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화면 밖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타와 작품을 위해 카메라 뒤에 서는 숨은 공신들을 조명합니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마세요. [편집자말]
 JTBC <나홀로 연애중>의 황용연 촬영감독과 2대 가상연인으로 출연한 그룹 소녀시대 유리. '1인용 가상현실 로맨스'를 표방하는 <나홀로 연애중>은 1인칭 시점에서 촬영된 VCR 속 여성과 가상 데이트를 하며, 다양한 상황에서의 퀴즈를 통해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JTBC <나홀로 연애중>의 황용연 촬영감독과 2대 가상연인으로 출연한 그룹 소녀시대 유리. '1인용 가상현실 로맨스'를 표방하는 <나홀로 연애중>은 1인칭 시점에서 촬영된 VCR 속 여성과 가상 데이트를 하며, 다양한 상황에서의 퀴즈를 통해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 황용연


지난주엔 에이핑크 정은지와 손을 잡고, 이번 주엔 소녀시대 유리가 "오빠앙~"이라고 부르며, 다음 주엔 다비치 강민경과 데이트를 하는 남자가 있다. 나열하고 보니 난봉꾼 같아 보이지만 실은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을 뿐인 그는, TV 화면 속 여성과 가상 데이트를 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나홀로 연애중>의 황용연 촬영감독(38)이다.

스튜디오의 MC들과 시청자들이 화면 속 가상연인을 보며 쓸데없이 아련한 눈빛을 일방적으로 발산할 때, 여자 연예인들과 직접 대면하고 있는 황용연 감독은 이 프로그램의 실질적인 '최대 수혜자'로 불린다. 최근 <나홀로 연애중> 기자간담회 당시 전현무와 성시경 등 MC들은 손만 등장하는 그를 두고 "우리 은지와 잡는 손이 노화돼 있다", "자세히 보면 옷소매도 헤져 있다", 심지어 "손톱에 때가 꼈다"며 질투를 넘어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 감독은 "나름 내 손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열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네일아트라도 받아야 하나 싶다"고 농담을 던졌다. "평소 추위에 떨면서 촬영하다 보니 옷도 크게 신경을 안 썼다"는 그는 촬영감독이 연기까지 해야 하는 <나홀로 연애중>을 통해 낯설면서도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다. 

촬영하며 연기까지..."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JTBC 가상연애 프로그램 <나홀로 연애중>에서 1대 가상연인으로 출연한 그룹 에이핑크 정은지.

JTBC 가상연애 프로그램 <나홀로 연애중>에서 1대 가상연인으로 출연한 그룹 에이핑크 정은지. ⓒ JTBC


황용연 감독은 요즘 때 아닌 연기 고민 중이다. 1대 가상연인인 정은지 편에서 드디어 여자친구의 집에 입성한 주인공이 첫 키스를 기대하며 수줍게 구강청결제로 손을 뻗는 장면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황 감독은 "여자친구가 '라면 먹고 갈래?'라고 물었을 때, 좋다고 뛰어 들어갈 수는 없지 않나. 그럴 때 조금 망설이는 모습을 카메라로 표현하는 등 나름의 연기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청자를 대변하는" 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최대한 몰입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 과거에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준말)'깨나 탐닉했을 법하지만, 그게 뭔지도 모른단다. 촬영을 빙자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는 의심 어린 시선에, "일이니까 그저 어떻게 하면 예쁜 그림을 만들까 고민할 뿐"이라고 손사래를 친 그는 가상연인으로 등장했으면 싶은 연예인을 묻자 "우리 나이대에는 아무래도 김태희 씨가..."라고 조심스레 바람을 전했다.

- 기존에 했던 촬영과 많이 다를 것 같다.
"보통 카메라는 관찰자 입장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맴돌았다면, 이번에는 시선의 주체가 되는 상황이라 기존 촬영보다 능동적이다. 게다가 내가 연기까지 해야 하니까 색다른 경험이다. 드라마 대본과 달리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 지문이 없는데다가, 손으로만 연기해야 해서 어렵기도 하다."

- 1인칭 시점이라 표현하는 앵글도 다르지 않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앵글을 쓰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종종 시도를 해왔다. 1997년에 영국 그룹 프로디지의 'Smack My Bitch Up(스맥 마이 비치 업)' 뮤직비디오가 방탕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됐는데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내게도 1인칭 시점 콘셉트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들어와서 고민한 적이 있는데, 마침 이 프로그램이 1인칭으로 VCR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반가웠다."

 <나홀로 연애중> 강민경 편의 촬영현장. 황용연 촬영감독은 "헬멧을 이용한 기존 1인칭 촬영기법을 편의에 맞춰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한 카메라를 직접 제작하여 촬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홀로 연애중> 강민경 편의 촬영현장. 황용연 촬영감독은 "헬멧을 이용한 기존 1인칭 촬영기법을 편의에 맞춰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한 카메라를 직접 제작하여 촬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황용연


- 가끔 두 손을 모두 쓰는 장면도 있는데, 그런 건 어떻게 촬영하나?
"(<나홀로 연애중>의 전신인) <상상연애대전>(2012) 때는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어깨에 올리고 그 사이에서 다른 사람이 손 연기를 했다고 들었다. 촬영감독과 연기하는 손의 합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가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번에는 헬멧에 장착하는 카메라를 제작해서 촬영하는데, 내가 앵글을 보며 직접 연기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도 절약되고 표현의 범위도 넓어졌다. 성치경 PD님도 만족하셨는지 '너만큼 자연스럽게 연기할 사람이 없다'면서, 다른 프로그램에서 예정돼 있었던 해외 출장도 못 가게 막았다.(웃음)

물론 단점도 있다. 상대 배우를 가까이서 찍을 때 클로즈업에 맞는 렌즈를 껴야 하는데, 연기하는 내 팔까지 화면에 나와야 하니까 와이드렌즈를 쓴다. 앵글이 약간 휘어져서 왜곡돼 보이기 때문에 배우를 예쁘게 찍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 사실 '가상현실'은 표현하기에 따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포맷이 아닌가?
"화자가 노출되지 않는 1인칭 시점은 내 얼굴을 모르니까 어떠한 행동을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액션이라든지 선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콘텐츠라면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아저씨>에도 상대를 칼로 찌르는 장면을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나홀로 연애중>은 TV 프로그램이고, 알콩달콩 연애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수위를 높여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사실 재미없는 예능 촬영...'나홀로 연애중'은 달라"

 <나홀로 연애중> 황용연 촬영감독

<나홀로 연애중> 황용연 촬영감독 ⓒ 황용연


황용연 감독은 <나홀로 연애중>을 비롯해 <무한도전> <룸메이트> < K팝스타 > 등을 촬영하는 전문업체 C-TEAM의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해 관련 기자나 평론가를 꿈꾸던 그는 음악을 들려주면서 보여주기도 하는 뮤직비디오와 독립영화 등을 시작으로 스무 살 때부터 촬영 일에 발을 들였다.

방송 촬영을 한 지는 7~8년 정도 됐지만, 사실 뮤직비디오나 영화보다 재미는 없단다.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황 감독은 "예능은 10대 이상의 카메라가 주문에 따라 담당하는 피사체만을 잡아야 하고, 특히 관찰예능은 한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나홀로 연애중>은 내가 주체가 되어 연기까지 하니까 정신적으로는 피곤하지만 결과물을 봤을 때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저 '촬영만' 해주는 것에서 역할이 확장된 셈이다. 황 감독은 "다른 촬영에서는 배우들이 연출자와 상의를 하기 때문에 나와는 이야기 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 프로그램은 함께 연기를 해야 하니까 '손을 내밀었을 때 이렇게 잡아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내가 상대배우의 입장에서 디렉션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나홀로 연애중> 촬영은 평균 20시간 넘게 진행된다. 고되기도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이 가상연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조건이 아닌가. 황용연 감독은 "현장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나를 '남친'이라고 부른다"면서도 "문제는 헬멧을 벗으면 못 알아본다는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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