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개막한다. 1회 대회 퍼펙트 4강, 2회 대회 준우승 후 3·4회 대회에서 연속으로 1라운드 탈락했던 한국 대표팀은 5회 대회에서 1라운드 통과는 물론이고 내심 4강 이상의 성적을 노리고 있다. 일본, 호주,중국, 체코와 함께 B조에 속한 한국은 최소 조 2위에 올라야 8강에 진출할 수 있다. 1라운드 통과를 위해서는 대회 첫 상대인 호주와의 경기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야구팬들이 8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호주전 이상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경기는 오는 10일로 예정된 한일전이다. 비록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한국이 일본에게 뒤지는 게 사실이다. 우승을 노리는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오타니 쇼헤이(LA에인절스)와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사사키 로키(치바 롯데 마린스) 등 일본야구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다. 하지만 한일전 진검승부 만큼 야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경기도 드물다.

사실 야구에서의 한일전은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활약하던 1970년대부터 열렸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는 1900년대 초반 한국과 일본의 야구선수들이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시라노;연애조작단>, <쎄시봉>, <아이 캔 스피크> 등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조선 최초의 야구팀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송강호, 김혜수, 고 김주혁, 황정민 주연의 2002년 개봉작 < YMCA 야구단 >이다.
 
 <YMCA야구단>은 서울 56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2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9위를 기록했다.

은 서울 56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2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9위를 기록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일제시대, 독립운동에만 주목하지 않은 영화들

한국의 근현대사에는 매우 치욕적이면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제강점기'라는 가슴 아픈 36년의 시간이 있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조민호 감독의 <항거, 유관순 이야기>부터 최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 이해영 감독의 <유령>까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항일 영화들도 많다. 하지만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모든 영화의 주제가 '항일'이나 '독립운동'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편에 걸쳐 제작됐던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3부작은 일제시대를 주름잡던 '조선 최고의 주먹'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룬 액션 영화다. 비록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흥행성적이 점점 떨어졌지만 액션장면들은 당시 한국영화에선 보기 힘들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무엇보다 '김두한' 박상민과 '하야시' 신현준, '쌍칼' 김승우, '지배인(?)' 황정민, 오연수 같은 인기 배우들의 풋풋하던 시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작과정에서 주인공이 비에서 양동근으로 교체됐던 <바람의 파이터>는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이 조선과 일본 각지를 돌며 '도장깨기'를 하는 내용의 액션영화다. 최영의가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난 한국출신인 데다가 주로 일본의 무술가들과 싸우는 장면이 많아 무술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는 영화로 오해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바람의 파이터>는 독립운동보다는 최배달의 성장과 화려한 액션장면에 무게를 둔 영화였다.

2015년 연말에 개봉한 <대호>는 <명량>으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세운 최민식의 차기작이자 <신세계>로 한국형 누아르의 새 역사를 쓴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명포수의 이야기를 그린 <대호>는 <명량>의 배우와 <신세계>의 감독이 만났다는 기대치와 달리 전국 176만 관객으로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6년과 2017년에는 이준익 감독이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2010년대 개봉한 영화로는 파격적인 흑백영화였던 강하늘과 박정민 주연의 <동주>와 이제훈, 최희서 주연의 <박열>이었다. 두 작품은 각각 5억 원과 26억 원이라는 많지 않은 제작비로 각각 116만, 235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송몽규와 박열이라는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화려한 캐스팅
 
 <YMCA야구단>은 구한말 실제 존재했던 횡성 YMCA야구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은 구한말 실제 존재했던 횡성 YMCA야구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 CJ엔터테인먼트

 
송강호와 김혜수가 주연을 맡았고 황정민, 고 김주혁, 조승우(특별출연)가 출연했던 < YMCA 야구단 >은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사실 김현석 감독은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야구광이다. 김현석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시절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가 주인공인 <사랑하기 좋은 날>과 야구심판이 주인공인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집필했고 2007년에는 선동열 스카우트 전쟁을 다룬 야구영화 <스카우트>를 만들기도 했다.

< YMCA 야구단 >은 '을사늑약'으로 불리는 제2차 한일협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인 1904년에 결성된 조선 최초의 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양반댁 도령이지만 과거제 폐지로 허송세월을 보내던 이호창(송강호 분)은 신여성 민정림(김혜수 분)의 미모에 반해 다양한 사연을 가진 멤버들이 있는 YMCA야구단에 들어가게 된다.

힘들게 배운 글로 정림에게 건넬 연애편지를 쓴 호창은 정림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정림의 아버지가 을사늑약에 분개해 자결하면서 호창은 본의 아니게 조문객이 됐다. 상갓집에서 대현(김주혁 분)과 처음 만나는 호창은 이 과정에서 정림에게 전할 연애편지를 분실하고 이 편지가 모든 조문객 앞에서 큰 소리로 읽혀진다. 하지만 편지내용이 정림 아버지의 유서라고 오해할 만큼 비장해 호창을 제외한 상갓집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 가장 멋지고 찡한 장면을 연출한 배우와 캐릭터는 바로 황정민이 연기했던 친일파의 아들 광태였다. 광태는 YMCA 야구단과 일본 성남 구락부 팀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던 독립운동가 대현에게 주먹을 날린다.

하지만 9회 마지막 타석에서는 2루 주자 대현에게 다가가 "내가 번트를 댈 테니 정림과 말을 타고 탈출하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타석으로 돌아가면서 대현에게 "고맙다, 우리 아버지 살려줘서"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일본군들은 경기가 끝난 후 대현과 정림을 잡아갈 예정이었다).

송강호와 황정민이 캐스팅한 젊은 배우
 
 영화계가 기대하던 유망주였던 조승우는 <YMCA야구단> 출연 이후 정말로 충무로를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성장했다.

영화계가 기대하던 유망주였던 조승우는 출연 이후 정말로 충무로를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성장했다. ⓒ CJ엔터테인먼트

 
데뷔 후 큰 슬럼프 없이 꾸준히 스타배우로 군림하던 김혜수는 유독 영화에서는 흥행작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2001년 <신라의 달밤>을 통해 흥행배우가 된 김혜수는 < YMCA야구단 >에서 야구단을 결성하는 민정림 역을 맡았다. 물론 야구경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의 특성상 민정림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지만 김혜수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민정림 역을 잘 소화했다.

지난 201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혁은 데뷔 초 고 김무생 배우의 아들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김주혁은 < YMCA 야구단 >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대중적으로 크게 유명한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김주혁은 안정된 연기로 자신이 왜 주연을 맡았는지 증명했고 이후 <싱글즈>와 <홍반장>을 통해 스타배우로 도약했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으로 데뷔한 '괴물신인' 조승우는 아직 신인 딱지가 떨어지기 전이었던 2002년 < YMCA 야구단 >에서 마부청년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조승우의 출연은 황정민과 송강호의 콤비플레이(?)를 통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황정민이 먼저 조승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송강호가 영화 <후아유> 시사회에서 조승우에게 출연을 설득했다. 이렇게 <춘향뎐>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을 연기했던 조승우는 < YMCA 야구단 >에서 (가짜) 암행어사 호창의 말을 끄는 마부를 연기했고 영화 막판 뮤지컬 배우의 목청으로 < YMCA야구단 >의 최고 명대사 중 하나인 "암행어사 출두요"를 시원하게 외쳤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YMCA 야구단 김현석 감독 송강호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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