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좋은 서사는 여전히 힘이 있다고 믿는다."
24년 만에 <글래디에이터>의 속편을 내놓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말이다. 다소 의아한 생각도 든다. 왜 지금일까? 지나온 시간 동안 긴 공백을 경험해야 했던 것도 아니었다. 직후에 완성된 <한니발>(2001)과 <블랙 호크 다운>(2002)은 말할 것도 없고, <에어리언> 시리즈의 작품을 포함해 <올 더 머니>(2018), <나폴레옹>(2023)까지 최근까지도 수많은 작품을 연출, 제작해 왔다. 2015년의 <마션>으로는 자신의 최고 흥행을 갈아치우기도 했으니, 굳이라는 생각도 든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속편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는 글래디에이터 원작이 갖고 있는 서사의 힘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가 가진 확고한 계급 체계의 부정(不正)과 이를 뚫고 나아가는 영웅이 가진 명분과 정의다. 전편의 마지막 시점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으로, 주인공이었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와 황제 아우렐리우스 황제(리처드 해리스 분)의 딸인 루실라(코니 닐슨 분)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을 이번 작품의 중심에 놓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두 작품 사이의 연결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설정이자, 혈연의 가치를 통한 인물의 복제. 두 영화는 분명 다르지만, 큰 갈래에서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02.
아프리카에 남겨진 마지막 나라, 누미디아 왕국을 향해 다가오는 로마군의 전함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로마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게르만족을 포위 섬멸했던 전작과 유사한 오프닝이다. 이들을 막으려는 누미디아의 군사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패배하게 되고, 최전선에서 병사를 이끌던 하노(폴 메스칼 분)는 아내 아리샷을 잃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패자에게는 비통한 현실만 남는다. 나라를 잃은 민족은 노예가 되어 로마로 끌려오게 되고, 하노 역시 로마 외곽의 '안티움'의 검투장으로 옮겨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 분)의 검투사가 된다.
한편, 로마는 쌍둥이 황제의 광기와 폭정으로 자유를 잃고 기근과 환락에 시들어 가고 있다.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시민은 황제의 근위대에 의해 억압당한다. 전대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의 시대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이에 아프리카 마지막 출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카시우스 장군(페드로 파스칼 분)은 아내인 루실라와 함께 원로원을 등에 업고 콜로세움의 경기 마지막 날 반란을 계획한다. 두 황제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로마의 번영을 다시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는 크게 두 개의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검투사 하노와 (훗날 루시우스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는 인물이다) 아카시우스 장군의 것이다. 두 이야기는 마크리누스의 서사로 인해 영화의 후반부에서 마주하게 된다. 콜로세움 경기의 마지막 날 이루어지는 대결을 통해서다. 전작인 <글래디에이터>에서도 거의 동일한 흐름이 있었다.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살해한 콤모두스 황태자(호아킨 피닉스 분)와 가족을 잃고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의 서사다. 두 사람 역시 극의 마지막에서 콜로세움에서 만난다. 사사로운 지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내부의 문제가 외부의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에 불과하다.