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출시된 영화 <분노의 역류>(Backdraft)는 론 하워드 감독과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의 콜라보가 돋보이는 소방 영화의 바이블로 평가받는다. 3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까지 필적할 만한 경쟁작을 찾아보기 어렵다.  

명배우 커트 러셀, 윌리엄 볼드윈, 로버트 드니로 등이 출연해 평론가들로부터도 큰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배우들이 영화 촬영 전 시카고 소방대원들과 함께 화재현장에 출동했으며 실제 소방대원처럼 보이기 위해 소방학교에 입소해 훈련도 받았다고 한다.    

영화의 원제인 '백드래프트(Backdraft)'는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갑자기 산소가 공급되면 폭풍을 동반한 화염이 분출되는 현상으로 소방대원에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 중 하나다. 

대개 소방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불과 소방관의 대결이라는 한계에 갇혀 과장된 스토리의 비현실적인 벽을 넘을 수 없었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132분 동안 스릴은 물론이고 소방관의 삶과 현장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해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영화 <분노의 역류> 포스터

영화 <분노의 역류> 포스터 ⓒ Universal Pictures

 
영화의 스토리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시작된다. 

시카고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과 NBA 우승 6연패에 빛나는 시카고 불스도 유명하지만 "진정한 소방관들의 고향(Home of the real firemen)"이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1971년 시카고 소방서 스테이션(Station) 17. 소방서에서 캡틴(Captain, 우리나라의 소방경에 해당)이라는 계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빠 맥카프리를 방문한 형 스티븐(커트 러셀 분)과 동생 브라이언(윌리암 볼드윈 분)은 소방관 집안 출신이다.    

어느 날 브라이언은 아빠를 따라 화재현장에 함께 출동하고 아빠가 어린아이를 구조하는 모습에 기뻐한다. 하지만 곧바로 불길한 음악이 이어지고 상황은 급변한다. 화재를 진압하던 동료 대원이 가스관을 잘못 건드려 폭발하면서 브라이언의 영웅이었던 아빠는 사망하고 만다.

순직 사고 후 20년.

브라이언은 수습 소방대원(Probie)이 되어 형 스티븐이 근무하고 있는 가장 힘든 소방서에 발령을 받는다. 하지만 형 스티븐은 첫 출근부터 지각을 하고 현장에서 단독으로 행동하는 동생 브라이언을 못 마땅해한다. 

브라이언 역시 "불은 절대 날 이길 수 없어"라며 마치 시카고 불스의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형이 탐탁지 않다.   

한편 연쇄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화재조사관 도널드 림게일(로버트 드니로 분)은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잭 피츠제랄드 소방서장의 은퇴식에서 브라이언은 화재조사관 림게일과 함께 근무해 보지 않겠느냐며 시의원 알더맨 스웨이잭으로부터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진정한 소방관이 되고 싶다며 거절하지만 결국 형에 대한 열등감과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소방서를 뛰쳐나와 림게일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화재조사가 진행되면서 폭발사고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을 목적으로 한 방화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스와이잭을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범인이 스와이잭마저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브라이언은 감옥에 수감 중인 희대의 방화범 로널드로부터 방화범에 대한 힌트를 얻고 형 스티븐을 의심한다. 하지만 진짜 범인은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소방관 에드콕스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사실을 안 스티븐은 에드콕스를 설득하려 한다.

그 순간 화학공장에서 화학사고가 발생하고 현장에서 스티븐과 브라이언은 무분별한 소방인력 감축으로 동료들이 죽은 것에 대해 복수하고 싶었다는 에드콕스의 자백을 듣게 된다. 

결국 화학공장 화재로 에드콕스는 숨지고 스티븐도 중상을 입는다. 구급차 안에서 스티븐은 브라이언에게 에드콕스가 범인임을 밝히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직한다. 애절한 백파이프 연주가 울리고 시카고 소방대원들이 순직한 에드콕스와 스티븐을 추모하며 거리를 행진한다.   

림게일과 브라이언은 스와이잭의 비리를 공개하고 브라이언은 다시 소방서로 복귀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소방관들의 천국'이라는 미국 소방의 모든 것이 담긴 이 영화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리뷰가 달릴 정도로 온갖 명대사가 등장한다.

스티븐: "문제는 우리 같은 직업은 숨을 데가 없다는 거야. 불은 자칫하면 사람이 죽어. 실수는 용납이 안 된다고..." 

스티븐: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You go, we go)"

스티븐: "이런 위협에 놀라지 마. 불에 겁먹으면 안 돼." 

도널드 림게일: "불은 살아있어. 숨 쉬고 먹어 치우고 모든 걸 증오해. 불을 이기려면 불처럼 생각해야 해."


형제가 어렸을 때 훌쩍 떠나가 버린 아버지의 빈자리. 어린 형은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그만의 방식으로 동생을 지키고자 했지만 거친 방식의 일방적인 사랑은 형제를 갈등 상황으로 몰고 간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된 형제는 그렇게 불과 싸우며 서로를 알아간다.  

시카고 소방서의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영화 속 소방장비들은 마치 고향집을 보듯 정감이 간다. 또한 소화전 옆에 주차된 자동차를 사정없이 부수고 소화전을 연결하는 장면에서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당시만 해도 소방대원은 영웅이라는 생각과 현장에서의 죽음이 미화되는 점은 요즘의 콘셉트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단연 베스트라고 평가할 만하다.     

소방관 별점: ★★★★★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건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 이건 소방검열관 소방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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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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