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베이징올림픽 폐막일인 24일 오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을 올림픽 남자 마라톤 선수들이 지나가고 있다.

2008베이징올림픽 폐막일인 24일 오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앞을 올림픽 남자 마라톤 선수들이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한국 상대팀 응원한 중국인들

8월 24일은 17일간의 2008베이징올림픽이 마무리되는 폐막일이자 또 한중수교 16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테러위협과 인권, 환경문제의 우려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고 제고된 국가브랜드로 앞으로도 고속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폐막일만을 남겨둔 23일 기준 금메달 수에서도 49개로 34개의 미국을 여유 있게 제치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종합1위를 달성하여, 과도한 올림픽통제로 인한 중국인들의 불만을 잠재우며 중화민족주의를 한껏 고양할 수 있는 체제홍보의 강력한 매개체도 확보해 놓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베이징올림픽 계기로 고양된 중화민족주의의 가장 큰 희생양이 어쩌면 한국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동안 중국인들은 철저하게 한국의 상대팀에게 "지아요우(加油)!" 응원을 보냈다.

한국이 맞서는 상대가 미국, 심지어는 역사문제와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문제로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일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중국인의 반한(反韓), 혐한(嫌韓)감정이 도를 넘어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다가 종합 1위를 거두며 스포츠강국으로도 우뚝 선 중국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또 향후 어떻게 대중국관계를 설정하면서 정치, 경제, 안보 면에서 실익을 추구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봐야 할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급성장한 중국에 무시와 멸시 보내는 한국인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16년이 지나면서 한중관계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정치적으로 양국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추구해 나가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2007년 한중 교역량이 약 1500억 달러로 한미 교역과 한일 교역을 합친 양에 달했다. 외교적으로도 2003년 8월 27일부터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중국이 주도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반도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급성장을 지속하는 중국의 밝은 면은 애써 외면하면서 문화적으로 '너흰 아직 멀었어!' 정도의 무시와 멸시를 보내왔던 것이 사실이다. 'Made in China!'는 짝퉁과 불량품의 대명사로 각종 오락프로그램에서 희화되며 중국인은 더럽고 지저분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불이고 중국은 2천 불이다. 자칫 성숙되지 못한 우리의 태도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은 거만하고 중국인을 무시한다'는 피해의식을 불러올 수 있음에도 우리가 세련되게 행동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중 양국의 국민정서를 해치는 각종 악재들

2001년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터져 나온 고구려사에 대한 역사해석문제가 우리나라의 대중국 국민감정을 크게 악화시켰으며 2005년 강릉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는 중국인들이 문화적으로 한국을 대단히 의식하고 적대시하는 면모를 보여 왔다. 올해 중국이 단오, 청명, 추석을 법정공휴일로 삼은 것도 어쩌면 우리나라를 의식해 유교문화의 종주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해석된다.

여기에 2007년 창춘(長春)동계아시안게임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세리머니는 중국네티즌들을 크게 자극했으며 올해 들어선 한국의 새 정부가 주중대사를 공석으로 비워놓은 상태에서 철저하게 미국 일변도의 외교를 펼친 것이나 티베트사건 때 서구 편향적 보도로 일관했던 것도 중국인들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순서로 방문하는 우리나라의 외교관례도 참 잘도 지켜지고 있다.

올 4월 서울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시에 보여준 중국유학생들의 극단적인 중화민족주의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했으며 이어진 쓰촨(四川) 대지진 때 우리 네티즌들이 '티베트를 탄압하더니 천벌을 받았다'라는 쓴 글이 중국 네티즌들에게 알려지면서 중국 내 한국인에 대한 악감정이 극에 달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바로 SBS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유출사건이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중국의 젊은이들이 주력군인 중국 네티즌들이 '과연 미국의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이었다면 한국 언론이 그렇게 유출했겠는가? 한국이 중국을 무시하기 때문에 유출한 것이고 그래서 어떤 경기에서도 한국을 응원하지 않겠다'라는 지적을 우리는 겸허하게 되뇌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과거의 속국이고 지금도 작고 별 볼일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다가 베이징 올림픽 초반에 중국에 이어 2위를 달리면서 너무 잘하니까 경계심과 시기심에 한국을 혐오한다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중국에게 이런저런 반한감정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강하다.

우호적 관계 속에서 국익 극대화의 지혜 모아야

중국은 이미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 파트너'가 되어 있다. 쥐가 소의 머리에 올라탔다가 결승점에서 뛰어내려 1등을 했듯이 중국이라는 거인을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은 분명하다.

중국에 대해 저자세를 보이는 것도 옳지 않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중국인에 대한 무시와 멸시 분위기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우호적인 분위기에서만이 효율적이고 다양한 방면에서 국익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50만 명 이상의 한국교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이나 기업 활동이 아닌 생계를 위해 중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은 한국인이 거의 유일하다. 하루 1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중국을 찾고 있고 일주일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836편이나 돼 국내노선 총합보다도 많다.

많은 왕래와 접촉이 있다 보니 불미스러운 사건과 그로 인한 오해와 다양한 문제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중국인은 아직 우리보다 못살고 또 낮은 문화수준을 보이지만 우리보다 잘 사는 중국인도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 중국인은 못 살고 중국이라는 국가브랜드는 비록 낮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고 국가가 갖는 총체적인 역량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거대하고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중국을 못 살고 저급한 문화의 나라로 무시하고, 중국은 우리를 과거의 속국이자 작고 별 볼 일 없는 나라라고 무시하는,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는 관계 속에서는 상호의 이익을 추구하기 어렵다. 한류의 훈풍 속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마인드를 가진 중국인들도 대단히 많고 또 국내에도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담론들도 많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과거와 달리 모든 정보가 서로 소통되는 상황에서 한중 양국의 모든 국민이 상호 존중의 태도를 보다 충실히 지켜갈 때 한중 양국관계의 발전과 상호 호혜의 '윈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베이징올림픽 한중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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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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