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왼쪽)과 두산의 윤경신 선수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왼쪽)과 두산의 윤경신 선수 ⓒ 심재철

한국 핸드볼의 두 거인은 실제로 이렇게 키 차이가 크게 났다. 먼저 경기를 끝낸 임오경 감독이 다음 경기 몸 풀기를 위해 코트에 나타난 윤경신(두산)의 인사를 받은 것. 두 사람의 외모는 이렇게 달라 보여도 핸드볼 코트에서는 똑같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고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두 사람은 이번 대회에 또 하나의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둘 다 현재 소속팀에서 등번호가 77번이라는 사실. 윤경신 선수는 당연하지만 임오경 감독에게는 의외다.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내기팀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선수 부상이 겹치는 날에는 몸소 뛰기 위해 선수로서도 등록을 해 놓은 상태다. 그래서 그와 그의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등번호 77이라는 숫자를 자신들의 등판에도 새겨넣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자핸드볼의 새 바람을 불러오고자 지난해 7월 당찬 첫걸음을 내디뎠던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의 임오경 감독은 공식 대회에서 비로소 첫 승리(서울시청 32-23 정읍시청)를 거뒀다. 그녀는 경기 종료 직후 협회 관계자로부터 축하의 악수를 받는 순간, 고개를 저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3경기 연패의 벼랑 끝에 내몰렸던 마음고생을 드러냈다.

 

대회 첫날(2월 8일, 잠실학생실내체육관) 현역 시절 스승이기도 한 임영철 감독과의 맞대결(벽산건설 35-30 서울시청)에서 대부분의 경기 시간을 일어서서 작전 지시에 여념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이번 부천대회 첫 날 경기에서는 대조적으로 벤치에 앉아 차분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준비를 철저히 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경기 초반 가운데 수비가 잘 이루어져 큰 점수 차로 달아날 수 있었다. 특히, 라이트백으로 활약한 윤현경이 혼자서 11골이나 성공시키는 빼어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이한주가 분전한 정읍시청의 후반전 추격을 비교적 편안하게 따돌릴 수 있었다.

 

부부 문지기의 어색한 만남

 

 벽산건설 문지기 오영란(오른쪽)과 강일구(왼쪽) 부부가 그냥 지나치고 있다.

벽산건설 문지기 오영란(오른쪽)과 강일구(왼쪽) 부부가 그냥 지나치고 있다. ⓒ 심재철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수많은 스포츠 종목을 뒤져봐도 이만한 커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핸드볼 코트의 문지기 부부 오영란(벽산건설)-강일구(인천도시개발공사)가 그 주인공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면 실업 핸드볼팀 선수들끼리 눈이 맞아 부부의 연까지 맺을 수 있지 않나 하겠지만 핸드볼 문지기라는 특수성과 그 빼어난 실력으로 보면 세계 핸드볼계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뉴스임에 틀림없다. 나란히 국가대표 문지기가 되어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둘의 인연은 하늘의 뜻으로 보여진다.

 

이 날은 아내 오영란이 먼저 실력을 발휘했다. 여자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우생순'의 감동을 안겨주었던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벽산건설은 디펜딩 챔피언 삼척시청을 만났는데 맏언니 문지기 오영란의 방어율 50%에 이르는 탁월한 방어 감각(선방 15개, 실점 15개)에 힘입어 경기 초반부터 그리 어렵지 않게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전반전이 끝나면 항상 다음 경기에 뛸 선수들이 미리 몰려나와 몸 풀기를 겸한 코트 적응 훈련을 펼치는데 마침 다음 차례가 오영란의 남편 강일구가 뛰고 있는 인천도시개발공사와 경희대의 경기였다. 그 순간 오영란은 선수들과 어울려 라커룸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강일구는 잠시 코트를 빠져나와 관중석 사이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넘칠 정도로 막상막하의 대결이 펼쳐지는 경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부부 사이의 눈인사를 기대했지만 둘은 정말 모르는 사이처럼 그냥 지나쳐버렸다. 상대 골잡이와의 심리 싸움까지 예민하게 펼쳐야 하는 특수 역할을 맡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벽산건설의 경기가 끝나고 인천도시개발공사와 경희대의 경기가 이어지기 직전 가방을 멘 아내가 남편을 찾았다. 잠깐, 몇 마디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제야 둘은 미소를 띠며 따뜻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순간을 급하게 카메라에 담는 순간, "진작 그렇게 웃어주지 그랬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핸드볼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마주친 문지기 부부

밝은 표정으로 마주친 문지기 부부 ⓒ 심재철

 

핸드볼 코트의 '꽃보다 남자들'

 

2004년 겨울부터 핸드볼 코트에 다녀봤지만 요즘과 같은 열기를 찾기 힘들었다. 정말로 가장 큰 대회 '핸드볼큰잔치'는 줄곧 겨울에 열렸고 바깥 날씨만큼이나 관중석의 한기는 여전했다.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의 감동' 그리고 영화 <우생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불고 있는 핸드볼 코트의 열기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우선, 안방을 기준으로 보면 공중파와 케이블 TV 생중계가 많이 잡혀 있다. 그 중계의 현장을 체육관에 와서 직접 보면 대우가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중계방송용 카메라가 여러 각도에 설치되어 있어서 생생한 장면을 안방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나 감독의 방송 인터뷰도 거의 꼬박꼬박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직접 경기장에 찾아온 관중들에게 협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남다르다. 사인볼 공세는 기본이고 여기저기서 협찬받은 선물들을 입심 좋은 전문 진행자가 틈나는 대로 나눠주고 있으니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핸드볼경기장에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저 외형에 불과하다. 여자경기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 남자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박진감은 핸드볼만의 매력이라고 할 만하다. 여자경기를 보다가 이어진 남자경기의 빨라진 템포를 따라가려고 하면 고개가 아플 정도다. 선수들의 무릎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관중석의 어르신들께서는 잇따라 감탄사를 터뜨린다. "방방 날아다녀!"

 

 경희대 라이트백 이은호

경희대 라이트백 이은호 ⓒ 심재철

 

여기에 핸드볼 경기의 구경거리가 또 늘기 시작했다. 지난달 저 멀리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제21회 세계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 세대교체를 표방한 우리 남자대표팀이 나가서 뜻밖의 결과(12위)를 내고 돌아왔는데, 거기에서 소위 '꽃미남' 스타들이 하나 둘 우리 여성팬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 해 핸드볼큰잔치까지만 해도 팬들이 직접 만든 격문을 구경하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이 바로 경희대 라이트백 이은호다. 크로아티아에 가서는 형들의 그늘에 가려 그렇게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여기서는 멀티 플레이어 박수철과 함께 경희대 핸드볼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 중 하나다.

 

비록 인천도시개발공사의 노련한 수비벽에 막혀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와중에도 일곱 골이나 터뜨리는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45도 지점에서 출발하여 정면으로 솟구치는 탄력은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 소녀팬들의 환호성을 몰고 다닌다.

 

 두산 피벗 박중규

두산 피벗 박중규 ⓒ 심재철

 

또 한 명의 '꽃미남' 주인공은 두산의 피벗 플레이어 박중규다. 지난 해까지 포지션 특성상 거친 몸싸움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지만 이번 세계선수권을 계기로 자신보다 더 체구가 큰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도 기술적인 핸드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왔다.

 

실제로 그는 유럽의 거구들 사이에서 손목의 유연함을 뽐내는 스핀슛을 여러 차례 성공시키며 그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바 있다. 이렇게 노력하는 그의 굵은 땀방울을 가까이에서 보면 팬이 안 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맏형 윤경신과 한솥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남은 핸드볼 인생은 표정처럼 환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아름다운 땀방울을 뒤로 하고 체육관 문을 나서는 순간, 일군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그곳을 따라 조금 걸으니 체육관 2층 통로에서 이 날 경기가 없던 HC 경남코로사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을 하고 있었다. 만 하루 뒤 그곳에서 충남도청과의 세 번째 경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른바 '꽃 파는 청년들'은 환하게 웃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핸드볼전용경기장(체육관)이 마련되지 않아서 해마다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아직까지 '한데볼'이라는 용어를 떠오르게 했지만 관중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훈련에 열중하는 그들의 밝은 표정에서 다른 종목에서 느끼지 못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힘찬 발걸음은 19일까지 부천에 머물며, 21일부터는 대구로 내려갔다가 27일에 성남으로 올라와 준결승-최종 결승 경기를 벌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 2009 핸드볼큰잔치 부천경기 첫 날 결과 / 16일 부천실내체육관

★ 여자부 : 서울시청 32-23[전반 17-8] 정읍시청

◎ 서울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용세라 선방 6-실점 8(방어율 43%), 장현지 선방 4-실점 7(방어율 36%), 전초롱 실점 8
안예순 3골, 김경미 4골, 김이슬 3골, 박혜경 2골, 윤현경 11골, 김지은 1골, 김진순 5골, 김선해 1골, 강지혜 2골

◎ 정읍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김프림 선방 5-실점 21(방어율 19%), 문나영 선방 8-실점 11(방어율 42%)
고영복 1골, 이한주 11골, 김지희 3골, 조선영 2골, 권한희 2골, 정주리 3골, 윤재니 1골

★ 여자부 벽산건설 35-25[전반 16-10] 삼척시청

◎ 벽산건설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오영란 선방 15-실점 15(방어율 50%), 송미영 선방 3-실점 10(방어율 23%)
박정희 2골, 김경화 4골, 김남선 2골, 문필희 6골, 이상미 2골, 손은선 5골, 김온아 14골

◎ 삼척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박미라 선방 13-실점 25(방어율 34%), 신해림 선방 3-실점 10(방어율 23%)
박지현 1골, 유현지 5골, 정지해 10골, 심해인 5골, 최설화 1골, 장은주 3골

★ 남자부 A 인천도시개발공사 34-29[전반 17-13] 경희대학교

◎ 인천도개공 선수들 방어/득점 기록
문지기 강일구 선방 11-실점 16(방어율 41%), 조철민 선방 7-실점 13(방어율 35%)
이현행 2골, 조현철 4골, 김민구 5골, 이순성 1골, 박찬용 1골, 유동근 4골, 엄효원 11골, 김동명 2골, 김성진 4골

◎ 경희대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지효근 선방 5-실점 14(방어율 26%), 배진형 선방 7-실점 20(방어율 26%)
박편규 4골, 정대근 8골, 양태신 3골, 박운천 1골, 이은호 7골, 박수철 4골, 강전구 2골

★ 남자부 A 두산 31-17[전반 13-6] 원광대학교

◎ 두산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박찬영 선방 18-실점 14(방어율 56%), 이경규 선방 4-실점 3(방어율 57%)
정의경 2골, 도요다켄지 2골, 박중규 1골, 임덕준 1골, 진정훈 3골, 오윤석 3골, 홍진기 2골, 지승현 1골, 이병호 3골, 김나성 3골, 윤경신 10골

◎ 원광대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김창권 선방 8-실점 30(방어율 21%), 강철구 실점 1
나승도 5골, 신승일 4골, 김동식 2골, 정한 4골, 최준영 2골

2009.02.17 09:5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9 핸드볼큰잔치 부천경기 첫 날 결과 / 16일 부천실내체육관

★ 여자부 : 서울시청 32-23[전반 17-8] 정읍시청

◎ 서울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용세라 선방 6-실점 8(방어율 43%), 장현지 선방 4-실점 7(방어율 36%), 전초롱 실점 8
안예순 3골, 김경미 4골, 김이슬 3골, 박혜경 2골, 윤현경 11골, 김지은 1골, 김진순 5골, 김선해 1골, 강지혜 2골

◎ 정읍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김프림 선방 5-실점 21(방어율 19%), 문나영 선방 8-실점 11(방어율 42%)
고영복 1골, 이한주 11골, 김지희 3골, 조선영 2골, 권한희 2골, 정주리 3골, 윤재니 1골

★ 여자부 벽산건설 35-25[전반 16-10] 삼척시청

◎ 벽산건설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오영란 선방 15-실점 15(방어율 50%), 송미영 선방 3-실점 10(방어율 23%)
박정희 2골, 김경화 4골, 김남선 2골, 문필희 6골, 이상미 2골, 손은선 5골, 김온아 14골

◎ 삼척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박미라 선방 13-실점 25(방어율 34%), 신해림 선방 3-실점 10(방어율 23%)
박지현 1골, 유현지 5골, 정지해 10골, 심해인 5골, 최설화 1골, 장은주 3골

★ 남자부 A 인천도시개발공사 34-29[전반 17-13] 경희대학교

◎ 인천도개공 선수들 방어/득점 기록
문지기 강일구 선방 11-실점 16(방어율 41%), 조철민 선방 7-실점 13(방어율 35%)
이현행 2골, 조현철 4골, 김민구 5골, 이순성 1골, 박찬용 1골, 유동근 4골, 엄효원 11골, 김동명 2골, 김성진 4골

◎ 경희대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지효근 선방 5-실점 14(방어율 26%), 배진형 선방 7-실점 20(방어율 26%)
박편규 4골, 정대근 8골, 양태신 3골, 박운천 1골, 이은호 7골, 박수철 4골, 강전구 2골

★ 남자부 A 두산 31-17[전반 13-6] 원광대학교

◎ 두산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박찬영 선방 18-실점 14(방어율 56%), 이경규 선방 4-실점 3(방어율 57%)
정의경 2골, 도요다켄지 2골, 박중규 1골, 임덕준 1골, 진정훈 3골, 오윤석 3골, 홍진기 2골, 지승현 1골, 이병호 3골, 김나성 3골, 윤경신 10골

◎ 원광대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김창권 선방 8-실점 30(방어율 21%), 강철구 실점 1
나승도 5골, 신승일 4골, 김동식 2골, 정한 4골, 최준영 2골
임오경 윤경신 오영란 강일구 핸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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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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