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모든 것은 한순간에>
노르웨이 / 2022 / 8분
감독: 헨릭 딥 즈워트
여기 기묘한 작품이 하나 있다. '결정적 순간, 아주 익숙한 표현이다'라는 문장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이내 곧 크고 작은 파편의 영상이 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위치와 속도, 방향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듯이 하나의 화면은 4, 5개의 작은 시선으로 분산되기도 하고, 다시 하나의 큰 장면으로 모이기도 한다. 극 중 내레이션의 인물로 추정되는 야코브(Yacob)의 말처럼, 아주 작은 기억들이 서로 뒤엉켜 있으면서도 한꺼번에 일어나는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 장면화되어 그려지는 것 같다.
이 짧은 형식의 영상을 연출한 헨릭 딥 즈워트 감독은 오래전부터 매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창의적인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인물이다. 이번에는 단편영화라는 형식적으로 대중에 가까운 포맷을 활용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기억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에 있어서는 꽤 흥미로운 모습을 보인다. 단순히 영상의 조각 모음을 파편화된 기억으로 전환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작품을 그렇게만 바라보기에는 러닝타임 전체를 구성한 방식이 집약적이고 의도적이다.
극 중 야코브(Yacob)가 하는 말들은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기억에 대한 고찰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적 구성에 따라 해당 인물이 겪게 되는 사건과 그에 따라 반응하는 행동들이 감독의 것은 아니겠으나, 결국 그 또한 문자로 산화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방법으로 증명하고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해 속에서 감독이 영화를 통해 기억에 대해 제시하는 개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우리가 이야기할 때 시간 순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말하는 것과 달리 현실은 훨씬 더 마구잡이인 경우가 많다는 것. 둘째는 기억이란 그 자체로 추상적이기에 대표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떠올리면 정확하지 않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사소하고 세세할 수도 있고 또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변할 수 있는 것이 기억이기에 때때로 아주 완벽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10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영상 속에서 240여 개의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분할 화면이 계속적으로 전사하면서 인물의 과거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까닭은 앞서 이야기했던 기억에 대한 감독의 고찰과 함께 '하나의 기억이 구성되고 왜곡되며 완벽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경험하게끔 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기억이라는 것이 지금 쏟아지듯 흩뿌려지는 순간(Moment)과 파편(Fragment), 인상(Impression)의 선택적 결합에 의해 완성되며, 자신이 믿고 바라는 방향에 따라, 여기에 시간의 흐름과 반복을 더해, 완벽하다고 믿는 방향으로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놓인 야코브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장면이 후반부에서 제시되기 직전까지 우리가 그의 존재에 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은 내레이션에서 돋보이는 그의 담담한 어조와 처음의 대사가 보여주고자 했던 내용, 그리고 반복하며 등장하는 한 여성(엔딩 크레디트 상으로 '한나'라는 이름의 여성이며, 남자의 어머니 혹은 반려자로 추청된다)의 이미지다. 특히 이 여성이 담긴 영상은 영화의 말미에서 그의 폭력적인 행동을 보고 난 이후에도 다시 한번 제시되는데, 이 장면에서조차 그를 떠올리는 야코브의 모습에 일부 아련한 감정을 형성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것은 단편적으로 나열된 작은 순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억이 이들을 붙잡아 어떤 모양으로 완성해 나가는가 하는 경험을 또렷한 인식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 이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목적이자 감독인 딥 즈워트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