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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만연한 불법 노동자, 망명 앞둔 위태로운 48시간

[넘버링 무비 397]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24.10.11 14:43최종업데이트24.10.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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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프랑스 파리 태생의 보리스 로즈킨은 다큐멘터리 출신의 감독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매체로 옮겨온 후에도 그의 시선은 언제나 경계 밖에 놓인 인물을 향해 있었다. 영화 <호프>(2014)에서는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다뤄진 것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불법 이민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냉혹한 현실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다음 작품은 <카밀>(2019).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떠나 내전을 취재하던 중 26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사진작가의 삶을 들여다봤다. 다만 두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프랑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국경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보다 본격적으로 프랑스 사회 안으로 시선을 들이고 있는 작품이다. 배경은 프랑스 파리(Paris)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여행지로서의 파리가 아닌,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파리의 모습이 바로 이 작품 속에 있다'고 할 정도로 현실과 아주 맞닿아 있다. 극을 이끌어 가는 것은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난민 신청자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이다. 자전거를 타고 파리 시내를 오가며 음식 배달 일을 하는 그는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한 중요한 인터뷰를 이틀 앞두고도 불법 노동자로서의 아슬아슬한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배달 일을 하기 위한 등록증은 물론 이 도시의 하루조차 어떤 무엇도 자신의 것이 아닌 상태. 보리스 로즈킨 감독은 그가 마주하게 될 난민청 망명 인터뷰까지의 48시간을 통해 파리 사회에 만연한 불법 노동자들의 처지와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02.
도시의 배달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은 차고 넘친다. 중간 단계에 놓인 대상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양쪽으로부터 가해진다. 배달 주문을 한 고객으로부터의 항의가 첫 번째, 반대쪽인 매장의 직원들로부터 주어지는 조롱과 멸시의 태도. 모든 고객과 매장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쪽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는 순간 페널티를 받는 쪽은 언제나 배달 기사다. 모든 과정을 중개하는 배달 어플 본사로부터의 감시와 압박도 있다. 그들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불만 접수의 대상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기사들의 계정을 정지하거나 차단하는 식으로 위협을 가해온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배달 노동자의 이야기다. 술레이만의 경우에는 조금 더 가혹하다. 보호소의 임시 체류증으로는 수입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정착한 이들의 계정을 빌려 대리로 일을 하게 되는데 이 비용만 일주일에 120유로가 넘는다. 같은 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도 평균적으로 200-250유로 정도를 벌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심지어 주기적으로 계정 인증 안내가 뜨면 제한 시간 안에 계정 주인을 찾아 달려야만 한다. 수익 또한 직접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계좌를 통해 들어온 금액에서 대여비를 제한 나머지를 건네받는 식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3.
매일 새벽 쉼터의 잠자리를 경쟁적으로 예약해야 하고 저녁이 되면 쉼터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야만 하는 것도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일반 시민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태도와 표정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그런 것쯤 신경을 쓸 여유는 이들에게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미소 지을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처에 깔린 불안과 위협에 비하면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 전체는 갑갑하기만 하다.

사실 영화가 그려내는 난민 신청자의 모습에는 표상적인 부분도 있다. 그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리 위에서의 삶을 조명하는 일과 그 안에서 인물이 느끼는 불안과 혼란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여자 친구와 연결된 플롯이 최소한의 배경을 설명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그리며 반대의 자리를 채우고자 한다. 그 또한 얻고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포기하고 빼앗기는 쪽의 이야기이지만.

04.
"진짜 자네 경험처럼 말해야 해. 사실처럼 말해."

이 작품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줄기는 난민청의 망명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타인의 계정까지 빌려 가며 배달일을 해야 하는 것도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한 목적이 있다. 늘어가는 난민 신청을 심사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도 꽤 엄격한 기준으로 이들을 대하고 있다. 브로커인 바리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해답처럼 정해진 내용을 배우고 외우고, 또 그와 관련된 조작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짧은 시간 동안 직접 경험하지도 못한 전문적인 내용을 마치 자신이 직접 지나온 시간처럼 체득하기가 쉽지 만은 않다는 것. 영화의 첫 장면부터 배달 자전거 위애서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브로커가 녹음해 준 대로 외우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는 이유다. 모든 난민 신청자가 그렇겠지만 술레이만이 인터뷰에 얼마나 절실한 모습으로 매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그려진다.

그리고 인터뷰 신(Scene).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마주 앉은 술레이만과 심사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의 연속은 완전히 다른 상황, 다른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가 초중반을 지나며 이어왔던 긴장감을 훼손하지 않는다. 지난 48시간을 왜 그렇게밖에 지낼 수 없었는지, 굳이 큰돈을 들여 거짓말까지 해가며 브로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한 이유가 그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설명 없이도 전해지는 장면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부산국제영화제

05.
이민자의 모습을 다루는 작품에 대해 '오락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오락성의 측면에서 자신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장치를 모두 마련하고 있다. 끊어지지 않는 속도감과 긴장감이다. 여기에 개인의 정체성과 소속감의 문제, 이민자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의문이 더해지면서 웃고 즐기는 종류의 '오락성'이 아닌 눈을 떼지 않고 마지막 장면까지 나아갈 수 있는 '오락성'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심을 횡단하는 술레이만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운동성 또한 힘을 보탠다. 빠르게 소진되는 그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과 위태로운 상황이 반영된 시각적 자극이다. 그는 합법적으로 프랑스 파리의 도심을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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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어느파리택배기사의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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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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