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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핸드볼이 동메달을 목에 걸며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3일 베이징 국립 실내 체육관에서 벌어진 여자 핸드볼 동메달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3-28로 제압하며 동메달을 따냈다. 이틀 전 준결승 패배의 충격을 이겨낸 값진 승리였다.

준결승 패배 충격 이겨내고 값진 동메달 획득

동메달 결정전 상대인 헝가리는 지난 17일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한 차례 맞붙은 바 있다. 당시 한국은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며 33-22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그 때와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패한 후, 한국 선수들이 전력을 추스르고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둔 경기에서 허탈한 일을 겪었으니 경기에 나설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

하지만 기우였다. 강인한 정신력과 팀워크로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했던 '철의 여인'들은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전과 다름없는 기량을 과시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한국은 몸이 무거운 듯 평소 나오지 않았던 실책을 남발하며 경기 초반 2-6으로 뒤졌다. 임영철 감독은 곧바로 작전 타임을 불러 선수들에게 불호령을 내렸고, 정신을 차린 선수들은 순식간에 연속 5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에 성공했다.   

동메달을 따내기 위한 헝가리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헝가리는 골키퍼의 계속된 선방과 '에이스' 아니타 고르비츠의 노련한 경기 운영을 앞세워 15-13으로 재역전하며 전반을 끝냈다. 

후반에도 접전은 계속됐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헝가리의 오른쪽 측면을 공략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고, 한국과 헝가리는 경기 종반까지 한 골씩 주고 받으며 '살얼음 승부'를 펼쳤다.

경기의 주도권이 넘어온 순간은 후반 25분 경. 한국은 헝가리 선수 2명이 퇴장을 당한 사이에 홍정호의 7m 던지기와 안정화, 박정희의 바운드 슛으로 30-27로 앞서가며 승리를 잡았다.

임영철 감독은 헝가리가 부른 작전 시간에서 선수들에게 강한 어조로 "절대 밀리면 안 돼!"라고 주문했고, 코트 위의 선수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하며 33-28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마치 금메달을 따낸 것처럼 코트로 뛰어 나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몇몇 선수들은 감격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MBC에서 중계를 하던 '우생순'의 주인공 임오경 해설위원도 벅차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한국을 '실력'으로 제압한 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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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1시간 만에 베이징에 도착할 수 있지만,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베이징에 입성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여자 핸드볼은 작년 8월에 열린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중동 심판의 편파 판정에 휘말리며 한 장 밖에 없는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국제핸드볼연맹이 이 대회를 '무효'로 처리함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지난 1월 일본에서 재경기를 치렀고, 한국은 13점 차로 일본을 대파하며 베이징행 티켓을 따내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엔 지역 예선 편파 판정을 주도했던 아시아핸드볼연맹에서 재경기의 무효를 주장했다. 결국 대표팀은 지난 3월 다시 프랑스로 날아가 세계 최종예선에 참가해 가까스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예선만 무려 세 차례. 핸드볼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은 빡빡한 리그 일정 속에서도 카자흐스탄, 일본, 프랑스를 오가며 경기를 치러야 했다.

이런 시련은 한국 여자 핸드볼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주전 7명 가운데 '격동의 70년대'에 태어난 선수가 5명(오영란, 오성옥, 홍정호, 박정희, 허순영)이나 됐던 대표팀은 체격이 좋은 유럽팀과의 체력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팀 러시아와의 극적인 무승부를 시작으로, 독일, 스웨덴, 헝가리 등 유럽의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8강에서는 '개최국' 중국과 맞붙어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이겨내기도 했다.

예선의 유일한 패배였던 브라질전과 준결승 노르웨이전은 석연치 않은 '버저 비터' 판정이 섞인 '억울한 패배'였다. 결국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을 '실력'으로 제압한 팀은 아무도 없었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14명의 여인들

오성옥, 오영란, 김남선, 송해림, 허순영, 문필희, 박정희, 배민희, 안정화, 이민희, 김온아, 최임정, 홍정호, 김차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 여자 핸드볼의 베이징 올림픽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비록 목에 건 것은 동메달이지만, 올림픽 기간 내내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보여준 투혼의 색깔은 여느 금메달보다 환하게 빛났다.

어쩌면 핸드볼은 다시 텅 빈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울리는 '비인기 종목'으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들을 잊지 말자. 대한민국의 2008년 여름을 그토록 뜨겁게 만들었던 아름답고 자랑스런 14명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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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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