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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배우들이 모두 등장한 마지막 장면.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현, 김광덕, 박호영, 이화룡, 서이숙, 김태희, 송영창, 서현철, 안석환
ⓒ 동숭아트센터
요즘 공연계에서는 '볼만한 공연'을 다시 보는 마니아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영화는 물론 뮤지컬과 연극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본 공연 중 정말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공연을 다시 보고 또 보는, 어찌 보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상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도 같은 공연을 두 번 이상 보고나면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마련이다. 똑같은 무대에 올린 공연이라도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혹은 그 이상 볼 경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까지 잡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대작뮤지컬의 경우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춤과 연기 또한 빼놓기 아까울 정도로 훌륭하기 때문에, 찬찬히 다시 보면서 이들에게도 주목할 수 있다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

이런 열기에 발맞춰 공연기획사 측에서도 공연티켓 소지자에 한해 다시 공연을 볼 경우 티켓가격을 파격적으로 할인해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괜찮은 공연들이 즐비하게 무대에 올리는 시기에 똑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기에는 역시 경제적인 타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 공연 내내 속옷 차림으로 능청스런 연기를 보여준 비키 역의 김광덕이 부동산 직원 로저(서현철 분)를 유혹하는 장면
ⓒ 동숭아트센터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노이즈 오프(Noises Off)'를 보러가는 관객들은 티켓 한 장 값만 치르면 똑같은 연극을 무려 세 번이나 관람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연장에 세 번씩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

1막부터 3막까지 같은 내용의 연극이 계속해서 공연되니 그저 자리에 앉아 감상하면 될 일이다. '이게 웬 떡이냐'하며 반가워 할 사람들이 있는 반면,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똑같은 공연을 보고 있자면 지루하다 못해 따분하지 않겠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단지 기우에 불과하다. 지루하다고? 따분? 이런 단어들은 이 연극과는 절대 무관하니까 말이다. 2시간 넘게 이어지는 공연시간 내내 객석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숨 가쁘게 들락거리는 무대 위의 배우들과 그들이 뱉어내는 기발한 대사에 관객들은 열광하며 즐거워한다.

이 연극의 공연기획사는 '뮤지컬보다 더 재미있는 연극'이라고 홍보를 해왔는데, 뮤지컬은 물론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개그콘서트'나 '웃찾사'보다 몇 배는 더 진한 웃음을 선사한다. 방송사의 자존심 대결이라도 하듯 각기 대학로 전용관에서 매일 개그배틀을 벌이고 있는 이 두 공연보다 단연코 훨씬 재미있다.

'웃찾사'나 '개그콘서트'의 관전포인트는 역시 반복성에서 나타난다. 처음에는 별로 웃기지 않던 코너들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보면 공연장의 분위기와 함께 그들의 멘트에 익숙해져 폭소를 유발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노이즈 오프'는 처음 보는 관객들까지 자연스럽게 웃다 돌아가게 만드는 파워가 있다.

▲ 극중에서 연출을 담당한 안석환과 도둑 역의 정현, 그리고 극중 조연출을 연기한 이화룡이 연기하는 장면
ⓒ 동숭아트센터
그 힘의 원천은 우선 원작을 쓴 마이클 프라이언 (Michael Frayn)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이클 프라이언에 의해 소극(笑劇)으로 쓰인 '노이즈 오프'는 1982년 영국 첫 공연 당시 Evening Standard Theatre Awards 에서 “10년간 집필 된 만큼 숙련된 작품 구성과 풍부한 내용으로 80년대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줬다"라는 평과 함께 단번에 ‘Best Comedy’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후 런던에서 5년간 장기 연속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고 현재까지도 브로드웨이를 비롯하여, 전 세계 38개국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는 고급 코미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그 독특한 구성에서 빛을 발한다.

극 중에는 연극 '낫씽온'이 있고 1막에서는 리허설, 2막에서는 첫 공연 그리고 마지막 3막에서는 마지막 공연이 쉼 없이 이어진다. 이쯤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대사가 재미있고 배우들의 명연기가 펼쳐진다 해도 같은 공연을 세 번 보는 데 지루하지 않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여기에는 연출의 힘이 숨어있다. 리허설과 첫 공연, 마지막 공연까지 관객들은 변화되는 환경 속에서 깜짝 놀라며 세 번 다 새로운 기분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2막인 첫 번째 공연을 예로 들자면, 관객들은 객석이 아닌 무대 뒤에서 배우들의 공연과 무대 뒤의 상황까지 한꺼번에 보게 된다.

무대 너머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무대 뒤에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여러 에피소드들까지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러니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 오랜만에 연기하는 모습을 보게 돼 무척이나 반가웠던 송영창(필립 역)이 극중 부인 플라비아(박호영 분)과 연기하는 모습
ⓒ 동숭아트센터
아무리 원작과 연출이 뛰어나도 배우들이 좋은 연기로 무대를 압도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정현, 송영창, 안석환, 서현철, 서이숙, 박호영, 김태희, 김광덕, 이화룡. 이들이 2시간 넘게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웃음을 선사하는 배우들이다.

출연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연극제에서 다들 연기상 한두 번씩은 수상한 연기파 배우들이다. 그들의 관록과 무대경험이 자연스레 극에 녹아들어 '노이즈 오프'는 정말 감칠맛 나게 웃긴다.

9명의 출연배우 모두 각자의 배역을 맛깔스럽게 소화해 내 딱히 누구 연기가 훌륭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고 따로 주인공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서이숙과 송영창, 그리고 정현과 김광덕을 주목해 볼만하다.

먼저 클라켓 역을 맡은 서이숙은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극중 역할을 연기하며 극의 흐름을 주도해 나간다. 한때는 TV드라마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송영창은 또 어떤가.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멋있었던 그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의외성으로 관객들을 배꼽 잡게 만든다. 또한 뜬금없는 대사를 던지며 고령의 도둑 역할을 연기한 정현과 백치미가 넘치는 비키 역을 속옷 차림으로 공연 내내 열연한 김광덕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의 흐름을 주도한 클라켓 역의 서이숙
ⓒ 동숭아트센터
연극 '노이즈 오프'는 참으로 특별하다. 뛰어난 작품성은 물론 평일 공연에도 빈 자리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며 흥행에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인데 이런 점에서 연극 '달고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하겠다.

기발한 착상과 탁월한 연출력,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내공이 삼위일체가 돼 만들어진 연극 '노이즈 오프'. 이 공연을 볼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로 강력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

덧붙이는 글 | 연극 '노이즈 오프'는 5월28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됩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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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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