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4.
한편 이 작품에서 인물이 가진 동력 외에 극을 추동하게 하는 것은 역시 속도감이다. 여기에는 직선적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는 시각적 동력 하나와 의도적인 생략과 절삭을 통해 완성된 편집에 의한 또 다른 동력 하나가 함께 작용한다. 플롯의 구성에 대해서는 이종필 감독 또한 '의도적으로 캐릭터에 부여된 구체적 사연을 덜어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한다. 원래의 목적은 관객이 서사에 이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극의 생동감을 더 극대화한 셈이다.
수많은 밤을 고생해 가며 완성한 지도가 예정된 비가 내리고 난 이후 쓸모 없어진다는 설정 또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규남은 이 문제로 인해 자신의 목숨이 달린 연회장에서조차 초침과 시간에 훨씬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고자 한다. 차량을 훔쳐 달아난 뒤에 독립적으로 수감된 동혁을 구해내고, 다시 그를 쫓는 현상과 장력을 형성하는 장면들 또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도가 없이는 계획한 대로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없고, 비무장지대가 진창이 되기 전에 지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타임어택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05.
"여기서는 실패할 수도 없으니 내 마음껏 실패하러 가는 겁니다."
규남의 세 번째 탈주,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달리는 마지막 추격 장면에서는 '실패'라는 단어를 둘러싼 서로 다른 서사가 대립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이 정한 대로 걸어가고 싶다는 규남과 직접 해보고 실패를 경험한다고 해서 마냥 후회가 남지 않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이다. 같은 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경험과 사상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의 차이는 역설적이게도 북한이라는 동일한 공간으로부터 비롯된다. 출생 성분과 계급 차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유하고 계급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던 현상은 러시아로 떠난 유학의 삶에서 이미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 있던 그는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소환당한 뒤, 군의 보위부의 일을 하고 있다.
규남은 그렇지 않다. 어떤 기회도 부여받을 수 없었던 그의 출신 성분은 오히려 기회와 실패를 갈구하는 쪽으로 그를 성장시킨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여전히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앵글 속에 (현상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규남은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본다.) 가두어두고 있지만, 이제 규남은 그 자리로부터 이탈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후임인 동혁의 몫까지 짊어진 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