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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2>의 결론은 언제나 이혼이다. 온갖 문제에 휩싸인 부부는 결국 이혼 재판정에서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심판받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4주간의 숙의 과정을 거쳐 그들이 실제 이혼을 하지 않던, 이혼에 이르던, 일단 그들은 '이혼'이라는 길림길에 놓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이 TV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결혼이 인륜지대사였던 만큼, 인생 최대의 과제인 결혼을 '쫑'내는 이혼은 마침표 그 자체였었다.

하지만 이제 시즌2에 이를 만큼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육아가 권장해야 할 미덕인 지에 대해 의문 부호가 슬며시 붙여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이혼이 우리 사회에서 당사자들에겐 가슴 아픈 일이지만 보기 드물거나 이상한 사례가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혼 후의 후일담을 다루는 드라마가 부쩍 늘고 있다.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이혼'을 내세운 SBS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억압적 시집살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 부부의 재혼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병원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응급남녀>는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늘 그래 왔듯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병원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이혼 부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벌써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드라마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앙큼한 돌싱녀>도 이혼을 한 부부가 한 직장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주된 내용이다.


이혼이 끝이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드라마들

이혼하면 끝이었던 지금까지의 드라마와는 달리 <세번 결혼하는 여자>, <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는 이혼이 끝이 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단 1년이 되었건(응급남녀),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원수가 되어 헤어졌건(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 주변 가족으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건(응급남녀, 세번 결혼한 여자) 그들이 함께한 시간이 결코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가 있으면 아이가 있어서, 아니 아이가 없어도 두 사람이 함께 살을 부대끼며 한 공간을 공유했던 시간이 결코 끝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세 드라마는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이혼은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생의 실패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으로 다루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혼이란 사건이 드라마로 들어오면서 결국 복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헤어졌지만 함께 낳은 아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꾸 얽히게 되고(세번 결혼하는 여자), 함께 한 시간 때문에 만들어진 인연들로 인해 또다시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되고, 그래서 상처받고, 때로는 그래서 더 상대방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세번 결혼하는 여자, 응급남녀), '아니다'고 했지만, 상대방이 자신에게 미쳤던 영향력을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실감하게 되면서(앙큼한 돌싱녀) 지난 시간을 복기한다.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개인의 성숙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시각

그러면서 지난 결혼 기간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가 깊지 못했음을, 혹은 자기중심적이었음을 반성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방식은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개인의 성숙과 관련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아직 철없던 시절에 이혼하고, 철이 없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실수로 이혼한 것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이혼이 아니라, 개인의 실수와 실책으로 이혼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런 경우는 지난날 실수를 반성하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리고 반성에 대한 실천의 차원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여지가 크다. 조금 경우는 다겠지만 <세번 결혼하는 여자>나, <응급남녀>, <앙큼한 돌싱녀>에 모두 이런 방식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실제 결혼과 이혼은 인간과 인간의 감정이 첨예하게 맞붙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이런 식의 해석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첨예화된 사회적 갈등 속에서 고사되어 가는 사람들을 '힐링'이나 '심리적'요인만으로 해석하고 치유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시즌을 거듭할 정도로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만들어질 수 있는 이혼이 가지는 수많은 사회 경제적 이유를 획일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리적 기제만으로서 이혼을 치유하고자 하는 측면에서도 최근의 드라마들이 더 나은 성취를 보인다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두 부부의 해후와 해프닝과 되살아나는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응급남녀>와 <앙큼한 돌싱녀>가 2006년에 만들어진 <연애 시대>가 가졌던 이혼 후의 부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회의적이다.

심리적 해석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여전히 어른들 세대의 사랑보다는 '정'이라는 전통적 인정주의가 스며들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때는 지긋지긋해했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익숙하고,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그의 사정을 잘 알고, 더 이해하고, 위급한 상황이 되면 더 쉽게 그에게 경도될 수 있는 인지상정이 이혼하고도 그들의 발목을 여전히 함께 묶어 두고 있다. 외로운 개인보다는 서로 어깨를 겯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부부가 우선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목을 묶어 두는 것은 그 두 사람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도 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나, <응급남녀>에서처럼 이혼하게 된 계기 중 가장 큰 것이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 있는 시어머니의 억압이 큰 요인을 차지한다. 즉 이 말은 이혼의 주체가 부부이지만 그 원인이 부부가 아닌 데에 따라 오히려 부부는 그 이혼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혼 후 후일담을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새로운 조류 등장

그래서 이혼했지만, 계기만 있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뿐만 아니다. 이혼하고 독자적인 개인이 됐음에도 이혼 전의 가족이었을 때의 가족 관계들이 이혼 후의 개인을 독립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도 이혼의 후일담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정 부모, 그리고 시부모는 갈등 요인이자, 동시에 그들을 여전히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게끔 헷갈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과 개인이 혼재되어 분리되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때는 이혼이 결혼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식이나, 심지어 한 개인의 해방까지도 여겨졌던 트랜드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반대의 조류가 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도 이혼 위기의 부부들은 결국 이혼 도장을 찍지 않았다. 그리고 이혼한 부부들조차 자신들의 이혼을 되돌아보며 과거의 인연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가족들은 한때 그들이 이혼에 이르게 할 만큼 딜레마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보호받고, 갈등을 해결하고, 그래서 다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을 이루고자 애쓴다.

한때는 성취와 해방의 상징이었던 개인의 독립이 사회적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취약하다. 결국, 믿을 건 다시 가족밖에 없다는 복고적 결론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뛰쳐나갔던 양이 스스로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듯 갈등을 겪던 부부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봉합하고, 이혼하고 개인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조차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가족을 다시 꾸린다.

그리고 그것이 이혼 후 후일담을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새로운 조류로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