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계스포츠는 대부분 비인기종목으로 그동안 음지에 가려져 있던 분야였습니다. 평창을 앞두고 동계스포츠 현장에서 내일의 희망을 키워가는 지도자, 관계자 등을 만났습니 [편집자말]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 이희훈


지난해 4월 20일, 예기치 않았던 '장미대선'을 앞두고 강원도 춘천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날 춘천의 중앙로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유세차가 들어서 있었다. 아직 문 후보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시각, 유세차 아래 덩치 큰 남자가 눈에 띄었다.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정말 컸다. 그래서 눈에 더 띄었다. 자세히 보니 가슴팍에 달린 반달곰 배지도 보였다.

유세차 부근이 시끌벅적해질 무렵, 그도 유세차 위에 올랐다. 문 후보도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달린 배지와 똑같이 생긴 인형, 그리고 백호 인형 하나를 더 문 후보에게 건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형을 건네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 22일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다시 만난 강광배 교수(체육학과, 46)는 웃는 얼굴로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 썰매 종목의 '레전드'인 강 교수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고, 마스코트(반다비, 수호랑) 인형을 유력 대선 주자였던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제가 그때 인형을 건네면서 '평창올림픽이 정말 잘 치러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문재인이 선물받은 마스코트 '수호랑 반다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일 오전 강원 춘천시 중앙로 브라운5번가 앞 유세에서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백호) 반다비(반달곰)를 선물받고 있다.

▲ 문재인이 선물받은 마스코트 '수호랑 반다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4월 20일 오전 강원 춘천시 중앙로 브라운5번가 앞 유세에서 강광배 한체대 교수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백호)과 반다비(반달곰) 인형을 선물받고 있다. ⓒ 남소연


"평창, 역사상 가장 큰 교훈 남길 것"

강 교수는 1998년부터 4회 연속(나가노, 솔트레이크시티, 토리노,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것도 한 종목이 아닌 썰매 세 종목(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으로 모두 올림픽 무대에 올랐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사람은 전 세계에서 강 교수가 유일하다.  

그는 1998년 썰매 종목에 있어 척박했던 한국 땅을 떠나, 자비로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홀로 타지 생활을 견뎌야 했기에, 남의 눈을 피해 밤에 폐지를 주우면서까지 썰매와 책을 놓지 않았다. 무릎 부상으로 병상에 누워있을 때, 어머니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수화기 너머로 건네 온 말은 여전히 그의 가슴에 생생히 박혀 있다.

"꿈자리가 좋지 못했는데 별 일 없지."
"어머니, 제가 지금 수업 중이어서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 이희훈


강 교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홀로 구석에 앉아 펑펑 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이후 이를 악물게 된 그는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자격으로 스켈레톤 대회에 출전하고(당시 한국의 국제연맹 미등록), 미국 팀에 봅슬레이를 빌려 타면서까지 썰매 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네 번이나 올림픽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썰매 선구자'로 불리는 그 스스로가 말하듯, "미쳐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강 교수는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개최 계획을 세운 초창기부터 유치위원으로 활동했다. 2002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그 동안 두 번의 좌절과 한 번의 희열을 맛봤고, 지금은 자신의 "꿈이었던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평생 체육인으로 살아 온 그가 왜 특정 정치인을 위해 유세차에 올랐던 걸까. 강 교수는 "2012년 대선 때부터 문 대통령에게 호감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2012년은 이미 평창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그리고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을 2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강원대학교에서 특별 의원총회를 열어 ▲ 중앙정부 차원의 건설비용 지원책 마련 ▲ 남북 공동응원, 남북 단일팀 구성 등 평창올림픽 관련 공약을 내놨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소치올림픽에 봅슬레이 남북 단일팀 출전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소치올림픽을 2년 앞두고, 봅슬레이 종목에 남북 단일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웠어요. 그때부터 (문 대통령이) 평화올림픽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었던 거죠. 제가 정말 원했던 것들이고, 제 철학과도 잘 맞았어요. 지금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갑작스럽게 나온 게 아니에요."

이 때문에 강 교수는 지난해 문재인 캠프의 도움 요청에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다. 그는 "유세차에서 문 대통령이 했던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다만 강 교수는 "올림픽을 마친 후 관련 시설을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라며 "(그곳에서) 세계 대회를 개최하고, 생활체육으로 국민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비난하는 세력에겐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왜 만들어졌나.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며 "고대 올림픽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를 통해 이념과 종교, 국경을 모두 넘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두고) 정치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시선 자체가 정치적입니다. 스포츠는 스포츠로만 봐야 하죠.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전 세계 유일한 분단도인 강원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잖아요. 얼마나 좋은 기회에요. IOC 정신에 입각해 평창올림픽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평창올림픽이 역사상 가장 큰 교훈을 남기는 올림픽으로 남을 거라고 봐요.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도 될 겁니다."

MBC 해설위원 수락을 미룬 '뜻밖의 이유'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가 선수시절 사용했던 썰매를 꺼냈다. ⓒ 이희훈


강 교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방송해설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 동안 이따금 해설 마이크를 잡은 적은 있지만, 올림픽 무대의 해설로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MBC에 소속돼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진행되는 스켈레톤, 봅슬레이, 루지 종목을 매개로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강 교수는 "일단 우리나라에서 썰매 종목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들을 알기 쉽게 시청자들께 전달하고 싶다"라며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썰매 한 번씩은 타봤잖아요. 비료 포대 타듯 썰매 이야기를 풀어 나가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강 교수는 특히 MBC와 인연이 깊다. 2009년 방영된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은 2018년 평창올림픽을 앞둔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 특집에 강 교수도 출연했었다.

"동계스포츠 종목, 특히 썰매 종목이 참 어려웠을 때 <무한도전>이 방송도 해주고, 이후에 MBC에서 다큐멘터리도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에 해설위원 부탁이 왔을 때 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처음 해설위원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강 교수는 MBC에 뜻밖의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그는 "그때 MBC 노조가 파업 중이었다"라며 "그래서 제가 '너무 영광이고, 해설위원도 하겠는데, 파업 끝나면 그때 답을 드리겠다'라고 그랬다. 관련 서류도 파업이 끝난 뒤 보냈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에게 "왜 그랬나?"라고 묻자 곧장 답이 돌아왔다.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스켈레톤,봅슬레이 MBC해설위원 강광배 한국체육대학 교수. ⓒ 이희훈


"MBC 정상화 때문이죠."

강 교수는 썰매 종목에서의 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게 봤다. 특히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에게 거는 기대가 커보였다. 강 교수는 고교생 윤성빈을 직접 한국체육대학교 썰매팀으로 선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스포츠, 특히 올림픽에서의 메달은 100% 장담할 수 없어요. 특히 (야외에서 하는) 동계 종목은 자연을 벗 삼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온도, 기후 등에 영향을 받죠. 그럼에도 윤성빈은 (2017-2018시즌 출전한) 일곱 번 월드컵대회에서 다섯 번 우승하고 두 번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또 윤성빈의 몸 상태로 볼 때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강 교수는 "(그 동안의 모습만 봐도) 윤성빈은 이미 메달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본다. 이미 챔피언이다"라며 "꼭 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즐기면서 경기에 임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한편으론 정작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그의 심정은 어떤지, 그리고 선구자로서 느껴야 하는 공허함은 없는지 궁금했다. 강 교수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참 뛸 때는 '나도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모든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더군요. 저는 씨를 뿌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운명인 거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따는 건 제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강광배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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