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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팀은 누구야?",
"저 여기 교대인데요, 녹색연합 분들 어디 계세요?"

경기를 한 시간을 앞둔 녹색연합 축구팀의 대화이다. 상대팀이 누군지, 같이 경기할 우리 팀 선수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녹색연합은 마감 당일 신청, 경기 전까지 한번도 발을 맞추지 않은 급조된 팀이다. 설상가상, 경기 한시간 전에서야 발을 맞춰야 했고, 그나마도 11명 모두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간이 임박해서도 상대팀인 '진보사회를 위한 사회인 모임'(이후 진보모임)의 선수가 모두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이래서 한 경기를 이기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실제 우리 '급조팀'은 기권승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설마 우리가 기권 승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아뿔싸! 진보모임팀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운동장에 도착해 한쪽 스탠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선수의 포지션을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녹색연합이 바빠졌다. 시합을 주선한 선수는 책임을 지고 골키퍼, 공격은 회원, 수비는 활동가로 팀이 긴급 급조됐다.

작전회의라는 것도 사실상 별 다를 게 없다.

"야, 가급적이면 다치지 말자. 그래도 끝까지 뛰어야지."라는 정도의 말을 주고받는 게 고작이었다. 운동장에서 한사람이라도 실려나간 다면 그 뒤에 이어 뛸만한 후보가 없기 때문에.

반면 상대팀인 진보모임은 2년 동안 격주로 축구 연습을 해온 준비된 팀으로 선수 기량이 뛰어나고, 특히 조직 축구를 보여주는 팀이었다.

양팀의 이같은 상반된 모습은 경기 내내 그대로 드러났다.

가령 녹색연합은 "저기여(초면이라), 여기 막아야죠, 아니야 저기요 저기!". 이렇게 소리지르기에 바빴다.

반면 진보모임은 완벽한 찬스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경기 시작 5분과 끝날 때의 5분을 조심하라는 말처럼 경기 시작 5분에 녹색연합은 1골을 허용했다. 포지션이 익숙하지 않는 녹색연합이 우왕좌왕 하는 동안 골키퍼와 1대1 상황이 된 것이었다. 우스꽝스럽게 목장갑을 끼고 어쩔 줄 모르는 녹색연합 골키퍼는 그냥 선취골을 허용했다.

1골을 허용한 이후 녹색연합은 더 이상의 실점을 막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수비에 주력했다.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작전이 바뀐 것이다. 대개 이럴 경우 몸싸움이 치열해진다. 결국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녹색연합 문용포 회원이 이상하게도 머리로 상대 선수의 복부를 들이받고 그 선수는 곧바로 운동장 밖으로 실려나간 것이다.

머리로 배 들이받기...최선 다했으나...

축구경기에서 머리로 상대의 배를 들이받는 것은 쉽게 나올 수 있는 포즈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문 회원의 작은 키 때문이었다. 그는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회원으로 시합이 끝나면 설악산 지킴이 활동을 위해 속초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대량실점이 우려되었지만 경기가 지속될수록 녹색연합은 안정을 찾아갔다. 진보모임은 좌우 측면 돌파와 센터링을 통한 추가 득점 기회를 계속 노렸고, 결정적인 슛이 펜스를 맞고 나가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아 전반은 1대0으로 마쳤다.

1대0으로 전반을 마치자 녹색연합은 의외의 '작은 실점'으로 인한 안도감과 나아가 경기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었다. 급조된 팀이기는 했지만 개개인은 동네에서 "한 축구한다"는 평을 받았던 터라 팀 플레이가 이루어지면 이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반전 양상은 진보모임은 전반과 같이 좌우 측면을 통한 찬스를 만들려고 했고, 녹색연합은 오른쪽 측면의 개인 기술을 통한 돌파를 시도했다. 후반은 전반과 달리 팽팽한 접전을 이루었다. 진보모임은 여러 번의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지만 펜스를 맞고 나가거나, 문전 처리가 미숙하여 번번이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한참 발바닥에 땀을 내며 뛰기 시작할 때, 마침 조용했던 녹색연합 응원단의 응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화이팅!", "책상 빼버린다."

이건 응원이 아니라 협박이다. 부부활동가인 한상민, 신근정 간사가 앞장서서 '협박'을 하는 게 아닌가. 이 부부활동가는 환경운동보다는 풍욕 등 생태 육아로 방송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이다.

"책상을 빼겠다고", 협박인지 응원인지...

후반 경기 중반 골대 앞 10m에서 녹색연합 수비의 핸들링 반칙이 있었다. 당연히 페널티킥이었다. 하지만 후반 심판을 본 '녹색친구들(녹색연합 산악모임)' 김두석 회장은 공정하게(!) 프리킥을 선언했다. 진보모임의 선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최고 연장자인 심판의 말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기 종료 1분을 앞두고 녹색연합의 찬스가 났다. 마지막 기회, 전원이 공격에 나서고, 오른쪽에서 센터링 된 공을 녹색연합의 한 선수(사실 필자가 그 주인공인데 자화자찬 같아서 이름은 뺀다. 그런데 진짜 멋진 헤딩이었다고 생각한다.)가 감각적으로 슛을 날렸다. 하지만 수비수에 맞고, 찬스는 무산됐다. 경기는 전후반 1대0으로 진보모임의 승리로 마쳤다.

경기를 마친 뒤 녹색연합의 한 부장은 "사전에 팀 연습만 있었으면 경기를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경기에 같이 뛴 녹색연합 산악모임 '녹색친구들'의 김준 씨와 2개월 동안 등산로 조사를 위해 백두대간을 종주한 문용포 씨는 "왜 등산대회는 없는가? 등산대회도 개최해야 한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들의 산에 대한 사랑은 특별해, 경기를 치렀던 날에도 무박으로 설악산을 오를 예정이었다.

녹색연합은 13일, 1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무척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10주년을 맞아 행사뿐 아니라 '녹색연합 10주년 기념 자료집'과 '녹색연합 10년 통계'를 만들어 10년 활동을 정리하고 있었던 터라 경기 전날과 경기 당일 날에도 밤을 새워야 하는 활동가들이 많았다.

녹색연합은 비록 경기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날 급조된 팀원들은 "이번 대회 참가를 계기로 축구모임을 결성할 것이다"고 결의했다.

이 정도면 축구대회에 나간 보람은 있었던 것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김타균 기자는 녹색연합 조직국장, 홍욱표 기자는 대안사회팀 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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