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가 망쳐 버린 한 남자의 인생

[리뷰] 존 그리샴 <이노센트 맨>

등록 2010.02.15 09:46수정 2010.02.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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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맨> 겉표지 ⓒ 문학수첩

▲ <이노센트 맨> 겉표지 ⓒ 문학수첩

무리하고 강압적인 수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것이 잔인한 살인사건에 관한 수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수사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건을 일찍 종료시키려 한다. 그러다보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애매한 정황들의 조합으로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사건 전에 마지막으로 피해자를 만났다거나,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산다거나 하는 정황이다. 아니면 과거에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는 것도 그런 정황이 될 수 있다.

 

아무튼 한 번 의심을 받기 시작하면 그가 결백하다는 완벽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쉽게 수사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대한 알리바이도 갖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게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려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평범한 생활도 조금씩 무너져 간다. 직장에서 해고될 가능성도 있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떠날지 모른다. 나중에 완전하게 혐의를 벗더라도 그때의 상처는 여전히 남는다. 그럼 그 사람의 남은 인생도 변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안좋은 방향으로.

 

메이저리그 스타가 되길 원했던 소년

 

법정 스릴러로 유명한 작가 존 그리샴은 <이노센트 맨>에서 그런 사람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그동안 써왔던 수많은 소설과는 달리, <이노센트 맨>은 논픽션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거기에 휘말린 결백한 남성의 실제 인생을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클라호마의 작은 마을에서 1953년에 태어난 론 윌리엄슨이다. 론은 부모님, 두 명의 누나와 함께 성장하며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선수를 꿈꾼다. 오클라호마 출신의 야구영웅 미키 맨틀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론은 야구에 대단한 관심과 재능을 드러냈다. 론의 아버지는 넉넉하지 못한 경제사정에서도 아들에게 고급 글러브와 야구방망이를 사준다. 론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지역 야구팀의 간판 타자로 활약하며 대학과 프로야구 관계자들의 관심을 끈다.

 

론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프로에 입단하는 것을 택한다. 그것이 그동안 자신을 위해 희생해왔던 가족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론은 거액의 보너스를 받고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이때만해도 그의 앞날이 훤히 열릴 것이라고 누구나 믿었을 것이다. 특히 가족들은 더더욱.

 

하지만 론이 야구선수로서 행복을 느낀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프로의 벽은 예상외로 높았고 론은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성적부진이 이어지다가 결국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조차도 방출되고 만다.

 

절망에 빠져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하는 일 없이 술에 의존해서 하루하루 버틴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는 사건이 생긴다. 작은 마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마을의 수사관들은 론을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고 그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론은 언제쯤 살인의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죄가 있건 없건, 일반 사람들은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경우는 더 할 것이다. 수사관들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지금처럼 과학수사기법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더욱 그렇다.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달래면서 자백을 유도한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거짓말탐지기도 동원한다. 검사는 자백하면 형을 감해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환기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 몇 시간씩 가두어 둔 채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피의자의 인권 따위는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정말로 죄가 없는 사람이라면 환장할 지경일 것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묻고 벌을 내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나중에 누명을 벗고 금전적인 보상을 받더라도, 지나버린 세월과 만신창이가 된 정신상태와 사라져버린 미래의 가능성은 절대로 돌려받지 못한다. 사건수사도 사법제도도 인간의 작품이기에 완벽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칠 정도로 헛점이 있다면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작품 속의 인물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용의자는 유죄가 증명될 때까지 결백한 겁니까, 아니면 결백이 증명될 때까지 유죄인 겁니까?"

덧붙이는 글 | <이노센트 맨> 존 그리샴 지음 / 최필원 옮김. 문학수첩 펴냄.

2010.02.15 09:4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노센트 맨> 존 그리샴 지음 / 최필원 옮김. 문학수첩 펴냄.

이노센트 맨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문학수첩, 2010


#이노센트 맨 #존 그리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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