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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도 모르는 '조영남 사건'의 본질

[재반론] 이 사건의 핵심은 '거래'라는 법률행위다

16.07.14 20:33최종업데이트16.07.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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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조영남갤러리 전시된 '화투 그림' ⓒ 연합뉴스


나는 이전 글에서 진중권 교수가 '유일한 관심사'라고 밝힌 문제를 다뤘다. 그것은 '조영남을 기소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었고, 내 답은 '그렇다'였다.

진 교수는 조영남의 대작 행위에 대해 1) 작품 특성상 미학적 비판의 여지가 있고 2) 그것을 고객에게 밝히지 않은 것은 윤리적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까지는 진교수와 내 입장이 일치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진교수는 대작 행위와 그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권고사안'일 뿐, 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미학-윤리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애매함'과 '모호함'으로 가득 찬 진술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는 '창작 행위'와 '거래 행위'라는 별개의 영역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론을 통해 진 교수에게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작품의 생산뿐 아니라, 상품을 거래하는 법률 행위에 따르는 의무도 '권고 사안'으로 둬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혹은 남에게 그리게 하는 것)은 미학적 행위일지 모르나, 그림을 파는 것은 엄연히 경제 활동이고 법률 행위이다.

따라서 나는 조영남 사기 사건을 1) '창작활동'과 2) '상품거래'의 두 영역으로 나눠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 작품을 만들 때에는 조수 사용 여부와, 대작 사실을 드러내거나 감추는 것이 '미학적 판단'이나 '윤리적 권고'에 그칠지 모르나, 매매행위를 할 때에는 거래에 영향을 미칠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실망스럽게도, 진교수는 '반박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검찰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검찰의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니었던가?

법은 축구장에도 개입한다

진중권 교수는 자신이 검찰을 비판하는 데 동원한 논리를 반박해 보라고 말한다. '범주오류' 말인가? 진 교수는 검찰이 미학의 영역에 개입하지 말하야 한다고 말하며 '범주오류'라고 비판했다. 동어반복이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축구장' 사례를 끌어들이는데, 이는 오히려 검찰의 입장을 두둔하는 고약한 결과만 낳는다.

"내가 보기에 검찰이 현대미술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예를 들어, 검찰에서 축구경기장에 들어와 태클로 상대를 다치게 한 선수를 '과실치상', 혹은 고의성이 있다고 '폭행치상'으로 기소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지금 검찰이 하는 일은 그와 다르지 않다. 스포츠에도 법이 건드릴 수 없는 규칙이 있듯이, 예술에도 법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규칙이 있는 것이다. 검찰이 그 경계선을 침범했는데, 다들 이 심각한 문제를 아예 문제로 인식조차 못 하니, 나로서는 황당할 뿐이다."

아무리 운동경기라 하더라도, 선수가 규칙이나 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해서 다른 선수를 죽거나 다치게 할 경우에는 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2000년 영국에서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다. 북아일랜드 축구선수가 경기중에 상대편 골키퍼를 주먹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것이다. 그는 폭행치사로 구속되었다.

운동선수가 경기 도중 누군가를 죽거나 다치게 했을 때, 그 행위가 형법상의 구성요소가 될지, 아니면 위법성 조각사유가 될지 애매한 경우는 재판을 통해 결정하게 된다. 재판을 위해서 검찰이 기소를 할 때, 이때 그들이 '법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규칙'을 침해하는 것일까?

예술의 창작 활동에 법이 개입하는 것을 막으려면, 미학의 영역 안에 머물면 된다. 예컨대 그림을 그린 뒤에 벽에 걸어놓고 혼자 즐기거나 남에게 거저 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을 팔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는 미학의 영역을 벗어나 법의 영역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그림을 남의 재산과 맞바꿀 때에는 '윤리적 권고'뿐 아니라 '법적 의무'도 따라붙는다. 물건을 팔고 사는 것은 명백한 법률행위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림을 팔면서 세금을 제대로 안 내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검찰이 기소하면 미학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는 것일까?"

조영남 사건의 본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그림을 파는 법률행위 과정에서 불공정한 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 ⓒ 남소연


예술 작품의 거래는 법률행위가 아닌가

진중권 교수나 나나, 조영남 작가가 거래자에게 그림을 팔면서 어떤 정보를 은폐했고, 어떤 허위 정보를 제공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검찰의 기소 결정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기소'란 사건을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진 교수는 이 사안이 법원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작품을 팔면서 어떤 거짓 정보를 제공해도 문제삼지 말라는 이야기일까? 그는 여기서 미술품의 거래는 다른 상품의 거래와 다르게 봐야 한다는, 모종의 특권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그의 입장은 글 세 편을 쓰면서 조금씩 진화해 가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남이 그렸어도 작가가 서명만 해도 진본'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며,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무는 선택을 한다. 조영남의 작품 거래를 미학적으로 옹호하려던 행위가 오히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상품 거래'라는 법률행위의 측면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대작 정보의 모호한 특성 때문에 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고 말한다. 대작일 경우 '몇 퍼센트 원작'인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조수(혹은 대작 화가)와 협업했다'는 최소한의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망행위' 여부는 그림 가격과 무관하다

진 교수는 대작 사실을 밝히든 그렇지 않든 작품의 상품성이나 가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 일간지에 실린 "어느 뉴욕 화랑주인의 말"을 증거로 든다.

"고객이 물을 경우 작가들이 조수를 썼는지 여부를 화랑에서 즉시 고지하고 있으나, 그것이 작품의 시장성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미술품 조립라인(The Art Assembly LIne)," 2011년 6월 3일자 <월스트리트저널>)


'어느 뉴욕 화랑주인'이 5년 전 특정 사례에 대해 밝힌 견해를 한국 미술 시장 전체에 적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검찰이 인용하는 법률상의 고지 의무를 허물기에도 역부족이다. (앞의 기사 인용문 뒤에는 뉴욕의 페이스 갤러리가 대리작가를 쓴 존 챔벌린의 조각작품 인수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더욱이 검찰이 사기죄 구성요소를 판단할 때에는 관련 정보가 '시장성'이나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 놀랄 분들이 많겠지만, 사기죄는 '재산상의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혐의자가 돈이나 재물 등을 받으면서 사람을 속였는가다. 형법 제347조를 다시 인용해 보자.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영남 작가는 돈을 받았으므로 '재물의 교부'와 '재산상의 이익' 요건은 이미 충족된 상태이고,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느냐는 것이다. 기망행위는 '적극적 기망'과 '소극적 기망'으로 나뉘는데, 앞의 것은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이고, 뒤의 것은 사실을 숨김으로써 상대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경우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무죄 판결을 받기를 바란다. 범법자 하나 늘어나는 게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명백한 범법행위를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재판 과정이다

조영남 문제를 미학 영역에서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우리는 미학과 법 등의 영역이 국경처럼 분리된 일면적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이 겹치고 섞이는 다층적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중요한 것은 기소 여부가 아니라 재판 과정이다. 미술작품 거래에 관한 판례가 만들어질 것이고, 이것이 한국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을 통해 섬세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조영남을 둘러싼 논쟁이 무익하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미술뿐 아니라 형법, 상법, 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검찰의 기소에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지만, 그렇다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기까지 시민사회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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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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