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화면 밖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타와 작품을 위해 카메라 뒤에 서는 숨은 공신들을 조명합니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마세요. [편집자말]
<풍문으로 들었소> 지난 10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6회의 마지막 장면. 한정호(유준상 분)는 아들 한인상(이준 분)과 아이를 낳은 서봄(고아성 분)의 부모를 집으로 초대해 그들과 사돈을 맺고 싶지 않은 속내를 드러냈고, 이는 몸싸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 <풍문으로 들었소> 지난 10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6회의 마지막 장면. 한정호(유준상 분)는 아들 한인상(이준 분)과 아이를 낳은 서봄(고아성 분)의 부모를 집으로 초대해 그들과 사돈을 맺고 싶지 않은 속내를 드러냈고, 이는 몸싸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 SBS


몸을 누이면 발가락이 화장실에 닿을 듯한 원룸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 여기선 벌어진다. 혼전 출산을 한 딸 서봄(고아성 분) 때문에 얼떨결에 법무법인 한송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라는 거물급 사돈이 생긴 서형식(장현성 분) 부부. 사돈의 초대를 받아 간 대궐 같은 집에서 서형식은 화장실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거실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연회를 즐겼을 법한 누각이 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한정호 부부는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서민층 사돈 서형식 부부에게 "과수원을 줄 테니 전원생활을 하시라"며 품격 있게 협박한다. 하지만 아들 한인상(이준 분)이 이를 보다 못해 "슬프고 부끄럽다" 일갈하자, 이성과 품위를 잃은 한정호가 그를 잡으려 누각의 난간을 넘다 가랑이가 끼이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그저 평범한 가정집 식탁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사고다.

대한민국 1%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풍자하는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연출 안판석·극본 정성주)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한정호의 집은 그를 연기하는 유준상이 "아직도 집 안을 다 못 봤다"고 할 정도로 크다. 1층 공간만 180평인 세트의 공사기간은 한 달, 비용은 무려 7억 5천만 원이 들었다.

전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가풍에 따라 집안 대대로 내려온 기와집을 개조한 이 공간은 독특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한옥과 양옥을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이는 안판석-정성주 콤비의 전작 JTBC <밀회>에서도 세밀한 무대를 만들어 냈던 이철호 미술감독이다.

"선대부터 기득권층으로 살아온 자만심 표현하는 집"

<풍문으로 들었소> 세트를 만들어 낸 이철호 미술감독은 2007년 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드라마 <황진이>로 미술상을 받고, <뿌리깊은 나무> <마녀의 연애> <밀회> <마이 시크릿 호텔> 등 50여 편의 작품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 <풍문으로 들었소> 세트를 만들어 낸 이철호 미술감독은 2007년 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드라마 <황진이>로 미술상을 받고, <뿌리깊은 나무> <마녀의 연애> <밀회> <마이 시크릿 호텔> 등 50여 편의 작품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 SBS


화려한 꽃과 카펫 같은 장식이 무색하게도 어둡고 음산하기까지 했던 한정호의 집은 새 생명이 태어나고, 코믹한 장면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많이 밝아졌다. 이철호 감독은 "극 초반에 권위적이고 무게감 있는 느낌을 주려고 전체적으로 촬영조명을 어둡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 드라마에서 한옥은 단순히 고풍스러운 멋뿐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기득권층으로 살아온 한정호 집안의 자만심을 표현한다. 이 감독은 "마당이었던 곳은 거실과 식당이 되고, 현대 건축물이 천장으로 덮어 지붕이 실내로 들어간 구조라 마치 옛날 기와집을 전시한 느낌"이라며 "전형적인 부잣집을 꾸미려 장식적인 접근을 하기보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어 풍자나 해학을 담는 공간으로 설정했다"고 덧붙였다.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비서(서정연 분), 박집사(김학선 분), 가정부 정순(김정영 분).

▲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비서(서정연 분), 박집사(김학선 분), 가정부 정순(김정영 분). ⓒ SBS


공간이 넓은데도 탁 트여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이 집안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호 가족 외에도 각 부부의 비서, 집사와 가정부, 보모 등이 상주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함하기 위해서 공간을 계급화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정호 부부가 머무는 한옥과 자녀들의 방이 있는 2층 양옥, 식당, 주방, 접견실, 집사방 등으로, 하나의 큰 집이라는 개념적인 공간 속에 다양한 공간을 서로 대조·대비되도록 모아놓았습니다."

"부잣집이 삶을 펼쳐놓는다면, 가난한 집은 구겨 넣어야"

이철호 미술감독은 SBS <태양을 삼켜라>에서 약 40억 원이 들어간 대저택 세트를, tvN <마이 시크릿 호텔>에서는 특급 호텔을 옮겨놓은 듯한 400평 규모의 세트를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밖에 없는 최상류층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 "단순히 멋있는 공간을 베끼는 게 아니라 드라마의 콘셉트와 구성요소를 설정하고 각 공간에 맞는 자료를 찾아본다"고 한 이 감독은 "한정호의 집은 중국 청도에서 독일양식의 건축물을 보고, 그 전통성과 권위적인 느낌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 일부 양식을 차용했다"고 답했다.

<풍문으로 들었소> 용산 재개발 사각지대로 설정된 서봄의 집 내부. (위)식사 중인 서봄의 부모 김진애(윤복인)-서형식(장현성 분)과 (아래)서봄의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

▲ <풍문으로 들었소> 용산 재개발 사각지대로 설정된 서봄의 집 내부. (위)식사 중인 서봄의 부모 김진애(윤복인)-서형식(장현성 분)과 (아래)서봄의 언니 서누리(공승연 분). ⓒ SBS


사실 더 리얼한 공간은 그 반대편에 있다. <밀회>에서 가난한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 분)의 집 화장실 타일에 눌러 붙은 곰팡이까지 만들어 냈던 이철호 감독의 세밀함은 서봄의 집 부엌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청테이프와 찬장을 메우고 있는 그릇, 양념통 등 온갖 잡동사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폭이 좁고 긴 형태의 이 집은 용산 재개발 사각지대 어딘가로 돼 있는데, 이는 서형식이 사양산업인 간판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스토리와 맞물리는 설정이라고.

"(양 극단의 작업) 모두 재미있습니다. 부잣집은 삶을 다 펼쳐놓을 수 있지만, 가난한 집은 삶을 그 작은 공간 안에 다 구겨 넣어야 하니 좁은 공간을 활용하거나 용도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캐릭터나 생활을 담아서 아기자기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점이 좋습니다."

이철호 감독은 "드라마가 진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장식적인 것이 아닌, 반드시 사실적인 설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싼 물건들로만 채우면 부잣집이 되고, 그 반대라고 서민들의 삶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규칙적으로 짜인 전통문양의 문살은 매사 '플랜'을 세워 살아가려는 한정호 집안을 닮았고, 서봄네 집 식탁 위에 놓인 소주병은 아버지 서형식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기울이는 반주를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풍문으로 들었소>의 세트는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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