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물은 공짜가 아니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언제부터 하루 세끼를 매일 챙겨 먹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가 아닐까? 지금 떠올려 보면 아침마다 식탁 위에 차려져 있던 그 밥상이 보통의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겠다 싶다. 물론 그때는 그 고마움을 조금도 알지 못했지만. 무엇이든 그렇다.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이제 내가 만들어야 할 때가 되면,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무형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를 이만큼 자라게 한 것도 그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아닐까. 영양학적인 요소만큼이나 넘치도록 담겨 있었을 사랑.
영화 <국물은 공짜가 아니다>에는 볶음면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자신의 한 끼는 제대로 챙겨 먹을 줄 모르는 수민(나애진 분)이 등장한다. 아침은 피곤해서 건너뛰고, 점심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때우고, 저녁은 밤늦은 시간 영업이 끝나고 나서야 가게 한쪽에서 볶음면 한 그릇을 겨우 챙겨 먹는 생활의 연속. 딱히 스스로는 그 삶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삶의 온기라고는 식당 부엌의 화롯불만큼도 되지 않는 역시 조금은 안타까운 삶이다. 영화는 유정(김차윤 분)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집밥을 직접 만들어먹는 그녀로 인해 수민의 표정과 시간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그 모습은 다시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마저 바꾸어 놓는다. 국물이 공짜가 아니라고 외치는 이 영화에는 사실 집밥에 숨겨진 타인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놓여있다.
02.
영화는 어두침침한 가게를 찾은 손님과 실랑이 중인 수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술에 취한 듯한 손님은 속이 불편한 모양인지 국물이 있는 국수 요리를 찾지만, 그녀는 냉정한 표정으로 가게 한 편의 안내문을 가리킨다.
'국물은 없습니다.'
볶음면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라서 국물이 없다는 말이다. 코팅까지 해서 써붙여둘 정도이니 평소에도 국물을 찾는 손님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이내 다시 또 말다툼이 이어진다. 들어온 김에 정수기 물 한 컵만 달라는 손님에게 요리를 주문하지 않은 손님은 물도 돈을 내고 마셔야 한다는 수민.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의 규칙이 그렇다는 것이니 손님도 할 말은 없을 테지만, 어쩐지 조금은 야박하고 깐깐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늦은 밤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온 수민은 이제 막 룸메이트가 된 유정에게도 냉랭한 태도를 유지한다. 함께 살게 되었으니 인사도 하고 앞으로 잘 지내자는 그녀에게 자신은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올 것이니 몇 가지만 주의해 달라고 고지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영화의 시작점에 놓인 단 두 개의 장면뿐이지만, 수민이 어떤 종류의 인물인지는 대충 감이 오는 듯하다. 억척같고 인정이 없으며 타인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의 분위기가 밝고 따뜻할 리 없다.
그런 그녀와 함께 살게 된 유정은 그럼에도 꽤 살갑고 친근하려고 애를 쓴다. 수민이 불편한 기색을 온몸으로 드러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보려고 노력하는 모습. 딱 봐도 인스턴트식품만 먹고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는 수민을 자신의 밥상에 굳이 같이 앉히려는 것 역시 그 노력의 일환이다. 아니 사실은, 애를 쓰고 노력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너무 당연한 것을 수민이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알려주려는 모양새다. 집밥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