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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추천하는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139]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16.07.25 16:43최종업데이트16.07.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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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행 한국서 보기 드문 좀비출몰 재난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재난영화는 당해내기 힘든 역경 가운데 드러나는 인간의 진면목을 비춘다. ⓒ NEW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명작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은 수십 년에 걸쳐 개조한 자신의 오토바이로 미국 보너빌 대회에 출전, 1000cc 이하급 신기록을 세운 버트 먼로의 실화를 그렸다. 영화에서 뉴질랜드에 살던 주인공 버트(안소니 홉킨스 분)는 꿈을 향해 떠나기 전 동네 꼬마에게 끝내주는 명대사를 남겼더랬다.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 갈 수 없단다. 나중에 보자꾸나."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 갈 수 없다. 많은 경우 이 말은 진실이다. 꿈을 찾아 영화계에 입문하고 이제 막 작품을 찍기 시작한 감독들에게도 그렇다. 만들어야 할 때 (만들어야 할 것을) 만들지 않으면 만들고 싶을 때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없으니까.

7월 말 한국 극장가를 한 손에 틀어쥐고 한가위 감나무 털듯 관객몰이에 나선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 데뷔작이다. <돼지의 왕>, <창>, <사이비>, <서울역> 등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들추는 애니메이션으로 이름을 알려온 그는 첫 실사영화부터 4대 투자배급사 가운데 하나인 NEW와 함께 하는 귀한 기회를 잡았다.

NEW와 함께 상업영화를 만들겠다는 연상호 감독의 선택은 대성공을 거둔 듯 보인다. 개봉 전부터 마케팅과 배급 모두에서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벌인 <부산행>은 개봉 5일 만에 400만 관객을 모으며 파죽지세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질주하는 <부산행>의 종착역은 오직 1000만 관객 달성뿐인 것으로 보인다.

온갖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 부산행 아내를 지키려는 남편,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 여자친구를 지키려는 남자친구. 영화는 철저히 지킬 게 있는 남성의 서사로 흘러간다. 여성과 무산자는 설 곳이 없는 슬픈 영화다. ⓒ NEW


하지만 <부산행>의 흥행 질주 이면엔 작품에 대한 냉혹한 시선도 존재한다. 전형적인 이야기와 평면적인 캐릭터,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설정이 극에 몰입하는 걸 방해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1000만 관객을 의식한 나머지 저만의 색깔을 낼 수 있었던 순간에서조차 단조로운 구성과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적 장면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등장하는 캐릭터 가운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모두 남성으로 그 각각이 딸을 지키는 아버지, 아내를 지키는 남편, 여자친구를 지키는 남자친구라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왜 좀비와 맞서는 여성은 없는지, 어째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주변인을 설득하는 여성이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더욱이 임신한 여인은 죽지 않는다는 임신불사의 원칙과 순수한 소녀는 살아남는다는 소녀필생의 법칙까지 두루 지키는 모범적 선택은 영화 곳곳의 클리셰와 맞물려 식상함을 증폭시킨다.

그렇다. 단점이 많은 영화다. 영화깨나 봤다고 자부하는 관객이라면 뻔하고 전형적인 부분이 수도 없이 눈에 밟힐 만하다. 보기 힘든 한국산 좀비물이라는 희귀함과 한국사회의 부정적 면모를 에둘러 비판하는 상징성에 점수를 준다 해도 그것이 이 모든 전형성과 진부함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일까. 관객들은 묻고 또 묻는다. 영화의 주제와 곳곳에 깃든 고정관념, 실망스러운 연출과 마음에 들었던 장면에 대해서. 극장을 나와 이처럼 할 말이 많아지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 장점이 많은 영화다. 좀비물의 특수성에도 성별과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극장을 찾게 만드는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다. 전형적 상업영화의 이야기 속에 한국사회의 일면을 덧입혀 비판하고 오래 묵은 논의일지언정 여전히 유효한 연대성과 이기주의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그 가운데 살처분과 로드킬, 위기국면에서 정보를 차단하는 무책임한 정부, 투기자본의 비도덕성, 파시즘 등 현실사회의 여러 면모를 비판한 부분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롭게 등장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도주에 가까운 피신과 광주민주화항쟁, 세월호 침몰참사에 대한 은유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이기주의 vs. 공동체주의, 당신의 선택은?

▲ 부산행 누가 그러는데 열차 안 가장 안전한 자리는 1등석도 2등석도 아닌 마동석이란다. 그런데 이미 주인이 있다. 그러하다. ⓒ NEW


관객과 감정선을 동일하게 가져가는 입체적 인물인 주인공 석우(공유 분)의 양편에 적극적으로 남을 돕는 이타적 인물 상화(마동석 분)와 이기주의의 화신인 용석(김의성 분)을 둔 선택은 얼마나 노골적이며 효과적인가.

석우를 피해자를 양산하면서도 자기 이득만 추구하는 펀드매니저로 설정한 것은 또 얼마나 전형적이며 호소력 있는 선택인가.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이자 가정생활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석우가 부산행 열차에 탑승해 점차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재난영화 속 성장드라마라는 시대를 초월해 잘 먹히는 공식을 훌륭하게 따른다.

영화 내내 감독이 집중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평면적인 두 인물, 상화와 용석이 대표하는 연대(공동체주의)와 이기주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를 관객 개개인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부분은 1000만 관객 동원을 목표로 한 상업영화에 내어주더라도 영화 전체를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은유로써 견지해나가며 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 게 연상호 감독의 포기할 수 없는 '하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의 버트가 말했듯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 갈 수 없"는 법이다. 첫 실사영화로 4대 투자배급사 가운데 하나인 NEW와의 동행을 선택한 연상호 감독에겐 지금이 '가야 할 때'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가야 할 때조차 놓치지 않고 지키려 했던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 늘 훌륭한 작가를 기다려온 영화팬 입장에선 반갑기 짝이 없다.

비록 그가 영화의 절정에 뽀샤시한 분유광고를 삽입해야 했을지라도 말이다. 부디 그가 가야 할 길을 모두 간 후에는 이와 같은 장면을 발견할 수 없기를 바란다.

연대와 이기주의, 끝없이 남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상화와 끝없이 자신을 위해 남을 내쳤던 용석. 우리 가운데 누구도 상화만큼 높아질 수 있고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용석만큼 낮아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때로 종은 존재하기 위해 각 개체를 묶어 하나의 군락을 형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개체가 모든 에너지를 몰아받도록 하기도 한다. 어쩌면 두려움조차 생존을 위해 우리 안에 내재된 섭리인지 모른다.

하지만 폴 발레리가 말했듯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생존은 그 자체로 숭고하게 느껴지지만 언제나 숭고하진 않다. 그리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건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삶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엄한 생명체로서 좀비들로 가득한 기차에서 연대와 이기주의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감독은 석우로 하여금 둘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하게끔 한다. 이것이 바로 감독의 인간관이며 영화의 주제다.

2016 한국사회, 부산행 열차

▲ 부산행 <설국열차>가 그랬듯 세트장에 열차 모형을 만든 뒤 촬영했다. ⓒ NEW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러모로 <부산행>과 비교된 <설국열차>와 마찬가지로 열차 안 세계는 일정부분 실제 사회의 알레고리로 그려진다. 좀비무리를 뚫고 달려온 석우와 상화, 영국(최우식 분), 노숙자(최귀화 분)의 앞에서 문을 봉쇄하는 이들이 어디 영화 속에만 있을까. 타인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앞장서 좀비를 막았던 이들이 처한 이 같은 상황이 어디 이 영화에서만 벌어진 일이냐는 말이다.

저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갔음을 안다. 저 암담한 시기 친일파로 득세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독립된 이 땅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음을 안다. 그 모두를 알면서 어찌 영화가 그저 영화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 하는 길을 가는 중이더라도 챙길 건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평면적 캐릭터와 전형적 구성, 진부한 연출을 감내할 만큼 이 영화가 지켜내고자 한 것이 매력적이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연대와 이기주의의 대립은 여전히 유효하긴 하지만 오래 묵어 진부한 논의다. 한국사회의 은유로 기차를 설정했음에도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기차에 태운 게 고작해야 운수회사 상무 용석이라는 건 너무도 소심한 선택이다. 현실에서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수많은 이들 가운데 용석의 존재감은 보잘 것 없을 뿐이다.

한국사회의 은유로 기차를 비추고자 했다면 용석이 탄 칸을 보다 깊이 있게 보여줘야 했다. 제약이 많았겠지만 이 칸 안에서 벌어진 일들 역시 포기할 수 없는 '하나'에 속했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칸에서 용석에게 맞서는 게 '밖에 좋아하는 남자를 둔' 진희(안소희 분)뿐이었다는 사실이, 게다가 그녀가 성인 남성의 입을 빌려 주장을 해야 할 만큼 나약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안이하고 무례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퓨리오사는 아니라도 우리 엄마 만큼은 됐어야지

▲ 부산행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 장면. 소희야 넌 입이 없니. 왜 말을 못해. ⓒ NEW


진정으로 연대와 이기주의의 대립을 보이고자 했다면 딸을 지키는 아버지와 아내를 지키는 남편, 여자친구를 지키는 남자친구 등의 서사만이 아니라 연고 없는 인물이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그렸어야 했다.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던 볼테르와 같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인간이 그 칸 안에 한 명쯤은 타고 있었어야 했다. 영화 내내 관객을 의심에 들게 한 노숙자의 반전으로는 이 같은 주제를 구현하기 벅찼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좀비 앞에서 맞짱을 뜰 수 있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 퓨리오사 같은 여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한 명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넣어주는 정도의 서비스를 해 줄 수도 있는 게 아니었을까.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 한국사회의 알레고리가 되고자 기획한 영화라면 더욱 그렇고 말이다. 적어도 성격 있으신 우리 어머니가 기차에 타고 계셨다면 기차 안 여성의 존재감이 이와 같진 않았을 것이다.

묵묵히 열차를 운전한 기관장(정석용 분)이 있어 열차는 계속 달릴 수 있었지만 이 세상에 그와 같이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운영자가 얼마나 될지를 되돌아본다. 나향욱과 진경준이 판치는 작금의 한국이란 열차는 과연 종착지까지 내달릴 힘을 가지고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재난영화의 멋과 맛은 당해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역경 가운데 드러나는 인물들의 진면목에 있다. 감독이 내보인 여러 인물의 마지막 순간은 최고 수준이라 하긴 어렵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재난영화의 멋을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지켜내고자 했던 '하나'가 있기에, 한국서 보기 힘든 좀비출몰 재난영화의 재미가 있어서 나는 이 영화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산행 NEW 연상호 좀비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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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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