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의 거장이 33년간 쓴 판타지

[리뷰]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등록 2010.02.23 17:03수정 2010.02.2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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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타워> 1부 <최후의 총잡이> ⓒ 황금가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사막을 가로질러 달아나자 총잡이가 뒤를 쫓았다.

<다크 타워> 1부 <최후의 총잡이>는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스티븐 킹이 이 한 문장을 쓴 것은 1970년 스물두 살 때였고, 그때는 첫 장편인 <캐리>를 발표하기도 전이었다.


<다크 타워>가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2003년이다. 그 동안 스티븐 킹은 수십 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고, 그 대부분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유독 <다크 타워>의 완성은 뒤로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무엇이 <다크 타워>의 완성을 그토록 방해했을까.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애정 또는 집착이었을 것이다.

서문에서 스티븐 킹은 '역사상 가장 긴 대중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크 타워>가 가장 긴 대중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쓴 대중소설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니 스티븐 킹은 적어도 한 가지 기록은 보유하게 된 셈이다.

스티븐 킹이 원했던 것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서부영화를 한데 뒤섞은 듯한 작품이었다. 스물두 살이던 그해에 스티븐 킹은 <석양의 무법자>를 보면서 대번에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은 톨킨풍의 원정과 마법을 담은 이야기면서 동시에 배경은 장대한 서부여야만 한다고.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고생하고 작가로서의 미래도 불확실할 당시에, 스티븐 킹은 웅장한 작품을 쓰겠다는 열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다크 타워>를 시작하는 한 문장은 마치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사막 그리고 총잡이. 실제로 <다크 타워>의 배경에는 황무지나 사막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 속의 시대와 장소가 어딘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읽어가면서 짐작해보건데 핵전쟁이 터져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먼 미래의 지구인 것만 같다.


검은 탑을 찾아가는 최후의 총잡이

끔찍했던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과거의 기록은 소실되었고, 몇 안 남은 이야기는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이런 세상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변질되어버린 세상'이라고 표현한다. 핵전쟁이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 것이다.

과학기술은 송두리째 없어졌고 핵무기의 영향 때문인지 기형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다. 과거에 사용하던 정교한 기계장치들이 보관된 곳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른다. 아니 아예 그 기계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이런 곳에서 최후의 총잡이인 롤랜드가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를 뒤쫓는다. 시간과 공간의 관념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롤랜드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검은 옷의 남자를 쫓았는지 모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마법사이기 때문에 그를 만나면 자신의 운명과 세상의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롤랜드가 궁극적으로 향하려는 곳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암흑의 탑'이다. 그 탑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에 가면 무엇을 발견할지도 모르면서 롤랜드는 운명적으로 그 탑에 이끌리는 것이다.

물론 변질되어버린 세상을 뚫고 그곳까지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롤랜드는 사막에서 탈진하고 한 마을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바닷가에서는 기형적으로 커져버린 가재에게 물려서 부상을 당한다. 도처에 위험이 널려있기에 탑으로 가는 길은 혼자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롤랜드는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1부가 도입부였다고 하면 2부 <세 개의 문>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롤랜드는 현대의 뉴욕과 변질된 세상을 오가면서 동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사격술을 가르친다. 암흑의 탑으로 향하는 장대한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환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기나긴 여정

흔히 스티븐 킹을 가리켜서 '공포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다크 타워>에는 읽으면서 공포를 느낄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대신에 작가의 의도처럼 서부영화와 톨킨의 작품을 더많이 떠올리게 된다. 암흑의 탑으로 향하는 롤랜드 일행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서 불의 산으로 향하는 반지원정대의 미래버전이다.

총 7부로 구성된 <다크 타워>의 1부가 미국에서 출간된 것은 1982년, 2부가 출간된 것은 1987년이다. 발표가 늦어지면서 독자들의 요구도 그만큼 심해졌다. 암으로 14개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할머니,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사형수 등이 스티븐 킹에게 편지를 보내서 제발 결말만이라도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말과 함께.

스티븐 킹이 다시 <다크 타워>를 위한 펜을 든 것은 그가 대형교통사고를 당한 다음이다. 몇 차례의 수술 끝에 목숨을 구한 이후에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이 더이상 열아홉 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육신이 떠맡아야할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 또한 열외가 될 수 없음을.

수많은 독자들에게 암흑의 탑에 대한 상상을 심어주었으면, 그 탑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 말로 작가의 의무이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용감하게 탑으로 향하는 롤랜드의 모습은, 펜 끝으로 거대한 탑을 만들고 있는 스티븐 킹 자신의 모습이다. <다크 타워>는 스티븐 킹이 33년간 쌓아올린 이야기의 탑이다.

덧붙이는 글 | <다크 타워> 스티븐 킹 지음 / 박산호,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다크 타워> 스티븐 킹 지음 / 박산호,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다크 타워 1 - 최후의 총잡이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2009


#다크 타워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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