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부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부유>
대만 / 2022 / 15분
감독: 유닝
조용한 실내 수영장. 한 소녀가 잔잔한 수면 위로 작은 돌을 던지고 있다. 물수제비가 되어 날아가는 돌은 멀리 가지 못하고 곧 물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다음, 또 다음. 소녀의 곁에는 어디에서 주워왔는지도 모를 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그런 그녀를 몰래 바라보는 이가 있다. 작은 금붕어 한 마리가 든 투명한 원형 플라스틱 어항을 허리에 맨 소년. 처음 만난 소녀의 모습에 묘한 떨림을 느낀듯한 소년은 곧 소녀가 있는 수영장을 향해 다가가고, 그의 존재를 알게 된 소녀 역시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대만 감독인 유닝의 단편 영화 <부유>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에 가까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직접적인 표현을 최대한 미루어두는 듯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영화가 최소한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부분 두 가지다. 대사(Dialogue)와 투 숏(Two shot)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요소를 이 영화는 배제하는 모습이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단 2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일반적이지 않다.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를 일부러 에둘러 가는 식인데,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그려내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섬세한 구조화를 통해 시각적인 부분을 그려낸다. 짧은 러닝타임 속에 두 남녀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가장 즉각적이고 반사적일 수 있는 방법을 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물을 메인 소재로 삼아 어느 한순간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색상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위해 선택된 지점이다.
먼저 영화의 화면은 모두 물과 관계된 공간으로 채워진다. 수영장의 천장에서 수면을 내려다보거나 수면 아래에서 물속에 잠긴 인물을 보여주는 식의 구도는 꽤 직접적인 편에 속한다. 물 밖으로 나온 인물조차도 그 배경이 되는 벽면 공간에 수면의 일렁거리는 움직임을 비춰내고, 탈의실의 공간에서도 피어오르는 수증기나 거울 위로 튄 물방울을 잊지 않는다.
색의 활용과 관련해서는 청색과 적색의 대비를 활용한다. 한 가지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사랑의 속성이 붉은 계열의 색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낮은 수위의 물이 갖고 있는 투명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의 푸른색을 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색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두 사람의 아직 무르익지 않은 풋사랑을 표현하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이후 후반부의 여자의 상상을 그려내는 장면에서도 더욱 극적인 연출이 가능하게끔 만든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수면 아래에서 손을 맞잡고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짙은 푸른색에 이어 옅은 붉은색의 색감을 이어내는 식이다. 낮은 채도의 푸른색과 짙은 파란색,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낮은 채도의 붉은색. 아직 정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감정의 고조가 색을 통해 그려진다.
소년과 소녀를 대신하는 상징물의 활용도 이 영화의 다층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소다. 대상(수신자)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으로 던져지는 소녀의 조약돌과 플라스팅 어항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년의 금붕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가 자신의 조약돌을 소년의 어항 속으로 가득 쏟아붓는 행위는 소녀가 자신의 감정을 쏟아낼 대상을 찾게 된 것으로, 다시 소년의 세상이 타인에 의해 열리고 깨어나는 것으로 치환된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세상을 부유하고 탐험하게 되는 것. 그 모든 의미가 여기 담겨 있는 것이다.
맞닿아 포개진 두 사람의 발끝이 이어지며 영화는 모두 끝나지만, 어쩌면 이 장면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서로의 세상이 아닌 어디에서도 부유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곳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