받은 대표적인 국가다. 88년 학생과 시민들의 민중봉기에 의해 90년 5월 총선을 치렀지만 군사정권은 82%를 장악한 NLD에 아직까지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치적 양심수에 대한 인권탄압은 심각한 상태. 9년여에 걸쳐 연금상태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 역시 이날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미얀마민족민주동맹 본부 의장인 Win Khet씨를 비롯 NLD한국지부 회원과 국제평화캠프 참가자 700여명이 참석해 수상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아시아 인권현실에 눈 돌린 '오월 정신'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5월정신의 뜻을 담아 희망을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아직도 민주주의 꿈이 요원한 가운데 광주인권상 수상은 이들의 투쟁에 큰 용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인권상'은 지난 2000년 제정돼 올해로 5회 째를 맞고 있다. 이 상의 모태는 91년부터 시행해 온 '5월 시민상'과 '윤상원 상'. 5·18유족회에서 시상해 오던 '5월 시민상'과, 항쟁지도부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광주지역 인사들이 주관해 온 '윤상원상'을 통합해 98년 5·18기념재단에 이관한 것이다.

▲ 2000년 '광주인권상'으로 통합되기전 역대 '5월 시민상'과 '윤상원 상' 수상자들
ⓒ 5·18기념재단
통합 '광주인권상'은 명실상부한 광주의 대표적인 상으로 그 위상을 제고하자는 취지이다. 5·18민중항쟁 정신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인권과 평화를 위해 공헌한 국내외 인사를 발굴, 시상함으로써 5·18정신을 선양한다는 것.

초대 수상자는 사나나 구스마오(동티모르 대통령, 2000)이며, 지난해까지 바실 페르난도(AHRC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장, 2001),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2002), 단데니야 G. 쟈얀티(스리랑카 실종자 기념회 대표, 2003)등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통합 '광주인권상'의 수상자를 보면 해외 인사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띈다. 재단이 강조하고 있는 5·18의 전국화, 세계화와도 관련이 있다. 국내 인사는 3회 수상자인 민가협이 유일하다. 이중 구스마오 동티모르 대통령과 올해 선정된 아웅산 수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를 의식해서 일까. 박석무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굳이 노벨평화상 수상자까지 선정할 필요가 있느냐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나라의 투쟁을 돕자는 의미"라며 선정 배경을 길게 덧붙였다.

국가기념일 제정 불구, 자치단체 기념식 단 한 곳 없어

재단 관계자들은 "5·18민중항쟁 투쟁과정과 진실규명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광주가 이제 인류의 평화와 인권의 신장을 위해 되돌려줌으로써 5·18의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0∼18일 개최된 국제 평화캠프 등 국제연대 사업의 의의도 자못 크다.

'오월 광주'가 광주를 넘어 아시아 평화·인권운동에도 기여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는 인권운동의 상징 '오월 광주'가 큰 용기가 될 것이다. 수상자들의 면모에도 손색이 없다. 5·18의 세계화에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광주가 '그 만큼 왔냐'는 것이다. '나눔과 연대', '5·18의 세계화'에 앞서 정작 우리의 내실은 어떠한가 말이다. 18일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5·18 기념식을 치른 자치단체는 단 한곳도 없다. 행정자치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각 자치단체에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항쟁에 참여했던 동지회나 사회단체의 주최로 서울, 부산, 전북, 대구, 대전 등 광주전남지역을 제외한 5곳에서만 조촐한 민간행사가 진행됐을 뿐이다. 지난해 광주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5·18 인지도' 조사결과 발생연도 '1980년'을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은 12.1%에 불과했다.

아직도 발포책임자는 누구인지, 행방 불명자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넝마주이, 구두닦이, 노동자 등 항쟁의 주역이었던 민중들이 바라던 현실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밖으로' 눈을 돌리기에 앞서 우리 안의 '오월 광주'를 되돌아 봐야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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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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