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2.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인물의 동인(動因)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작품처럼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이들이 서로 쫓고 쫓아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목적 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인물은 어디에도 없다.
극 중 규남 역시 마찬가지다. 명확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종필 감독은 그가 탈북을 결심하게 되는 요소를 곳곳에 마련해두고 있다. 기본적인 배경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허기와 기존의 권력 체계가 갖고 있는 부정부패다. 순찰 도중 구한 멧돼지를 병사들이 아닌 직책이 높은 이들에게 헌납하는 장면이나 화려한 총 정치국장의 연회 장면은 꽤 직접적인 편에 속한다. 현상이 쓰고 있는 미제 립밤을 포함해, 물티슈나 액상 담배조차도 인민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물품들이다.
출신 성분이 3등급이라 제대 후에는 탄광으로 가야 한다는 규남의 타고난 성분에 대한 후임 병사들의 이야기도 또 하나의 요소다. 실제로 규남이 현상에게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정하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는 장면도 놓인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에서는 아닌 종류의 것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만 질 수 있다면 어떤 미래도 선택하고 나아갈 수 있는 남한과는 분명히 다르다. 보좌관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주겠다던 현상의 제안이 보통 같았으면 행운처럼 여겨지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이곳에서 개인의 운명은 당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03.
"규남아, 너 탈주범 때려잡은 영웅이잖아?"
규남에게 나아갈 동인이 주어졌다면 현상에게는 반대로 그를 붙잡아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이 부분은 이미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북한에서 탈주와 이탈은 총살형에 준하는 행동이다. 두 사람이 마주 본 상태 그대로 직선으로만 달렸다면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나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현상은 규남을 총살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도 모자라 상을 주고자 한다. 탈주병을 잡은 인민의 영웅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요해지는 것이 현상이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방향을 향해 직선으로 강하게 나아가지 않은 이유다. 그는 왜 규남을 힘껏 쫓지 않았던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이 과거 알고 지냈던 사이라는 설정이 놓인다. 과거 규남의 아버지가 현상의 집에서 운전수 일을 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이 함께 지냈던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 쌓은 우정이나 형제애 같은 것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의뭉스럽게 옛 인연을 꺼낸다. 조금 더 가까이는 장인어른을 치켜세우기 위한 연회에서 탈주범을 때려잡은 영웅으로 그를 세우기 위한 목적도 있다. 사단 예하의 부대에서, 그것도 전방 지역에서 원수의 격을 훼손할만한 행위를 저지하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