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한마디로 '정치의 해'입니다.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고 다큐를 예능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옛말이 된 듯 합니다. 정치인의 경박한 한마디가 예능못지 않은 웃음을 주고 있고, 웃자고 한 예능인의 한마디로 정치인의 선동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오마이스타>는 예능과 영화 속에 담긴 '2012년 대한민국 정치'를 살펴봤습니다. [편집자말]

<해를 품은 도지사> 작년 12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불시에 119에 전화를 건 사건 이후, 누리꾼들이 만든 패러디는 봇물을 이뤘다. <해를 품은 도지사>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영상에 김문수 도지사의 얼굴과 음성을 합성한 패러디물이다.

▲ <해를 품은 도지사>작년 12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불시에 119에 전화를 건 사건 이후, 누리꾼들이 만든 패러디는 봇물을 이뤘다. <해를 품은 도지사>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영상에 김문수 도지사의 얼굴과 음성을 합성한 패러디물이다.ⓒ 디시인사이드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다. 지난해 12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이른바 '119 전화사건' 이후로 봇물처럼 쏟아졌던 패러디는 여전히 그 소재가 무궁무진 한가보다. 이번에는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사극 <해를 품은 달>과의 합성, <해를 품은 도지사>다.

영상은 왕세자 이훤에게 재차 누구냐고 묻던 김문수 도지사가 그의 정체를 알고 당황한다는 내용이다. 김문수 도지사의 이름은 성씨 김·물을 문·누구 수라는 한자로 풀이됐다. 119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 도지사인데, 누구요?"라는 말만 반복했던 당시 상황을 꼬집는 재치다.

누리꾼들이 만들어낸 '도지사' 패러디는 약 한 달간 끊임없이 쏟아졌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전화를 받는 장면에 김문수 도지사의 음성을 합성했는가하면, <나는 가수다>의 제목을 빌린 <나는 도지사다>라는 똑 떨어지는 문구가 탄생했다.

이 정도면 '도지사 콜렉션'으로 전시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번 패러디는 완장 찬 사람의 권위의식에 대한 가장 유쾌한 방식의 조소를 보여준 셈이다. 만화·드라마·영화 등 대중문화와의 결합으로 파생된 하위문화로써 누리꾼들의 패러디는 예능과 같은 방송보다 수위가 높은 만큼 더 통쾌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12일 손바닥tv '이상호 기자의 손바닥뉴스'에 출연해 자신을 빗댄 패러디물을 보고 있다. 한 누리꾼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이용해 만든 이 패러디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지난 12일 손바닥tv '이상호 기자의 손바닥뉴스'에 출연해 자신을 빗댄 패러디물을 보고 있다. 한 누리꾼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이용해 만든 이 패러디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MBC


웃자고 하는 패러디, 죽자고 달려들 수 없는 정치판

패러디의 본질은 풍자다. 누군가의 작품을 모방해 희화한 패러디는 또 다른 작품이 된다. 물론 악의성이 지나친 패러디도 작품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있지만, 대개 어느 정도의 희화는 웃음을 위해 허용되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패러디 문화는 인터넷이 활성화된 2000년 이후부터 급성장했다. 시사 풍자 사이트 딴지일보와 디지털 카메라 정보교환 커뮤니티였던 디시인사이드가 주축이 돼 사진 합성, 음원 믹싱 등으로 다양한 패러디물을 만들어냈다.

그중 정치는 패러디계의 단골 소재가 되곤 했다. 딱딱하고 무거운 정치판과 유머의 결합은 성역을 허물고, 권력층을 씹고 뜯고 맛보기 좋도록 말랑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패러디에 발끈했다가는 '개그를 다큐로 받는' 소인배가 될 수 있어,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들기도 뭐하다.

정치인들로서는 수난, 하위문화로서는 수작

이런 상황 하에 쑥쑥 자란 정치 패러디는 하나의 놀이요, 문화가 됐다. 개중에는 꽤 수준급의 작품도 나왔다.

가장 기본적인 형식은 영화 포스터에 정치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방법이다. 패러디의 묘미는 원작과 얼마나 흡사하면서 허를 찌르는 차이점이 있냐는 것인데, 여기 잘 만들어진 포스터 패러디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에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물 <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에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물 <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이용한 이명박 대통령 패러디 <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MB 정부 출범 당시부터 747공약(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이라는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안기며 서민들을 MB노믹스의 세계로 인도했던 이 대통령의 결과적으로는 어긋난 약속을 절묘하게 꼬집고 있다.

분명 원작과 똑같은 구도지만, 배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대통령의 얼굴과 손에 든 물건들이 다르다. 앞에서 뛰고 있는 그는 삽 한 자루와 십자가를 들고 있다. 이는 논란이 됐던 대운하 건설 추진과 이른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사'의 요건 중 하나였던 교회를 상징한다. 이렇듯 패러디는 숨어 있는 디테일을 알수록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영화 <포화 속으로> 포스터의 원본(왼쪽)과 이명박 대통령·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물.

영화 <포화 속으로> 포스터의 원본(왼쪽)과 이명박 대통령·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물.ⓒ 인터넷 커뮤니티


재작년, 연평도 포격 사건 때 현장을 방문해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했던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패러디도 쏟아져 나왔었다. 이어 '병역 미필'인 그가 "지금이라도 전쟁나면 입대해 싸울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비꼬기도 씁쓸한 재미가 있다. 영화 <포화 속으로>의 포스터에는 병역 미필자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도 함께 등장했다. 

패러디를 당하는 정치인들의 역발상

"포기를 모르는 남자"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을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에 그려 넣은 패러디물. 강용석 의원은 자신을 빗댄 신문만평과 함께 이 만화를 블로그에 소개했다.

▲ "포기를 모르는 남자"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을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에 그려 넣은 패러디물. 강용석 의원은 자신을 빗댄 신문만평과 함께 이 만화를 블로그에 소개했다.ⓒ 강용석 의원 블로그


당하는 정치인으로서는 희화화가 굴욕적일 수도 있을 텐데, 이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정치인은 칭찬이든 욕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좋아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포기를 모르는 남자, 강용석 국회의원 이야기다.

지난해 11월,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을 풍자한 개그맨 최효종을 집단 모욕죄로 고소한 이후, 한 누리꾼은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이용해 그를 비꼬았다. 아나운서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고소당하고, 한나라당에서 제명되고도 무소속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의 행보를 "그래,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는 정대만의 명대사로 패러디한 것.

강용석 의원은 이를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에 소개하며 "슬램덩크 정대만의 맥을 잇는 불꽃남자 강용석의 무리수, 강용석의 활약상을 그린 다양한 신문만평을 한데 모았다"고 쿨한 모습을 보였다. 

"내 이름은 강재섭" 강재섭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4.27 재보궐선거에서 출마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디지털정당위원회가 만든 패러디물. 영화 <내 이름은 칸>을 이용했다.

▲ "내 이름은 강재섭"강재섭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4.27 재보궐선거에서 출마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디지털정당위원회가 만든 패러디물. 영화 <내 이름은 칸>을 이용했다.ⓒ 한나라당 대구시당디지털정당위원회


한나라당 대구시당디지털정당위원회는 지난 4.27 재보궐선거 때 직접 패러디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분당 을 지역의 후보로 출마했던 그를 <내 이름은 칸>이라는 영화 포스터에 합성해 <내 이름은 강재섭>을 만들어낸 것. 모양새는 그럴 듯하지만, 역시 풍자라는 묘미가 빠진 패러디는 통쾌함이 떨어진다.

뭐니뭐니 해도, 패러디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이 진리. 불편한 진실은 패러디 문화가 정치인들의 실정과 과오를 먹고 쑥쑥 자라왔다는 점이다.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자연스럽게 개그로 승화시킬 수 있는 패러디 감이 넘쳐나는 정치판의 현실을 반겨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낄낄거리며 조롱한 뒤 남는 뒷맛은 늘 씁쓸하다. 

=[주말기획-2012 정치와
대중문화] 관련기사=

①정치인의 예능프로 공략법?...호감-비호감 '한끗'은 바로 '진심'
②씹고 뜯고 맛보는 정치 패러디....꽃피는 하위 문화 르네상스
③새로운 시각 주는 풍자 개그? '어렵지 않아요~'
④'시궁창'같은 정치 현실...영화계는 줌인으로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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