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물은 공짜가 아니다>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일반적으로 영화의 극에서 인물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에 하나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조금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이 있다. 극의 전체가 어떤 대가를 바라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의 대립으로 지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역시 수민과 유정 두 사람이다. 극 중에 직접 등장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면서 결합을 통해 입체적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극에서 더 중요한 인물은 두 사람의 기저에 존재하는 두 엄마다.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엄마의 행동은 두 딸이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된 직접적인 근거가 되며 조금 전 이야기했던 이 극을 지지하고 있는 대립의 씨앗이 된다.
자신이 키워준 비용을 정산해 갚으라고 말하는 수민의 엄마는 대가를 바라는 쪽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수민이 자신의 청춘을 볶음면 가게에 쏟아부으며 악착같이 돈을 버는 이유가 된다. 심지어는 그녀의 엄마는 때마다 돈을 보내라는 연락이 아니고서는 별다른 감정적 교류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악독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수민이 현재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는 근거로 기능한다. 한편, 유정의 엄마는 완전히 반대쪽에 놓여 있다. 굳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아도 집을 나가 살고 있는 딸의 끼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반찬과 먹을거리를 챙겨 보내는 인물. 수민의 엄마가 수민을 키웠듯이 자신 역시 유정을 키워왔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기는커녕 지금 가까이에서 조금 더 해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엄마의 모습과 가정환경에서 수민과 유정 역시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런 두 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어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 설정은 집밥의 온기를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에 의한 그런 온기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04.
영화 전체의 분위기가 다소 어둡고 차가웠던 쪽에서 따뜻한 분위기로 변하는 이유는 그 시선이 수민의 내러티브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가 수민의 내면과 거의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녀의 내면을 채우는 온기의 크기만큼 영화의 분위기 역시 바뀌어간다. 그 과정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유정의 집밥이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값을 치르겠다는 수민의 말에 집밥에 무슨 돈을 주고받냐고 일갈하는 그녀는 말라있던 수민의 마음에 온기를 채우는 존재가 된다.
유정의 집밥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과 애정을 의미하는 대상이며, 반대로 수민은 가질 수 없었던 대상이기도 하다. 그동안 채울 수 없었던 내면의 온기와 성장의 발판을 유정을 만나고 난 후에야 마련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무런 비용도 받지 않고 수민이 만들어주는 볶음면만 먹으며 배달일을 돕고, 또 오랜 친구로 곁을 지키는 태웅도 그녀가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다만 유정이라는 인물이, 그리고 그녀의 집밥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를 보이는 수민이라는 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포착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는 온기를 상실한 쪽에서 회복하는 쪽으로의 전개를 택하고 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배경에는 곳곳에 온기가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밤 잃어버렸던 자전거를 찾아주며 귤 세 개를 바구니에 담아주는 이름 모를 아저씨의 마음이 이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따뜻함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