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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왜 분노했나... 현직감독도 경악한 '차별 조항'

[진단] 여자 경기는 취약 시간대 배정, 역대급 '연봉 차별 조항'까지... 배구연맹 뭐하나

18.03.12 16:03최종업데이트18.03.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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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선-김연경-양효진 선수(왼쪽부터)... 2017 월드그랑프리 대회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 국제배구연맹


'4개국 리그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 도전을 앞두고 있는 김연경(31세·192cm). 그가 지난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내 프로 구단과 한국배구연맹(KOVO)을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여자배구 샐러리캡과 남자배구 샐러리캡 차이가 너무 난다. 또한 여자 선수만 1인 연봉 최고액이 샐러리캡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까지 추가했다고 한다. 왜 점점 좋아지는 게 아니고 뒤처지고 있을까? 이런 제도라면 나는 한국 리그에서 못 뛰고 해외에서 은퇴를 해야 될 것 같다."

한탄과 답답함이 묻어 나온다. 단순히 선수 개인이 V리그 복귀할 때 고액 연봉을 받고 싶어서 하는 차원의 반발이 아니다. 어차피 김연경이 국내에 복귀한다면, 은퇴를 앞두고 그동안 사랑을 베풀어준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일 가능성이 높다.

김연경이 공개 비판에 나서게 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난 10일 보도된 <'남녀 연봉격차 2배' 배구연맹의 성 차별적 샐러리캡 제도> 제하의 기사를 캡처해서 올렸다(관련 기사 : '남녀 연봉격차 2배' 배구연맹의 성 차별적 샐러리캡 제도).

그리고 기사에 관해 "제도가 더 좋게 바뀌지 않고 안 좋은 방향으로 가네요. 이런 제도라면 나는 평생 한국 리그에서 못 뛰겠네요"라고 적었다.

비판의 직접 대상은 지난 5일 KOVO 이사회가 결정한 남녀 샐러리캡(각 팀이 선수들에게 지불할 수 있는 연봉 총액의 상한선)과 여자 선수에게만 적용하는 '1인 연봉 최고액 제한 제도'이다. 핵심은 여자배구에 누적된 차별 구조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녀 격차 '사상 최대' 벌어져... 여자부 '2년 동결'도 최초

김연경 선수 인스타그램 ⓒ 김연경 인스타그램


V리그 출범 이후 남녀 배구에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하기 시작한 건 2005~2006시즌부터다. 당시 샐러리캡은 남자배구 11억 7천만 원, 여자배구 6억 원이었다.

이후 2008~2009시즌까지 3년 동안 꾸준히 샐러리캡이 인상되면서 남자부 15억 원, 여자부 8억 5천만 원이 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보다 인상 폭이 더 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상과 동결을 반복하면서 2014~2015시즌 샐러리캡은 남자부 21억 원, 여자부 12억 원이 됐다. 여기까지는 인상을 하든 동결을 하든, 남녀가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결정을 해왔다.

문제는 2015~2016시즌부터다. 남자부만 인상하고 여자부는 동결하는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2015~2016시즌과 2017~2018시즌 모두 남자만 1억 원을 인상하고 여자는 동결시켰다. 그러면서 남녀 샐러리캡 격차가 지난 시즌에 24억과 13억 원으로 크게 벌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KOVO 이사회는 지난 5일 V리그 사상 최고의 차별적 조치들을 쏟아냈다. 이날 KOVO는 남녀 모두 샐러리캡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남자부는 향후 3년간 매년 1억 원씩 인상키로 했다. 이대로라면 남자부 샐러리캡은 향후 2018-2019시즌 25억 원, 2019-2020시즌 26억 원, 2020-2021시즌 27억 원으로 인상된다. 반면 여자부는 현행 13억 원에서 1억 원이 증가한 14억 원으로 인상하고, 향후 2년간(2018-2019 시즌, 2019-2020시즌) 샐러리캡을 동결하기로 했다.

올 시즌 남자 24억 원, 여자 13억 원의 샐러러캡은 앞으로 남자 27억 원-여자 14억 원으로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됐다. 이 격차는 V리그 사상 최고 수준이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가면, 남녀 샐러리캡 차이는 한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여자배구 샐러리캡 '2년 동결'도 V리그 출범 이후 한 번도 없었던 조치이다.

현 프로 감독 "여자 연봉 최고액 제한, 기사 보고 알아 깜짝 놀랐다"

KOVO 이사회는 여자 선수에게만 '1인 연봉 최고액이 샐러리캡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까지 추가했다. 이 제도 역시 V리그 출범 이후 최초의 일이다.

쉽게 말하면, 남자 선수는 5억, 10억을 초과하는 고액 연봉자가 나와도 상관없지만, 여자 선수는 제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하고 팀 기여도가 높고 국제대회에서 남자배구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V리그 흥행에 큰 기여를 해도 3억 5천만 원 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선수 한 명에게 연봉이 편중되는 걸 막고, 다른 선수에게도 혜택이 분산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왜 '여자 선수에게만 적용하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이처럼 중요한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부 구단들의 감독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프로 구단 감독은 12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여자 선수만 연봉 최고액을 제한한다는 걸 사전에 전혀 몰랐다"며 "기사를 보고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올 시즌 'V리그 흥행 기여도'를 살펴보면, 남자배구와 여자배구가 거의 차이가 없고 오히려 여자배구가 TV 시청률과 관중수가 지난 시즌보다 크게 상승하면서 흥행 유지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성 차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봉 제한' 폭탄들을 여자배구에 안겨 준 것이다.

여자배구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충격이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이다. 김연경의 공개 비판은 국내 여자배구 선수와 여자배구 팬들의 분노를 대표해서 총대를 메고 시정을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접받을 자격 있는' 여자배구... 흥행 기여도 남자부 못지않다

메디-김수지-김희진(왼쪽부터)... 2017~2018 V리그 IBK기업은행 선수들 ⓒ 박진철


일각에선 'V리그 남녀 배구의 시장 규모와 모기업의 차이 때문에 연봉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고 해도, 남자배구와 여자배구의 흥행 기여도와 연봉 차이가 2배 이상이 난다는 건 어불성설이자 도가 지나치다.

또 다른 함정도 있다. 남자배구와 여자배구의 연봉 상한선 차이가 공정한 경쟁 조건 속에서 나온 게 아니란 점이다. 남자배구는 평일 저녁 황금 시간대인 오후 7시에 경기를 한다. 주말에도 남자배구가 더 유리한 오후 2시에 경기를 한다.

반면, 여자배구는 평일에는 취약 시간대인 오후 5시에 경기를 한다. 아무리 여자배구를 보고 싶어도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경기장에 갈 수도 없고 TV 시청도 어렵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여자배구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과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올 시즌 TV 시청률과 관중수가 V리그 출범 이후 최고치를 뚫을 기세였다. 최근 한국배구연맹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017~2018 시즌 여자 배구의 관중수와 시청률은 같은 기간 이전 시즌보다 약 2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기사 : 여자배구 4라운드 평균 시청률 0.9%, '역대 최고' 신기록).

만약 남자배구와 여자배구 경기를 겹치지 않게 평일 오후 7시에 번갈아 배치한다면, 여자배구 시청률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시청률 흐름으로 볼 때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를 추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 남녀 격차, '도 넘고 불합리'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프로 구단과 KOVO는 외국인 선수 부분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차별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남자 외국인 선수 연봉은 30만 달러인 반면, 여자 외국인 선수는 그 절반인 15만 달러에 불과하다.

또한 KOVO 트라이아웃 규정에 따르면, 남자 외국인 선수는 연봉에 대한 세금까지 구단이 대신 내준다. 세금을 따로 떼지 않고 30만 달러를 모두 받는다는 뜻이다. 반면, 여자 외국인 선수는 본인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때문에 실제 손에 쥐는 연봉 액수는 남녀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한 프로 구단 관계자는 "재계약한 여자 외국인 선수는 연봉이 오른 만큼 세금도 크게 늘기 때문에 18만 달러를 줘도 세금 떼고 나면 1년 차 연봉인 15만 달러보다 나을 게 없고, 오히려 실제 받는 액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녀 외국인 선수 모두에게 적용되는 '나쁜 제도'도 있다. 2년 연속 뛰어난 활약을 펼친 외국인 선수가 3시즌째 다시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면, 오히려 연봉이 삭감되는 황당한 규정이다.

이 경우 원소속 구단은 기존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을 할 수 없고, 3시즌째 트라이아웃 참가 선수는 처음 트라이아웃 참가자와 똑같은 신분으로 드래프트에 나서야 한다. 연봉도 처음 참가자와 똑같이 15만 달러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올 시즌까지 KOVO의 트라이아웃 규정이었다.

최고의 활약과 실력을 인정받아 재계약하는 선수라면,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하고 그에 걸맞은 인상이 이뤄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연봉이 트라이아웃 신입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면, 이는 불합리하고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해도 너무한' 여자 프로 구단들... KOVO도 '공동 책임'

이처럼 남녀 차별 논란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자 구단들이 남자 구단들보다 선수 연봉 인상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여자배구 인기 상승으로 모기업 홍보 효과는 커지는데, 지갑은 열기 싫은 것이다.

남자배구 샐러리캡 인상 폭이 높은 이유는 남자 구단들이 그만큼 선수 투자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남자 선수의 연봉이 높다는 점 자체를 비판할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배구 선수의 연봉이 높다는 건, 잠재력이 좋은 유소년과 그 부모들이 배구 선수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순기능도 있다.

때문에 남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자 프로 구단들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누적된 격차를 한꺼번에 좁히라는 것도 아니다. 비판의 핵심은 점진적으로라도 좁히는 노력을 해도 부족할 판에 격차를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KOVO도 '구단들이 결정한 일'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V리그의 주요 사안과 제도를 최종 결정하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들이 누구인가. 모두 프로 구단의 단장들이다. 선수의 이익보다 구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구단 이기주의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상황에서 KOVO는 적절히 조정하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조정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총재를 비롯해 KOVO 구성원들도 비난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이사회 결정들은 '해도 너무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김연경 선수의 비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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