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3.
매일 새벽 쉼터의 잠자리를 경쟁적으로 예약해야 하고 저녁이 되면 쉼터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야만 하는 것도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일반 시민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태도와 표정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그런 것쯤 신경을 쓸 여유는 이들에게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미소 지을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처에 깔린 불안과 위협에 비하면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삶 전체는 갑갑하기만 하다.
사실 영화가 그려내는 난민 신청자의 모습에는 표상적인 부분도 있다. 그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리 위에서의 삶을 조명하는 일과 그 안에서 인물이 느끼는 불안과 혼란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여자 친구와 연결된 플롯이 최소한의 배경을 설명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그리며 반대의 자리를 채우고자 한다. 그 또한 얻고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포기하고 빼앗기는 쪽의 이야기이지만.
04.
"진짜 자네 경험처럼 말해야 해. 사실처럼 말해."
이 작품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줄기는 난민청의 망명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타인의 계정까지 빌려 가며 배달일을 해야 하는 것도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한 목적이 있다. 늘어가는 난민 신청을 심사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도 꽤 엄격한 기준으로 이들을 대하고 있다. 브로커인 바리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해답처럼 정해진 내용을 배우고 외우고, 또 그와 관련된 조작된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역시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짧은 시간 동안 직접 경험하지도 못한 전문적인 내용을 마치 자신이 직접 지나온 시간처럼 체득하기가 쉽지 만은 않다는 것. 영화의 첫 장면부터 배달 자전거 위애서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브로커가 녹음해 준 대로 외우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는 이유다. 모든 난민 신청자가 그렇겠지만 술레이만이 인터뷰에 얼마나 절실한 모습으로 매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그려진다.
그리고 인터뷰 신(Scene).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마주 앉은 술레이만과 심사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의 연속은 완전히 다른 상황, 다른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가 초중반을 지나며 이어왔던 긴장감을 훼손하지 않는다. 지난 48시간을 왜 그렇게밖에 지낼 수 없었는지, 굳이 큰돈을 들여 거짓말까지 해가며 브로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한 이유가 그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과 설명 없이도 전해지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