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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극중 '대현'역의 이명호와 '태희'를 연기한 김지호, '운학'역의 곽자형과 '지현' 역할을 맡은 전경수의 모습.
ⓒ 악어컴퍼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연극 <클로져>에는 유쾌함이 넘친다. 지켜보는 이들의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대사와 주연배우들의 코믹스런 표정연기에 관객들은 공연 대부분의 시간을 웃으며 즐길 수 있다.

반면 무대 위의 상황을 바라보는 사이사이, 그리고 연극의 막이 내리고 극장을 빠져 나오면서 씁쓸함과 함께 슬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객석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연극. 이 점이 바로 <클로져>의 흥행요인이 아닌가 싶다.

물론 <클로져>가 흥행에 성공한 데는 김지호라는 스타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나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데 공감하리라 본다.

공연 내내 즐겁게 웃으며 손뼉을 치며 환호하게 만드는 공연들이 요즘 대부분의 무대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공연계에서 심리묘사를 줄거리로 하는 연극의 설자리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코믹터치의 뮤지컬과 지루할 틈이 없는 콘서트뮤지컬 등이 무대 위로 속속 올라오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연극 <클로져>의 약진은 대단한 성과로 평가받을 만하다. 네 남녀의 얽히고 설킨 연애담을 내면의 심리묘사로 그려내면서도 결코 관객을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하지 않고 유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자신과 음란채팅을 한 상대인 줄 착각하고 접근해 수작을 걸고 있는 운학(곽자형 분)을 보고 태희(김지호 분)가 어이없어 하고 있다.
ⓒ 악어컴퍼니
당신은 이별할 때, 혹은 이별을 준비할 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클로져>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관객들은 조금의 가식과 보태어짐 없이 적나라한 내면세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별을 통보한 상대방에게 자존심을 다 버리고 비참할 정도로 매달리는 여자. 그러지 말라고 사정사정하다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욕까지 해가며 거칠게 비난하는 또 다른 커플의 남자.

무대 위의 이들을 보며 가슴이 저미도록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끼리 어떤 극한적인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두 커플은 각각 연인과 이별한 후 체인징 파트너라도 하듯 기묘하게 다시 커플을 이루고, 그 사람들은 상대방과 그의 예전 애인을 의심한다. 그리고는 다시 예전 사랑을 회복하나 싶더니 또 결별이 이어진다.

내용으로만 본다면 아닌 말로 정말 '징하다'는 표현이 딱 일 정도다. 그럼에도 연극은 무겁지 않고, 처지는 분위기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 패트릭 마버(Patrick Marber)와 연출을 맡은 민복기의 저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 극중 사진작가로 열연해 내면연기를 보여준 김지호.
ⓒ 악어컴퍼니
<클로져>에는 남녀가 사랑하면서 흔히 나눌 수 있는 환상과 로맨스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등장인물들의 4년여에 걸친 연애사 중 이별 장면과 서로에게 상처 주는 상황들만을 모아 한 편의 연극을 꾸민다. 참 독특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연극무대에 첫 발을 디딘 배우 김지호의 연기는 어떨까. 김지호의 연기변신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팬들은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만큼 이 작품에서 김지호의 역할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지호가 맡은 역할이 극중 다른 세 역할에 비해 딱히 튀는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 여기에다 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른 무대 위의 연기 환경에 처음 선 김지호가 제대로 적응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단 얘기다.

그러면서도 김지호는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보다 오히려 더 귀엽게 보이는가 하면, 특유의 안정감 넘치는 연기와 함께 우아함이 돋보인다.

ⓒ 악어컴퍼니
이 작품에서는 극중 '운학'을 열연한 곽자형의 연기가 유독 빛을 발한다. 그는 능청스럽고 코믹한 연기는 물론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까지 별 무리 없이 소화해 내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받았다.

그의 개그맨 뺨치는 코믹연기는 채팅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어두운 조명 아래 비쳐진 그의 음흉한 눈빛을 보며, "나 민이야"를 외치면서 객석을 소스라치게 만드는 개그맨 오지헌이 떠올랐다면 과장일까.

또한 극중 '지현'역을 연기한 이영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깜찍한 애교를 부리는가 하면 도발적인 유혹도 서슴지 않는 양면적인 극중 역할을 실감나게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에게 성내는 장면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연극 <클로져>는 18세 이상 관람가이다. 극중 스트리퍼로 출연하는 지현의 스트립쇼 장면이 너무 선정적이기 때문이라는 항간의 소문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빨간색 가발과 망사스타킹 복장을 한 채 춤을 추는 지현의 모습은 '18세 관람가'라는 제한을 붙일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직설적이고 원초적인 배우들의 대사에 있다. 채팅장면에서는 '정액'과 '가슴사이즈' 따위의 단어 정도는 별스럽지 않게 등장하고,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을 거침없는 성적 표현들이 대담하게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무대와의 거리감이 좁혀진다.

<클로져>를 접하는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독특함과 기발함이 철철 흘러 넘치는 무대장치가 그것이다. 배우들의 뒤에 막처럼 세워진 이 무대장치는 영상을 통해 극의 한 부분을 훌륭히 담당해 낸다.

영상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사람이 무대 안으로 등장하고, 그 반대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 특별한 무대장치는 파고다공원과 호텔, 그리고 클럽의 분위기까지 실감나게 그려내며 효율적으로 쓰여진다.

▲ 마음이 돌아선 태희에게 그러지 말라며 매달리다, 나중에는 거칠게 비난하기도 하는 운학의 연기 장면.
ⓒ 악어컴퍼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용서받을 수 있는 상황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자신이 싱글이 아닌데도 다른 이성의 유혹에 스스럼없이 반응하는, 그리고 감정의 이끌림에 충실히 따르는 인간의 속성.

"섹스를 평생 즐기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태희의 대사를 들으며, 그리고 집요하게 상대 여성을 괴롭히는 치졸함으로 묘사되는 남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다소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클로져>는 우리의 부끄럽고 추한 면까지 웃으며 들여다보게 만들기에, 강력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연극 <클로져>는 7월 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됩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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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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