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김수지-김희진(왼쪽부터)... 2017~2018 V리그 IBK기업은행 선수들
박진철
일각에선 'V리그 남녀 배구의 시장 규모와 모기업의 차이 때문에 연봉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고 해도, 남자배구와 여자배구의 흥행 기여도와 연봉 차이가 2배 이상이 난다는 건 어불성설이자 도가 지나치다.
또 다른 함정도 있다. 남자배구와 여자배구의 연봉 상한선 차이가 공정한 경쟁 조건 속에서 나온 게 아니란 점이다. 남자배구는 평일 저녁 황금 시간대인 오후 7시에 경기를 한다. 주말에도 남자배구가 더 유리한 오후 2시에 경기를 한다.
반면, 여자배구는 평일에는 취약 시간대인 오후 5시에 경기를 한다. 아무리 여자배구를 보고 싶어도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경기장에 갈 수도 없고 TV 시청도 어렵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여자배구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과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올 시즌 TV 시청률과 관중수가 V리그 출범 이후 최고치를 뚫을 기세였다. 최근 한국배구연맹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017~2018 시즌 여자 배구의 관중수와 시청률은 같은 기간 이전 시즌보다 약 2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기사 :
여자배구 4라운드 평균 시청률 0.9%, '역대 최고' 신기록).
만약 남자배구와 여자배구 경기를 겹치지 않게 평일 오후 7시에 번갈아 배치한다면, 여자배구 시청률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시청률 흐름으로 볼 때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를 추월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 남녀 격차, '도 넘고 불합리''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프로 구단과 KOVO는 외국인 선수 부분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차별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남자 외국인 선수 연봉은 30만 달러인 반면, 여자 외국인 선수는 그 절반인 15만 달러에 불과하다.
또한 KOVO 트라이아웃 규정에 따르면, 남자 외국인 선수는 연봉에 대한 세금까지 구단이 대신 내준다. 세금을 따로 떼지 않고 30만 달러를 모두 받는다는 뜻이다. 반면, 여자 외국인 선수는 본인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때문에 실제 손에 쥐는 연봉 액수는 남녀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한 프로 구단 관계자는 "재계약한 여자 외국인 선수는 연봉이 오른 만큼 세금도 크게 늘기 때문에 18만 달러를 줘도 세금 떼고 나면 1년 차 연봉인 15만 달러보다 나을 게 없고, 오히려 실제 받는 액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녀 외국인 선수 모두에게 적용되는 '나쁜 제도'도 있다. 2년 연속 뛰어난 활약을 펼친 외국인 선수가 3시즌째 다시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면, 오히려 연봉이 삭감되는 황당한 규정이다.
이 경우 원소속 구단은 기존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을 할 수 없고, 3시즌째 트라이아웃 참가 선수는 처음 트라이아웃 참가자와 똑같은 신분으로 드래프트에 나서야 한다. 연봉도 처음 참가자와 똑같이 15만 달러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올 시즌까지 KOVO의 트라이아웃 규정이었다.
최고의 활약과 실력을 인정받아 재계약하는 선수라면,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하고 그에 걸맞은 인상이 이뤄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연봉이 트라이아웃 신입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면, 이는 불합리하고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해도 너무한' 여자 프로 구단들... KOVO도 '공동 책임'이처럼 남녀 차별 논란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자 구단들이 남자 구단들보다 선수 연봉 인상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여자배구 인기 상승으로 모기업 홍보 효과는 커지는데, 지갑은 열기 싫은 것이다.
남자배구 샐러리캡 인상 폭이 높은 이유는 남자 구단들이 그만큼 선수 투자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남자 선수의 연봉이 높다는 점 자체를 비판할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배구 선수의 연봉이 높다는 건, 잠재력이 좋은 유소년과 그 부모들이 배구 선수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순기능도 있다.
때문에 남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자 프로 구단들의 적극적인 투자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누적된 격차를 한꺼번에 좁히라는 것도 아니다. 비판의 핵심은 점진적으로라도 좁히는 노력을 해도 부족할 판에 격차를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KOVO도 '구단들이 결정한 일'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V리그의 주요 사안과 제도를 최종 결정하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들이 누구인가. 모두 프로 구단의 단장들이다. 선수의 이익보다 구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구단 이기주의가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상황에서 KOVO는 적절히 조정하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조정자 또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총재를 비롯해 KOVO 구성원들도 비난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이사회 결정들은 '해도 너무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김연경 선수의 비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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