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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모노드라마 속 화자(話者)는 노인이 되어 인생을 말하고 있다.
ⓒ 극단 미추
두 시간여의 숨 가쁜 공연이 끝나고 배우 김성녀는 촉촉이 젖은 눈가를 닦는다. 가족애를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공연을 하면서 그녀 자신도 감동받은 게 아닐까.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치면서 열렬히 환호하며 그녀에게 존경과 사랑을 전한다. 긴 사투를 끝낸 아름다운 배우에게 어찌 편히 앉아서 박수를 칠 수 있겠는가.

3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배우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 온 연극배우 김성녀가 처음으로 모노드라마에 도전했다. 1인 30역을 연기한다니…. 궁금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1인 23역을 훌륭히 소화한 전병욱씨를 보며 감탄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다른 출연배우가 전혀 없는 모노드라마가 아닌가.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은 배우 김성녀의 무대인사로 시작된다. "배우보다 더 멋진 직업은 없다"며 말문을 연 그녀는 "다양한 모습의 인생을 체험해 볼 수 있어 좋다"면서 자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때로 빈 객석을 보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이념대립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벽 틈에 숨어사는 아버지를 '벽속의 요정'으로 여기고 성장하는 아이와 그의 가족사를 다룬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따분하고 머리 아프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의외로 <벽속의 요정>은 시종일관 재미있다.

원작이 탄탄하고 각색도 잘 됐을 뿐 아니라 연출자 손진책의 섬세한 손길까지 거쳤다. 무엇보다 연기와 함께 일생을 살아온 배우 김성녀의 열정이 극을 아우르고 있다. 특히 이 공연에서는 뮤지컬과 마당극에서 실력을 쌓은 그녀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사실 뮤지컬을 다룬 어느 장면에서는 마당극 혹은 품바 공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벽속의 요정>에는 김성녀의 연기 인생이 녹아들어 있다. 웃음과 감동, 애잔함과 아련한 추억을 이 한 편의 공연에서 모두 느낄 수 있다.

ⓒ 극단 미추

무엇보다 궁금했던 1인 30역은 어떻게 연기해 냈을까. 김성녀는 선 굵은 남성 연기를 하다가도 간드러지는 아낙의 목소리를 곧바로, 그것도 감쪽같이 보여준다.

그 중 50대 중반의 배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연기와 시집가기 싫다며 어머니에게 투정 부리는 처녀 연기는 압권이다. 걸쭉한 남자목소리 톤을 그대로 유지하며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무려 서른 가지에 달하는 배역을 김성녀는 모두 실감나게 표현했다. 배역의 특징을 제대로 잡아낸 표정과 걸음걸이, 말투는 물론 섬세한 시선처리까지. 그녀 한 사람이 이 모든 캐릭터를 다 소화하는 것을 보며 많은 관객들은 탄성과 함께 소름끼치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30년을 쉼 없이 달려온 연기자 김성녀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극의 흐름을 끊지 않고 1인 30역을 해내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직접 공연장에서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 극단 미추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열정적이었으며 매력과 끼가 넘치는 진짜 배우 그대로였다. 지금이 그녀의 연기인생 중 가장 화려한 시기라고 말해도 누가 딴죽 걸기 힘들 정도다.

딸이 시집가는 날 입히려고 극중 아버지가 오랜 시간 공들여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베틀로 짠 모시 웨딩드레스처럼, 열심히 정진해 가장 빛나는 연기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배우 김성녀. 그녀의 연기를 보며 관객들은 자신의 삶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된다.

한 분야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확고한 위치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장래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름대로 비장하게 자신을 채찍질해 본다.

무슨 공연 리뷰가 칭찬일색이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직접 가서 공연을 지켜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은 7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됩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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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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