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화원학교에 들어가는 17세 여학생

[신간] 로렌 케이트 <추락천사>

등록 2010.01.25 18:42수정 2010.01.2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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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천사> 겉표지 ⓒ 랜덤하우스

▲ <추락천사> 겉표지 ⓒ 랜덤하우스

'추락천사'란 원래 천사였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서 천국에서 추방된 천사를 가리킨다. 추방되는 이유는 주로 교만이나 질투같은 것들이다. 구약성서의 외경인 <에녹서>에 등장하는 아자젤이 대표적인 추락천사다.

 

이렇게 지상으로 쫓겨난 천사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인다면,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어쩌면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자신이 천사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스스로 각성한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로렌 케이트의 장편 <추락천사>에도 이런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품의 무대는 소드 앤 크로스 학교.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교가 아니라 일종의 감화원이다. 뭔가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격리수용하면서 그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감화원에서 생활하는 80명의 학생들

 

이 학교로 17세의 여학생 루스가 전학온다. 그녀는 얼마전에 있었던 한 친구의 죽음과 관련 의심을 받고 그 때문에 감화원으로 오게 됐다. 친구의 죽음 이전부터 루스에게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루스는 가끔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어두운 형체를 보아왔다. 문제는 그 형체가 루스에게만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루스의 부모는 루스를 데리고 안과에 가서 안경을 맞추어주었고 그 다음에는 이비인후과에 데리고 갔다. 루스는 그 형체가 쉭쉭하는 목이 쉰 듯한 소리를 낸다고 말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료를 받던 루스는 결국 정신질환 약을 처방받기에 이른다. 그래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드 앤 크로스 학교는 루스에게 낯설기만 하다. 처음 정문을 통과할때 휴대폰을 포함해서 '금지 물품'들은 모두 학교에 맡겨야 한다. 그 목록에는 휴대용 칼, 성냥이나 라이터도 포함된다. 그리고 전화는 일주일에 한 차례 로비에서 걸 수 있는데 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된다. 1인 1실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평소에는 외출이 불가능하다. 말이 감화원학교지 일종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학교의 풍경도 스산하기만 하다. 녹슬고 뒤틀린 골대가 놓여있는 운동장은 지저분하기만 하고,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기숙사건물은 사람이 살만한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강의실이 있는 건물도 교도소와 중세시대 고문실을 절반씩 섞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운동장 왼쪽으로는 묘지가 있어서 분위기는 더욱 황량해진다.

 

복장규정도 그렇다. 교복으로는 무조건 검은 옷만을 입어야 한다. 80명의 학생들은 모두 검정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스웨터를 두르고 있다. 좀 튀어보려는 학생은 검은색 손수건을 머리에 질끈 묶기도 한다. 학생들 중에서 3분의 1가량은 손목에 위치추적장치를 차고 있다. 사회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들어온 학생들이다.

 

천사들이 만들어내는 판타지와 로맨스

 

헛것을 본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소드 앤 크로스에서 루스는 거의 유일하게 정상에 가까운 존재다. 물론 감옥같은 학교생활이 그녀를 어떻게 변하게 할지는 알 수 없다. 말하자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확실히 구별되는 세상이 형성된 셈이다.

 

담장 바깥은 휴대폰과 승용차와 컴퓨터 게임이 있는 곳이고, 안쪽은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학생들이 수많은 감시카메라의 시선을 받는 곳이다. 장기간의 학교생활은커녕 단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만큼 답답해 보이지만, 이런 장소가 판타지 무대로는 적절할 것이다. 사연을 가진 오래된 건물과 햇살을 받아서 밝게 빛나는 숲속의 호수,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공동묘지. 이 정도면 추락한 천사들이 적응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닐까?

 

<추락천사>는 시리즈 4부작 중에서 첫번째 편이다. 로렌 케이트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10대 청소년들을 감화원학교라는 닫힌 공간안에 모아두고 있다.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우정과 사랑 그리고 갈등이 형성되는 법이다. 소드 앤 크로스 학교도 마찬가지다. 루스는 도착하자마자 특이한 학생들을 접하게 된다.

 

정신병자 취급받는 아리앤느, 예쁜 외모를 가졌지만 가까이 하기 힘든 가브리엘,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읽는 토드,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펜, 그리고 루스에게 다가오는 두 명의 남학생 다니엘과 캠. 천사의 각성은 둘째치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어울려 생활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루스와 그를 둘러싼 학생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추락천사> 로렌 케이트 지음 /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2010.01.25 18:42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추락천사> 로렌 케이트 지음 /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추락천사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1-1

로렌 케이트 지음, 홍성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추락천사 #로렌 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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