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파업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김재철 사장, 권재홍 보도본부장, 이진숙 기획조정본부장 아웃!"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해고된 박성호 기자회장, 이용마 노조홍보국장 등 동료기자 복직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던 김수진 기자.
권우성
문득 지난 5년을 되돌아본다. 2012년 겨울에 시작해 여름에 끝을 본, 가장 길었던 총파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흩어졌다. 노조 집행부에겐 해고와 정직 등 징계가 내려졌고, 적극가담자로 분류된 조합원들은 대기발령을 받거나 신천교육대로 쫓겨났다. 회사는 집요하게 직원들을 솎아냈다.
핀셋으로 뽑아내듯 정확하게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집어내 인사발령을 냈다. 경인지사나 용인 드라미아 등 방송을 하지 않는 부서로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을 하나둘 발령내다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어지자 회사는 2014년 가을, 파업 참여자들을 보낼 부서를 아예 새로 만들었다.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구로), 신사업개발센터(여의도), 미래방송연구소 등 화려한 이름의 수용소를 세우고 수십명을 쫓아냈다. 아나운서와 기자, PD를 사회공헌실, 마케팅부, 심의실, 사업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인사에서 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본업을 빼앗기고 부당전보됐다. 백여 명을 내쫓았지만 인사발령의 이유는 없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2012년 파업에 대한 보복개인적으로 나는 이때 드라마본부 드라마마케팅부로 전출됐다. 기자로 입사해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던 내 인사카드에 적힌 직종은 나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드라마PD로 바뀌었다. 드라마본부로 첫 출근한 날 인사를 하자 한 보직자는 "셀럽이 나타났네"라며 조롱했다. 파업에 앞장서 사진 등이 찍혔던 것을 비꼰 것이었다. 예산 한 푼 없었지만 드라마마케팅부의 부서장은 나에게 "기자 경험을 살려 드라마 홍보를 하라"고 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러나 기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암담했다. 너무 화가 나 퇴근길에 신호대기를 하다 통곡을 하는 날도 있었다. 다른 부문으로 쫓겨간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드라마 홍보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영업을 뛰거나 시설관리를 해야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다수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부여받았다. 이어 진행된 인사평가에서는 대부분의 부당전보자들에게 최하등급인 R과 N이 부여됐다. 한때는 동료였던 어떤 부장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며 "어쩔 수 없었다"고 최하등급 부여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속해서 R을 받은 사람에게는 "상사에게 인정 받는 법" "대인관계 향상 스킬" 등의 교육을 받게 하며 모욕감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