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스틸컷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는 어떤 인간의 삶을 다룬다. 124분의 러닝타임 동안 그는 한 차례도 제가 사는 이유를, 제 삶을 지탱하는 힘을, 나아가는 목표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저 그의 삶을 가까이서 바라보도록 할 뿐이다. 그의 삶은 어떤 모양인가.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로 나아가는가. 영화의 관심은 오로지 그뿐이다.
그를 우리 시대의 언어로 적어보면 이쯤이 될 테다. 50대쯤으로 보이는 늙수구레한 남성. 청소부. 도쿄의 공공 화장실 청소 전문업체 소속. 독신. 도쿄 외곽 주택에 거주. 연락하는 가족 없음. 애인 없음. 따로 보는 친구 없음. 매일 아침 일찍 출근. 아침마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심. 점심은 공원에서 샌드위치로 때움. 청소를 마치고 목욕탕에 들렀다가 간단히 술 한 잔을 곁들인 식사를 함. 이따금은 술집을 찾기도. 단골 가게 두어 곳을 방문하는 편. 매일 밤 독서를 함. 차량 운전 중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음.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주변 사진을 찍어 기록함. 집에서 식물을 키움.
자, 이것이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에 대해 적을 수 있는 전부다. 나는 이밖에 그의 신상이며 일상에 대해 더 적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히라야마는 어떤 사람으로 다가오는가.
당신 무엇을 떠올리든 히라야마는 그와는 다른 이일 것이다. 히라야마라는 사람의 색깔과 온도가 위 사실엔 전혀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찍는지를 나는 기록하지 않았다. 또 그가 어떤 자세로 청소에 임하며, 일을 할 때 어떤 표정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나는 적지 않았다. 가게에선 어떤 분위기가 되는지를, 또 그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표정이 어떠한지도 나는 쓰지 않았다. 말하자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알고 보면 달라진다, 이 남자가 그렇다
<퍼펙트 데이즈>가 보이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전자의 세계관에서 후자의 세계관으로, 전자의 가치관에서 후자의 가치관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히라야마라는 한 인간이 보낸 며칠을 뒤따르며, 한 사람이 무엇으로 표현되는지를 영화는 일깨우고 있다.
다시 적어보자면 이렇게 쓸 수 있겠다. 히라야마는 성실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출근하며,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그 후에도 같은 일상을 소화한다. 반복되는 삶에 불만을 갖기보다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고 만족한다. 새로운 자극을 향해 나아가기보단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삶, 가깝고 정다운 것들을 섬세하게 매만지는 태도를 그는 가지고 있다.
그가 모는 작은 승합차엔 직접 제작한 청소도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하나하나가 제 방식에 꼭 맞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는 공들여 대변기와 소변기, 세면대와 바닥 등을 닦아낸다. 보이지 않는 곳도 거울을 비추어 섬세하게 청소한다. 정성스럽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그의 청소방식은 가히 예술적이다. 히라야마가 청소한 화장실엔 히라야마가 묻어 있다. 말이 거의 없는 대신, 주변을 민감하게 느낀다. 표현보다는 수용에 익숙한 사람, 들어오는 하나하나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이가 바로 그다.
듣는 음악과 읽는 책, 찾는 가게와 찍는 사진이 곧 히라야마를 말한다. 그가 모는 차엔 벨벳언더그라운드와 애니멀스, 롤링스톤즈와 니나 시몬스, 패티 스미스 같은 올드팝 가수들의 명곡이 카세트테이프로 잔뜩 들어차 있다. 카세트테이프, 그의 취미가 얼마나 오래 이어져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취향은 인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