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일대종사>는 엽문(1893~1972)의 일대기를 다룬 것 같지만, 왕가위 감독은 팔괘장의 고수 궁이(장쯔이 분)라는 허구적 인물과 연결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궁이의 아버지 궁보삼은 형의권과 팔괘장을 완성한 북방 권법의 고수다. 그는 엽문(양조위 분)이 사는 광동의 불산에 와서 은퇴식을 열고자 한다. 궁보삼은 엽문에게 지존의 자리를 물려주지만, 그의 딸은 엽문을 불러 한판 대결을 펼친다. 궁이가 승부욕을 보이자 엽문은 "쿵푸란 어차피 정밀함의 대결인데 기물 하나라도 부수면 진 걸로 하자"고 제의한다.

우아하면서도 격렬한 두 고수의 대결. 결과는 궁이의 승리다. 궁이는 엽문에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으니 감춰진 수를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대련 후, 엽문은 궁이를 보러 동북으로 가고자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 엽문은 일제에 집을 빼앗기고 두 딸도 잃는다. 이후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은 생계를 위해 제자를 받는다. 엽문과 궁이는 뜻밖에 홍콩에서 재회하지만 엽문은 결국 '잎사귀 아래 꽃을 감춘다'는 궁이의 64수를 보지 못한다. 대신 궁이는 엽문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예가 아무리 높은들 하늘보다 높겠으며 자질이 아무리 깊다 한들 땅보다 깊겠습니까"라고.  

"쿵푸란 단 두 글자로 요약된다. 수평과 수직, 쓰러진 자는 수평, 서 있는 자는 수직이다."

 <일대종사>의 한 장면

<일대종사>의 한 장면 ⓒ CGV 무비꼴라쥬

이 간결한 말은 백전백승 무술가 엽문의 일생을 요약한다. 오늘날 쿵푸를 서방에 알린 이소룡(1940~1973)의 사부가 엽문이고 엽문의 사부는 진화순(1836~1909)이다. 엽문은 진화순의 마지막 제자였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영춘권을 중심에 놓고 궁보삼의 형의와 팔괘, 일선천(장첸 분)의 태극권도 버무린다. 크게 보면 근대 쿵푸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것 같지만 왕가위는 오히려 '궁가 64수의 고수' 궁이의 삶을 엽문에게 엮는다.

궁이는 아버지를 죽인 사형 마삼에게 복수하기 위해 혼인도 포기하고 결투를 벌인다. 뜻은 이루지만 내상을 입고 아편으로 견디다 결국 쓸쓸히 객지에서 병사한다. 엽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궁이는 무공 대신 엽문을 잠시 마음에 담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무술인에게는 자신을 보고 천지를 보고 중생을 보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면서 "나는 마지막 단계를 보지 못했다"며 엽문에게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가 달라고 부탁한다.

무술가로서의 엽문을 만들었던 숱한 대결 장면은 사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부록으로 잠시 나온다. 영화는 엽문이 궁이를 만나는 부분부터 이별하기까지를 다룬다. 표면적으로 엽문은 궁가 64수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왕가위는 천 년 무술의 역사에서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강렬한 만남. 무술인만이 아닌 무도인으로서의 엽문을 만든 것은 궁이였는지도 모른다. 왕가위가 엽문의 잎사귀 아래 숨긴 것 역시 궁이였는지도 모른다.

왕가위는 다큐적인 전기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이다. 영화는 덧없는 삶의 가장 빛나는 시절과 애틋하고 아픈 시절, 담담해진 황혼의 시간을 말한다. 물론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이 만들어낸 액션은 여전히 우아하고 현실적이다. 엽문과 궁이의 대결 장면이 정중동의 섬세하면서 에로틱한 액션이라면 궁이와 마삼의 봉천역 결투 장면은 압권이다. 초반의 우중 대결은 왕가위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빗속의 눈물 연기 등 송혜교의 절제된 내면 연기도 영화에 기품을 더한다. 

 <일대종사>의 한 장면

<일대종사>의 한 장면 ⓒ CGV 무비꼴라쥬


왕가위는 오랜 준비 끝에 쿵푸의 정신적 뿌리를 드러내며 자기만의 어법으로 엽문을 해석하고 창조했다. 이처럼 단단하게 기품 있고 슬프게 아름다운 엽문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엽문이 궁이에게 주었다가 돌려받은 외투의 단추 하나로 인간적인 면모도 상징화했다.

견자단의 엽문이 단단한 무술인을 보여주었다면 양조위는 세파를 견디며 중생의 등불이 된 무도인 엽문의 초상을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와호장룡>의 철없는 검객에서 출발한 장쯔이는 영화에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한 팔괘장의 고수로 연기의 폭을 넓혔다.     

일대종사 왕가위 양조위 장즈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