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나가신다!

[리뷰] 요코미조 세이시 <밤 산책>

등록 2010.01.28 16:36수정 2010.01.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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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 겉표지 ⓒ 시공사

▲ <밤 산책> 겉표지 ⓒ 시공사

알리바이 위조, 사망시간 조작, 인물 바꿔치기, 일종의 밀실. 이런 용어들을 들으면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트릭이 떠오른다.

 

고전추리소설의 대가들이 한 번쯤은 써먹었을 트릭, 범인이 탐정을 속이고 작가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트릭들이다.

 

위의 트릭들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 하나가 있다면 어떨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꽤나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일본작가 요코미조 세이시가 1940년대 말에 발표한 <밤 산책>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에도가와 란포에 버금가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이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일련의 시리즈는 통해서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밤 산책>에도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한다. 30대 중반인 그는 더벅머리에 키가 작고 평범한 생김새의 남자다. 옷차림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말재주가 유창한 것도 아니다. <밤 산책>의 주인공은 긴다이치 코스케의 외모를 보고 이런 평가를 내린다. 평범함을 넘어서 궁상맞아 보이는 마을사무소 서기 같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탐정들이 그렇듯이 긴다이치 코스케도 눈빛만은 살아있다. 맑으면서도 예지의 빛이 서려있는 눈에는 은은한 온화함까지 담고 있다. 평범한 외모에 따뜻함을 풍기는 눈빛. 이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긴장을 풀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것이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명탐정이 된 데에는 이런 면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한 여인에게 내려진 이상한 예언

 

<밤 산책>의 배경은 종전 후의 일본 도쿄. 명문가인 후루가미 가문의 가신 혈통인 센고쿠 나오키와 그의 친구 야시로 도라타가 만나서 기이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야시로 도라타는 슬프도록 안 팔리는 삼류탐정소설가이고, 센고쿠 나오키는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돈은 많은 사람이다. 나이는 둘다 서른다섯이고 나오키는 대학시절부터 도라타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기이한 사건이란 후루가미 가문을 둘러싼 이야기다. 전쟁 후에 많은 부자들이 재산세니 뭐니 해서 도산하던 중에도 후루가미 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향에 많은 산림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오히려 전쟁 전보다도 경제적으로 좋아진 모양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더라도 이런 명문집안에는 어두운 구석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후루가미 가문에는 간혹 꼽추가 태어난다. 대대로 구루병이 유전되기 때문인데 기이한 사건도 이 꼽추와 연관있다.

 

가문의 뒤를 이을 아들 모리에는 구루병 때문에 어린시절에 꼽추가 되었다. 그래서 그보다 아홉살이 적은 딸 야치요가 태어났을 때 가문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용하다는 점쟁이를 불러서 야치요의 장래를 점쳐달라고 하자 그 점쟁이는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야치요는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지만, 성인이 되면 꼽추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야치요도 자라나면서 이 예언에 대해 알게 되고, 그때부터 꼽추는 그녀에게 무서운 꿈이 된다. 아름다운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후루가미 집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나오키는 야치요의 불안감을 간파하고 탐정소설 작가인 도라타를 후루가미 저택으로 초대한다. 도라타는 '녹색궁전'이라고 불릴 만큼 거대한 저택에 발을 디디고, 바로 그날밤 연쇄살인의 시작을 알리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터지는데….

 

복잡한 살인사건을 어떻게 풀어갈까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작품의 중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최초의 살인이 발생하고 2개월이 지난 이후다. 수사는 교착상태에 빠졌고 사건의 정황도 기괴하기만 하다. 도라타는 작중 화자가 되서 사건을 소설형식으로 적어나가지만 사건의 전모에는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한다. 제아무리 탐정소설 작가지만 현실속의 살인에는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다이치 코스케가 나타난다. 후줄근한 모직옷에 더러워진 중절모 차림이다. 이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경시청의 간부들은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정중한 예우를 잃지 않는다. 그의 명성도 그렇거니와 안개 속 같은 수사국면에 빛을 던져줄 희망을 그에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도라타를 조수 삼아서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탐정이 직접 사람들을 탐문하거나 추리하는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는 뛰어난 직관으로 복잡하게 꼬여있는 사건을 조금씩 풀어나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인이 심어놓은 여러 속임수들을 하나씩 밝혀내야 한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하다. 각종 트릭을 꿰뚫는 김전일의 모습은 추리의 매력에 빠져있던 긴다이치 코스케의 어린 시절과 같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밤 산책>은 추리소설의 여러가지 트릭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작가는 대담하게도 서술트릭까지 동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밤 산책>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정명원 옮김. 시공사 펴냄.

2010.01.28 16:36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밤 산책>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정명원 옮김. 시공사 펴냄.

밤 산책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시공사, 2009


#밤 산책 #긴다이치 코스케 #김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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