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아내를 지키려는 남편,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 여자친구를 지키려는 남자친구. 영화는 철저히 지킬 게 있는 남성의 서사로 흘러간다. 여성과 무산자는 설 곳이 없는 슬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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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산행>의 흥행 질주 이면엔 작품에 대한 냉혹한 시선도 존재한다. 전형적인 이야기와 평면적인 캐릭터,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설정이 극에 몰입하는 걸 방해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1000만 관객을 의식한 나머지 저만의 색깔을 낼 수 있었던 순간에서조차 단조로운 구성과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적 장면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등장하는 캐릭터 가운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모두 남성으로 그 각각이 딸을 지키는 아버지, 아내를 지키는 남편, 여자친구를 지키는 남자친구라는 점에서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왜 좀비와 맞서는 여성은 없는지, 어째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주변인을 설득하는 여성이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더욱이 임신한 여인은 죽지 않는다는 임신불사의 원칙과 순수한 소녀는 살아남는다는 소녀필생의 법칙까지 두루 지키는 모범적 선택은 영화 곳곳의 클리셰와 맞물려 식상함을 증폭시킨다.
그렇다. 단점이 많은 영화다. 영화깨나 봤다고 자부하는 관객이라면 뻔하고 전형적인 부분이 수도 없이 눈에 밟힐 만하다. 보기 힘든 한국산 좀비물이라는 희귀함과 한국사회의 부정적 면모를 에둘러 비판하는 상징성에 점수를 준다 해도 그것이 이 모든 전형성과 진부함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일까. 관객들은 묻고 또 묻는다. 영화의 주제와 곳곳에 깃든 고정관념, 실망스러운 연출과 마음에 들었던 장면에 대해서. 극장을 나와 이처럼 할 말이 많아지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 장점이 많은 영화다. 좀비물의 특수성에도 성별과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극장을 찾게 만드는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다. 전형적 상업영화의 이야기 속에 한국사회의 일면을 덧입혀 비판하고 오래 묵은 논의일지언정 여전히 유효한 연대성과 이기주의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그 가운데 살처분과 로드킬, 위기국면에서 정보를 차단하는 무책임한 정부, 투기자본의 비도덕성, 파시즘 등 현실사회의 여러 면모를 비판한 부분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롭게 등장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도주에 가까운 피신과 광주민주화항쟁, 세월호 침몰참사에 대한 은유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이기주의 vs. 공동체주의, 당신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